2008년 11월 15일 토요일

남자와 여자(MAN & WOMAN)

얼마 전 어느 부부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 하였다.
지난 봄 결혼식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였는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재차 확인 할 수가 있었음을 볼 때 시샘(?) 반 부러움(?) 반 이라 하겠다.
꿈이여 다시 한번
결혼식에 참석하였을 때 많은 하객들의 면면을 보면서 이곳 여성 단체의 임원을 역임했고 혼인 전에 해 볼 것(?) 다해본 분들이라 생각 되었다.
그러나 곰곰히 살펴보니 한가지 못해본 것이 있었는데 ‘고추 달린 아들’을 만들지 못한 것이었다.
농(弄) 삼아 “아들 낳으시라” 한마디를 전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께서 혼례 예식을 집례 하였지만 사라 할머니가 아들을 낳았음을 상기해 볼 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한방에서는 아들 만드는 ‘생남탕(生男湯)’이란 것이 있다.
필자가 산부인과 의사 시절 ‘아들 만드는 한약’과의 악연(惡緣)이 있었다.
딸만 둘 낳고 딸이라고 둘을 유산시킨 산모가 세번째 아기를 출산 하였는데 아이를 받아보니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없는 아기가 태어난 것이었다.
기형아를 출산 한 산모의 과거력을 조사해 본 결과 임신하기 전부터 ‘아들을 만드는 한약’을 복용한 사실이 확인 되었다.
물론 ‘총 배설강 기형’이 백퍼센트 한약 복용에 의한 것이라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신력 상에 아들 만드는 한약의 복용 외에 특이한 이상 소견이 없었기 때문에 미루어 생각 할 따름이다.
아들 선호 사상
당시는 여자가 시집을 가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를 낳아 주어야 만 면목이 서는 세대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추’를 보아야 만 했던 것이다.
특히 시작을 첫 딸로 시작해서 연이어 헛 스윙을 한 ‘딸딸이’ 엄마의 경우 처절하기 그지 없었다.
셋째를 가졌는데 고추가 안보인다고 하면 임신 개월 수에 상관없이 기차 없이 임신 중절을 시켰다.
이러한 남아 선호는 성비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어 법으로 성감별(性監別)을 금지하고 의사를 처벌 하였던 것이다.
중국(中國)의 경우에도 아들에 대한 선호가 강하기에 무조건 하나만 낳아야 하는 국가 정책상 딸이라고 확인이 되면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 아기를 낳은 후 남의 집에 주고 산모만 돌아오는 일이 아들 낳기 까지 계속 반복 된다고 하였다.
이 땅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기구한 운명이다.
얼마 전 필자의 병원에 내원 했던 중국인 부부는 북경 대학을 나온 분인데 얼마나 아기 갖기를 원했으면 아들이 스물인데 미국에 오자마자 만사 제쳐두고 아기 만드는데 올인 하여 늦둥이를 보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
오늘날의 세상이 유니 섹스의 세상이라 하지만 엄연히 남녀를 구분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는 남(男)과 녀(女)의 성(性)감별의 기준이 많이 있다.
외부 생식기를 비롯하여 내부 생식기와 호르몬의 측정 그리고 역할에 까지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염색체 검사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염색체는 눈으로 보기 어려운 세포 속에 있는 핵(核) 그 핵 속에 있는 염색체(染色體)를 보아야 하는 것이므로 전자 현미경으로 만 볼 수 있는 구조이다.
한의학에서는 도저히 알아낼 방도가 없는 현대 과학에 의한 서양의학의 업적이다.
한방의 경우 양(陽)과 음(陰)으로 남녀를 나누게 된다.
어떻게 보면 ‘GENDER ROLE’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내부 생식기나 염색체에 의한 성감별 방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이다.
원론적인 이야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트랜스 젠더’가 새로운 트랜드가 되며 동성애가 보편적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남과 녀를 구분하면서 염색체에 의한 성(性)과 생식기의 해부학적 구분에 의한 성별(性別)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아울러 내부 생식기와 외부 성기(性器)의 구조적인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위(僞) 양성의 차이를 교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고 여성의 질(膣)을 만들어 성교(性交)가 가능하도록 해주며 유방을 부풀려 높여주고 호르몬의 투여로 여성다움을 유지하도록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방은 자연의 흐름 속에 조화를 맞추어 주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된다.
성경 말씀에 ‘사람의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는 구절이 있다.
창조의 섭리를 깨닫고 순응하는 것이 본분이며 도(道)이다.
남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계획을 깨달음이 남과 녀의 역할 구분과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남녀 유별(男女有別)
한방적인 관점에서 남녀의 차이는 음양관(陰陽觀)의 차이 이다.
침(針)치료 할 때 음양의 원리 대로 남녀(男女)에 따라 달리 침을 놓게 된다.
제 몸이 아니라고 여기저기 좋다고 하는 모든 침 자리들을 눕혀 놓고 찌르고 뒤집어 놓고 찌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환자 치료에 자신이 없으므로 무수히 찔러 고슴도치를 만드는 것이고 한방의 원리를 알지 못하므로 ‘그 중에 하나 맞아라’ 하면서 모내기 하듯 여기저기 마구 찌르는 것이다.
가능한 적게 찔러 효과를 보도록 해주며 침 한대를 찔러 “어 달라졌네” 감탄 하도록 해 주는 것이 한방의 매력이다.
남녀 사이에 필이 꽂혀야 좋아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는 것처럼 침(針)도 제대로 꽂혀야 치료가 되는 것이다.
남(男)과 녀(女)의 행복한 만남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에 따른 섭리가 있는 것이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부부들의 경우 “일찍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걸”하며 아쉬운 후회(?)를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음양의 조화를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이 없어지면 부부 사이의 사랑이 식고 신혼의 황홀함과 달콤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즉 결혼 생활의 위기이며 건강의 이상 신호임을 알아야 한다.
남녀 사이의 음양의 조화를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008년 11월 7일 금요일

불임(INFERTILITY)

불임(不姙)
모든 생물은 종족번식을 위한 제나름대로의 위대하고 오묘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동물은 물론 각종 식물 조차도 저마다 형편에 맞는 그비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이래로 창조주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자손대대로 누리기 위하여 이를 전수하려는 의무와 권리에 따르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요즘 세상이 '튀는 세상'이라 자식을 갖게되는것이 튀는데 걸그적 거리가 될뿐아니라 자녀들의 교육비를 비롯한 양육비용이 무시 할수도 없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남보다 낫게 키우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없는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만일 아이를 낳더라도 하나만 낳겠다는 시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으려 하거나 갖게 되더라도 가능한 그시기를 늦추어 보고자하는 경향이 있는것을 많이 보게된다.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보자면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살아가노라면 특별히 의도적으로 피임을 하지 않는한 약85%에서 결혼 1년이내에 임신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이라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골라서 하고 안하고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 이기에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러 특별하게 피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후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면 이를 "불임" 이라 진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사로서 볼때 여성의 해부학적인 구조가 남성에 비하여 더 복잡하고 그 생리적인 현상 또한 아주 미묘하므로 당연히 불임 유발 요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남성불임의 비율이 매우 증가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놀라운 발전은 바닷가의 모래알을 찾아 낼뿐아니라 모래 바닥을 파서라도 필요한 것을 찾아내듯 예전에는 절대 불가능 했던일을 하루가 다르게 해내고 있으니 불임치료에 있어서도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필자의 한친구는 고등학교때 축구공으로 다친연고로 불임이되었는데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아이를 가질수 있는 방도가 있었을터이기에 그 아쉬움을 어찌다 표현 할수가 있겠는가?
시대를 잘만나야 영웅이 되듯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 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물론 불임이라는 것이 현대의학으로 해결할수있는 놀라운 방법들이 많이 있다하여도 아직도 불임 전문의사를 당황스럽게 하는 도무지 '설명할수없는 불임'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점이 양방의학적인 치료의 한계가 되는 것이므로 한방을 비롯한 대체의학적 대안요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필자의 경우 양방과 한방의 협력을 통한 치료가 그효과에 있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다.
한방에서는 불임의 원인을 선천(先天)이 부족하거나 육음사기, 내상칠정, 음식노권이 장부 경락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여성의 질환시 항상 이야기하는 충임맥의 허손에 의한 포궁(자궁)의 문제와 비, 간, 신이 연관된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때 BBT, 정액검사, 호르몬 검사를 비롯한 일반적인 기본검사외에 초음파 검사, 자궁내막조직검사, 나팔관 촬영등 남녀 불임부부의 양방의학적인 검사가 근본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불임의 원인을 찾아내기위한 단계별 검사가 많이 있으며 해당되는 각각의 검사에 대한 결과를 양방의학적으로 정확하게 진단 평가해 주어야 함은 물론 이며 이러한 모든 검사를 시행한 이후에도 특별한 원인을 찾아 내지 못하여 임신이 안되는 경우에는 한의학적인 치료를 보완해 주어 임신을 가능케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는 이러한 배란의 원리및 언제 배란 되는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버젓이 '불임전문' 이란 광고를 내며환자분들을 현혹하는 것을 종종 보게된다.
이처럼 아이를 원하나 임신이 안되어 고민하는 분들의 급박한 심정을 악용하여 의술을 가장한 얄팍한 상술을 부리는 것으로 엄청난 죄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얼마전 누군가 위하여 기도를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불임 환자의 경우 임신 성공률이 2배나 차이가 난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불임 뿐아니라 심장병을 비롯한 다른질환에 있어서도 비슷한 결과가 있다는 것이 보고 되었음을 기억하여야 할것이다.
따라서 불임에 관하여 잘아는 전문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과 검사를 통한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불임 치료에 있어서는 치료 시작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므로 "되면 좋고 안되면 할수없다" 식의 무책임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여 시간만 허송하므로써 귀중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과 대안을 통하여 수많은 불임 부부들의 아이를 갖고자하는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며 아울러 한방의학적으로 보자면 여성들의 하복(下腹)은 따뜻하게 해 줄수록 좋은 것이니 요즘 젊은 여성들이 배꼽을 들어내면서 점차적으로 바지가 내려가 하복을 노출시키려는 오늘날의 패션은 여성 자신들의 건강은 물론 장차 2세들의 잉태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므로 자제하여야 할 것이다.

불면(INSOMNIA)

사람이 살아가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세가지가 있다.
이를 삼쾌(三快)라 하는데 잘먹고 잘자고 잘 싸는 것이다.
씨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
불면증이란 수면의 시작과 유지가 힘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과성으로 오기도 하지만 일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수면장애의 대표적 증상이다.
따라서 편안한 수면은 중추신경계의 활성화, 에너지의 저장, 체온조절 및 감각의 유지와 관련된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전부터 고문의 한가지가 잠을 안재우는 것이 있었으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불면증이야 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으로 괴로운 것이라 하겠다.
특히 이곳 씨애틀은 영화의 제목처럼 잠못이루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비가 부슬거리는 탓에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불면증의 원인
옛날 전깃불이 없던 세상은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일어나던 세상이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생활 방식으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 자연과 함께 사는 조화의 삶이었다.
오늘날은 밤낮을 바꾸어사는 세상이기에 음양의 조화가 깨졌으니 병이 많은것이며특히 불면의 밤을 보내는 고통이 심해지는 것이다.
대개 연세가 들어가면서 잠이 없어지는 노인성 불면증도 있으나 관절염을 비롯한 여러가지 동통이나 불안증이나 우울증 같은 신경성 질환이 있는 경우 흔히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처럼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들로 인하여 수면이 방해받는 경우가 많으며 잘못된 수면 습관이나 불규칙한 생활리듬과 환경의 변화 등이 불면증을 유발시키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복잡한 생활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불면을 비롯한 만병의 근원이 되지만 수면은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뇌의 여러 가지 병리적 소견에 대하여 간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고혈압이나 뇌동맥경화를 비롯한 뇌혈관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불면증의 치료
수면장애는 인체의 정상적인 생리기전에 영향을 끼쳐 집중력의 저하로 업무능력을 떨어뜨리고 각종 안전사고나 재해를 유발시키게 되므로 치료를 요하게 된다.
불면증이란 하나의 증상이므로 우선 철저한 원인 규명하에 원인에 따른 치료를 요하는데 뇌파를 포함한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할 때 정상적인 수면은 1,2,3,4기와 REM수면으로 구분하며 대략 1기 5%, 2기 45%, 깊은 수면인 3-4기 합쳐 25%, REM 수면 25% 정도가 평균적인 분포가 되는 것이다. 불면증의 치료에는 무엇보다도 수면 환경의 변화를 우선으로 한다. 충분한 수면을 방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찾아서 제거해줌으로써 효과적인 수면의 개시와 수면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이 해소되지 않을 때 명상이나 이완등의 행동요법과 약물요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약물요법의 경우 약물에 대한 의존성이 많으므로 약제의 선택과 용량의 결정에는 세심한 주의를 요하게 되는 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
한방에서는 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을 음과 양의 관점에서 보았으므로 해가 지고 달이 뜨며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음양으로 나누는 것이다. 즉 밤(夜)은 음(陰)이므로 밤에는 음(陰)이 양(陽)을 덮어 양(陽)이 음(陰) 속으로 들어가야 잠을 편안히 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이 넘치거나 음이 모자라 양이 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경우 잠못이루는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다. 이것이 음양관(觀)으로 보는 한방적인 불면증의 개념이다. 따라서 음양에 따른 기(氣)와 혈(血) 그리고 오장육부의 관계 속에서 치료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다.제대로 알자 과거 안신약으로 많이 사용했던 주사의 경우 수은에 의한 중금속 중독을 유발시키므로 절대로 사용 불가 하거늘 아직도 몇몇 약재에 함유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시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경우 음양의 원리에 입각하여 침과 한약으로 치료를 할 때 의외의 효과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환자분들의 인내와 선택에 달려있는데 그야말로 ‘내려놓음’의 의미가 매우 중요함을 알아야 할것이다. 좌(左)로 갈 것인가 우(右)로 갈 것인가에 따라 치료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음양의 이치이며 한의학의 놀라운 효과이다. 환자 치료에 앞서 서양의학 뿐아니라 한의학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부활절(HAPPY EASTER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지구 공동체’라 부릅니다.
우주에서 보자면 동그란 지구의 모습이 앙증맞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약 7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지요.
갈릴레오의 말처럼 오늘도 지구는 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삼월의 화창한 봄날 아침이라면 우리가 있는 반대편 대척점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시간 구월쯤에 해당하는 가을의 밤을 맞이하고 있을 것입니다.
동그란 땅덩어리 하나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밤낮이 구분되는 일년 삼백예순닷세 하루 스물네 시간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창조주되신 하나님의 오묘한 조화와 능력에 감탄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곳에서는 밤이되어 자려 할 때 다른곳에서는 아침이되어 하루를 시작하려하며 여기는 더워지기 시작한다고 할 때 추워지기 시작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살이 생(生), 노(老), 병(病), 사(死)가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 공존하며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루 한순간이라도 조용할 날이 없이 온갖 사건 사고로 인하여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기적이라 할만 합니다.
하루의 삶을 마감하고 내일의 아침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 때 다시금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 것임을 보장해 준다고 누가 장담 할 수가 있겠습니까?
높은세상 저편에서 보면 희,로,애,락,생,노,병,사 의 인간세상을 내려다 볼수 있듯이 가까운 병원에 가면 생노병사에 의한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고 느낄수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생명의 시작을 지켜보는 산부인과의사로서 수없이 많은 아기들의 분만에 관여하면서 태아의 심장 박동 소리가 있고 출생의 울음 소리가 들리면서 탄생의 기쁨이 있는 좁은 분만실에서 조차 한편에서는 뱃속의 죽은 아기를 받아내고 산모가 목숨을 잃는 생(生)과 사(死)가 함께 하며 이로 인하여 생, 노, 병, 사, 희, 로, 애, 락 의 온갖 감정이 교차 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지요.
생(生), 노(老), 병(病), 사(死) 가운데 이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희(喜), 로(怒), 애(哀), 락(樂)의 모습은 조물주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지극히 연약한 피조물의 하나임에 분명한 것이지요.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날때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좀더 붙잡고자하는 간절한 소망과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난일을 돌이켜 보노라면 아쉬움과 회한이 남는 환자들이 있기도 한데 환자나 보호자분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원통함을 어찌다 이해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길을가다 떨어진 돌에 머리를 맞아 손을 써 볼 기회조차 없는 환자도 있었고 수술방이 없어 수술 준비를 하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생명을 잃은 분들도 있었으며 얼마전에 뵌분은 열여섯살 꽃다운 나이에 병을 진단하기 위하여 혈관 조영술을 시행하다 부작용이나서 오십여년을 우측 편마비가 되어 살아 오신 분으로 돌이켜 생각하자면 지나온 오십년의 세월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원통하겠습니까?
갑작스레 다쳐 사경을 헤메는 환자들의 경우 전혀 의식이 없으면서 호흡이 끊어지게 되며 맥박수가 점점 떨어진다 하여도 Ambubag 으로 호흡을 도와주노라면 급격히 정상의 맥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참으로 백지장 한장의 차이 밖에 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느끼게 하며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종종 뉴스를 보다보면 구조를 위하여 던져준 로프줄을 붙잡다 놓쳐 험한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기막힌 광경을 보기도 하는데 참으로 애석하고 원통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장면을 크로즈업시켜 얼굴의 표정과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라면 오랫동안 그토록 비통한 모습을 떨쳐 버릴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나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생각해 보면 환자들 가운데도 그토록 살고자하는 간절한 소망의 눈길을 보이던 분들이 많이 있었으나 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먼저 보내야 했는데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분에 맥박이 칠팔십번은 뛰어야하나 점점 느려지는 맥박을 보면서 아득히 멀어져가는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가물가물 해져 가는 맥박이 주위에 둘러선 사랑하는 가족 형제 친지들의 슬픔과 아쉬움을 뒤로하면서 먼저가는 것이 못내 서운하여 자꾸만 돌아보면서 발걸음이 안떨어지는듯 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상가(喪家)에 문상을 가서 배울점이 많다고들 하는 것이지요.
이지구위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기쁨과 화냄과 슬픔과 즐거움과 사랑함과 미워함과 욕심내던 모든 일들로 인해 참으로 험한 세월을 살아 왔지만서도 가지고 있는 것과 남는 것 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더구나 이렇게 한순간으로 서로가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아쉽고도 원통한 것이 되겠지요.

이때 소망을 생각해 봅니다.
이토록 허망되게 끝내야 되는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하루 하루의 생활 가운데 아침에 각자 학교로 직장으로 나가면서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는 기쁨의 시간을 기약하듯이 각기 헤어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연상해 봅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 아침에도 그러했기에 저녁에는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의심없이 믿으면서 지금 이순간도 열심히 맡은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부활의 축복을 가지게 된다면 죽음을 앞둔 지금의 이와 같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과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부활의 소망과는 비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생존 경쟁의 마지막 처절한 싸움터가 아니라 다음을 기대하면서 잘하기 위한 훈련연습(?)에 불과하다고 보아도 될 것 입니다.
내일의 기쁨과 축복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을 다한 후 평안함 가운데 내일을 기다리며 안식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한방에서는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원리 가운데 노(怒), 희(喜), 우(憂), 사(思), 비(悲), 공(恐), 경(驚) 일곱 가지를 우리몸을 해치고 병들게하는 내상칠정(內傷七情)으로 보고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으며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살고 죽는 것이 종이의 양면과 같음을 볼 때 음속에 양이 있고 양속에 음이 있다는 한방적 개념은 음(陰)이라고 해서 영원한 음이 아니며 양(陽)이라고 해서 영원히 양이 아닌 것이므로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고 좋아할 일도 아니며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거나 낙심하거나 걱정하거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가 음과 양의 이치에 맞듯이 자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나 일하는 사람이 있고 추운 곳이 있으면 더운 곳이 있고 어두운 곳이 있으면 밝은 곳이 있는 조화와 균형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지구 공동체로서 주어진 삶의 이치인 것입니다.
한곳에 머물러 있어도 사시사철을 맞게 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온 세상에는 사시사철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느 누가 이지구 한덩어리에 毬?삼백육십오일, 하루 스물네시간의 조화를 이루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껏 우리 인류가 바라던 유일한 지극한 목표가 불노장생(不老長生)이었고 이를 위하여 의학(醫)이 발전하여 왔지만 어찌보면 아직 요원 할뿐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발전에 따른 반작용의 후유증이 더 많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 부활의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이에 비할 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시간이 얼마나 주어져 얼만큼 남아 있는 것인지 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 하루 한순간을 보내는 것 그자체가 아쉽고 가슴 졸이는 일이되며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원통함이 없을 수 없지만 그로 인하여 인생이 달라지게 만든 원통한 일이 있다면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요.
아마도 부활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애석하고도 원통한 일이 될것이며 이런 부활의 사실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면 어찌 통탄하지 아니 할수 있겠습니까?
이 지구상에서 칠십억이나 되는 인구가 지지고 볶지만 우리와 얼굴을 맞대며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가운데 상처주고 마음 아프게하며 원통스럽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시금 부활 주일이 다가오는 이때 구세주 예수와 부활을 생각해 봅니다.
그분은 육체적 고난으로 인한 수없이 많은 원통함을 치유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영혼 구원의 은혜까지 더불어 주셨지요.

여기 저기 불편한 것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 마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며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아무리 찌르고 째고 싸매어 준다 한들 아물고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구원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본질의 문제(FUNDERMENTAL)

살아가면서 어려운일을 당하거나 해결의 방안이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이런경우 문제의 본질을 다시 점검해보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해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의학의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때 온세상을 대우주로 보고 사람을 소우주로 비유하여 인체의 몸과 마음을 대비시켜 자연의 변화에 따른 자연과 인간의 조화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는 양생법이 그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양방을 공부한 서양의사로 특별히 피를 많이보는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약 20여년간 해오면서 한시도 경계를 늦출수 없었다.
수도꼭지 틀듯 하혈하며 바스켓으로 붓듯이 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며 환자 한사람을 보는것이 아니라 뱃속의 아기까지 둘을 한꺼번에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며 살아가는 마음자세에 따라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물론 환자의 질병 상태를 찾아내고 치료하기 위하여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모든 장르를 참고하여 진료하느라 더많이 생각을 해야 될때가 많이 있다.
하지만 한의학의 근본 이론은 음(陰)과 양(陽)이 전부이다.
그것도 음속에 양이 있고 양속에 음이 있으며 음이 다하면 양이 시작되고 양이 다하면 음이 되는 것이다.
마치 강아지가 제꼬리를 물듯 뱅뱅 돌아가는것이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생각하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맞는것 같고 달리 생각하자면 저것도 맞는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한의학의 본질은 음양 오행 원리로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 오장과 육부가 순환 열차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즉 오장 육부의 정거장이 있으며 뱅뱅 돌아가는것이 어디서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구별이 안되며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서양의학이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며 X-Ray를 찍고 초음파 검사와 CT, MRI검사를 하며 조직병리 검사를 하는것은 원인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한의학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음과 양의 평형을 이루도록 하는것이다.
따라서 환자와 질병을 보는 음양관이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이다.
한의학은 음양에서 시작하여 음양으로 끝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음양관을 가지고 보게될때 오래된 뒷간의 똥물도 약으로 쓰는 것이며 처녀의 옷을 벗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남녀 칠세 부동석의 유교사회에서 어염집 처녀의 알몸을 보이라 하는것은 몰매 맞을 이야기 이며 썩은 똥물을 가지고 치료를 하겠다는것과 출산을 쉽게 하도록 돌의 이끼를 이용한다는 것은 미신이며 미친소리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당시 400년전에도 그리 하였거늘 오늘날에야 두말해서 무엇하랴.
현대 과학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꿈에도 감히 생각지 못할일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의 과학 문명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문명의 혜택을 누구나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최고의 부자인 빌케이츠만이 컴퓨터 문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돈없고 집없는 거지라 하여도 간접적이나마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본질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한의학을 Asian의학으로 칭하기에 LA지역에 많은 한방관련 학교나 약재등이 모여 있는 것은 사실이며 지금도 이곳에 사시는분 가운데 LA에서 치료 받고 약배달해서 드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이곳의 침구사들을 믿지 못하여 그리하기도 하겠으나 이곳 WA주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 있다.
얼마전 세미나 참석차 방문한 바스티어 대학의 규모와 열기는 훌륭하다고 느꼈다.
다만 대부분이 백인이며 소수의 중국계 한의사가 보였고 한국인은 없었던 것이 유감 이었다.
베트남계 프랑스 의사의 특강이었는데 백인 한의사들의 관심과 열심이 대단하였다.
한의학 분야에 훌륭한 대학이 WA주에 있다는게 자랑이다.
이대학 말고도 인근 오레곤에도 좋은 한의대가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얼마전 이곳의 한의사 한분이 학위를 받으셨는데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공부를 하신것은 치하해야 할일이며 모두들 귀감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요즘세상이 자기 PR시대라 쥐꼬리 만한것을 가지고도 부풀려 자랑하는 중에도 그분은 "박사"라고 내걸지도 않는다.
한의학은 살아가는 공부이다.
사람이 그렇고 자연이 그러한데 자기 자신이 모든것이 된다.
묵묵히 열심히 공부하신분을 생각하자면 자칭박사가 부끄러운 것이다.
훌륭한 WA주의 한의과 대학에 부끄럽지 않도록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일이다.
자고 일어나는것이 공부이며 생각하는것이 공부이다.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꼼수만 키우는것으로 사람을 치료 할수가 없다.
한방의 원리를 터득할진대 한의학의 본질을 생각해야지 곁길로 나아가는 마음으로는 치료가 되지를 않는것 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가 느끼는바는 양방은 검사결과로 진단이 되면 치료 방침이 정해지며 그치료 방침대로 처치를한다면 어느정도 비슷한 결과를 예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돌발적인 상황만 피하게 된다면 예후가 어떻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단서를 작성할때 "..별다른 합병증이 병발 않는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은 그렇지가 않다.
본질을 보는 관점 -음양관-에 따라 다르며 예기치 못한 효과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마음가짐 이다.
근래 한방을 한다는 침구사들 가운데 마음가짐이 빗나간 자가 있는것을 본다.
한방의 모범답안은 "아멘, 아멘"이기에 모든 해법의 만능 키가 된다.
마음을 비우고 배우려는 학생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어느분은

보톡스요법(BOTOX THERAPY)

누구나 젊음을 간직하고 싶고 보다 더 아름다와지고 싶은가 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번의 칼을 몸에 대기도 하는데 근래 연예인치고 보톡스 주사 안맞는 사람 없다고 할 정도이다.
과학의 발달로 HD-TV시대이니 배우들의 주름살은 물론 잡티나 땀구멍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이미지를 생명으로하는 배우들에게는 죽을 맛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젊은 남자와 사는 데비무어의 경우 몇십만불을 들여 전신을 성형한다고 하니 주사바늘 찌르는 정도는 오히려 장난에 불과 할 것이다.
영화배우 멜라니 그리피스 또한 수십차례 보톡스를 맞고 훼이스 리프팅에 의한 성형부작용으로 피부조직이 손상되어 일그러진 얼굴 및 주글주글 처진 허벅지와 무릎 등의 흉물스런 사진이 보도 되기도 하였다.
보톡스란 무엇인가
보톡스란 토양 속에 사는 미생물인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늄이 만들어내는 독소로 흔히 통조림이 부패될때 생기는 세균이 생산하는 '보툴리눔 톡신A'라는 독성성분을 사용하여 성형의 효과를 보고자 는 것이다.
즉 보툴리눔 독소를 정제하여 근육에 주사해 주면 근육을 움직이게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분비 억제를 통하여 일정기간 근육의 운동을 마비시켜 근육이 위축되도록 하는 효과로 안면 경련이나 뇌성마미 등 근육 및 신경질환 치료에 사용하였으나 1990년대 부터는 주름살 제거를 통한 미용 성형시술에 이용하게 된 것이다.
현재 보톡스 주사는 뇌성마비를 비롯하여 얼굴부위의 주름 제거와 사각턱 축소교정술, 다한증, 액취증, 편두통치료 등 여러 방면에 사용되고 있으나 보톡스의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이뻐지고 싶다고 하지만 목숨까지 담보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약(藥)=독(毒)
의과 대학의 약리학 교과서에 ‘약(藥)은 독(毒)이다’는 구절이 있다.
즉 잘 사용하면 약이되나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치료약이 제대로 모르고 사용할 때 독이 되어 사람을 죽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는것과 모르는것의 차이를 분간해야 할일이다.
필자는 복어요리를 좋아하여 단골로 다녔던 까치복집이 있었다.
1960년대 잘살지 못했던 시절에 복어 알을 먹고 온가족이 죽었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었기에 배가 불룩한 복어에 대하여 혐오감이 있었고 의과 대학에 다니며 복어알에 함유된 ‘테트로도 톡신’에 중독되어 죽은 환자를 경험한 연유로 가까이 하기가 힘들었으나 복어 고기맛과 복어찜을 먹은후 볶아주는 밥맛에 빠지게 되었다.
보톡스나 복어알의 가장 큰 부작용은 호흡근 마비에 의한 호흡곤란이며 심한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분별하여 사용한다면 때로 만족한 미각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
무엇이 다른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가 보기에는 한방 치료의 경우 ‘평행대’를 걷는것과 같음을 느낄때가 많이 있음을 본다.
마치 외줄타기의 감(感)이 느껴지는것이 한방 치료의 묘미라 하겠다.
서양의학은 항상 시끌벅적 할때가 많이 있다.
응급실이건 수술실이건 팀웍에 의하여 환자 치료가 행하여 지므로 계속적으로 오더를 하거나 끊임없이 처치를 하므로 조용 할수가 없다.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의 비명소리가 늘 있으며 아무리 마취를 시키고 잠잠해 졌다고 하여도 의료요원들의 말과 행동이 계속 된다.
간혹 드물게 의사 혼자 봉합해야 할때 적막감이 도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도 꿰메고 자르고 하면서 의료 기구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것이다.
반면 한방은 보고서 느끼는 마음과 만지고 찌르면서 느껴지는 감(感)이 환자와 의사 사이의 교감이 된다.
때로는 환자의 아파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환자몸의 근육과 골격이 찔리는 느낌이 바로 이심전심이다.
한방 치료에는 아직도 설명되지 않으며 예측하기 어려운 신비함 있는 것이다.
올바른 정보
필자의 경우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하게 되므로 간혹 정확하지 못한 의료 지식을 마치 잘 알고 있는것 처럼 써대는 것을 보노라면 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양방도 안니고 한방도 아닌것을 볼때 정보의 생명은 신속함에 있지만 무엇보다 정확성과 사실성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릇되고 거짓된 정보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잘못된 선택에 의하여 결국은 파멸과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옆인것을 왼쪽으로 가게 함으로써 엄청난 고통을 안기게 하거나 죽음에 빠뜨리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의학은 사람을 치료하여 살리는데 목적이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방은 서양의학에서 “NOTHING I CAN DO”라고 어찔할수 없는 경우 ‘이렇게 해 볼수도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는 대안 의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어디어디에는 무슨 무슨탕을 쓴다’가 아니라 ‘이러이러 할때는 서양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하는 것이고 저러저러 할때는 여러 검사를 하여도 별이상이 없다고 나오며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으나 한방에서는 이렇게 보고 저렇게 치료를 하는데 효과를 볼때가 많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무엇은 되고 무엇이 안되는지 그리고 할수있는 것과 할수없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지녀야 할일이다.

보약(TONIFYING MEDICINE)

한방의 치료법 가운데 침(針)과 뜸 외에 한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우리의 일상사인 의(依), 식(食), 주(住) 문제와 연관 시켜 본다면 아마도 먹고 사는 문제와 함께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한약재의 이용이 매우 광범위하다 할것이다.
주위에서도 계절이 바뀔때 라든지 몸의 기력이 쇠하다고 느낄때 흔히들 보약(補藥)을 지어 먹는 것으로 아는데 한의학적 개념으로 보자면 오히려 치료약이라 하는것이 적절한 표현이라 할것이다.
한방의 치료방법으로는 한(汗), 토(吐), 하(下)법 등의 사(寫)하는 치료법을 제외한 한약의 복용 치료가 보(補)법이 되는것이기에 흔히들 보약(補藥)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보약이건 치료약이건 간에 사용되는 본초 약재의 경우 이곳 미국에서는 한약재를 약품으로 보지를 않고 식료품의 한가지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한약 건재의 취급에 제한이 없어 주변에서 침(針)을 놓지 않으며 한약을 지어 판매하는 분들을 볼수 있는 것은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방에서 이용 할수있는 약재가 약 5767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중약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많이 사용하는 약재는 약 400여종이며 현대 생화학적 분석 방법의 발전에 힘입어 유독성 물질이 함유된 약재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고 희귀 동식물 보호에 따른 국제협약 관계로 이에 해당되는 약재의 거래가 금지된 연유로 점차 한약재의 이용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더구나 토착 한약재 보다는 한약재의 국제간 무역거래에 따라 약재 재배 과정상 과다한 농약의 사용과 보관 및 유통 과정에 첨가되는 방부제등으로 인한 해독성이 매우 심각하다 할것이다.
한약의 재료가 되는 여러 본초들 가운데는 참으로 유용한 약재들이 많으므로 생화학적 물질 분석 기술의 발전에 따라 매우 효과적인 항생물질 뿐 아니라 여러 항암제의 원료를 축출해 내어 이를 임상에 응용함으로써 질병의 치료를 통한 수많은 생명을 구할수가 있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신기술의 개발과 신약의 발견은 계속 될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무궁한 보고(寶庫)가 될수 있는 것이 한약재 가운데 있는 것이니 주변의 건강 식품 및 의약품을 판매하는 곳에 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온갖 종류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개중에는 한약본초를 기본으로 한방적인 약재를 이용한 품목의 증가가 눈에 띠게 많은 것을 보게된다.
한약의 묘미는 한가지 한가지씩의 한약재의 약효가 뛰어 나기도 하지만 몇가지 약재를 군(君), 신(臣), 좌(佐), 사(使)의 개념으로 방제를 구성하여 처방 할때 참으로 미묘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마치 비빔밥을 만드는 경우에 온갖 나물을 조합하여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추가하여 비볐을때 비로서 맛있는 비빔밥 특유의 맛을 내게 되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리 동일하게 맛있는 많은 재료를 준비하였다 하여도 한가지씩 따로따로 입에 넣어 가지고서는 비록 위(胃)에 이르러서는 섞여지고 비벼지는 유사한 상태로 된다 하여도 그것으로 비빔밥을 먹었다고 말 할수가 없는 것이고 아울러 비빔밥의 참 맛을 느낄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몇몇 젊은 침구사의 한약조제 행태를 보노라면 한의학의 가장 근본적인 이론인 음양(陰陽)론의 기본도 모르는 것으로 도무지 법제(法制)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도 모를뿐 아니라 생강과 건강(乾姜)의 구분도 없이 사용 하였음을 볼때 무지(無智)한것에 참으로 염려되는 바이다.
같은 한약재라 하여도 노릇노릇하게 그슬리는 것과 까맣게 태우는 것에 따라 약효의 작용에 차이가 나며 법제의 재료도 꿀이나 식초, 그리고 술과 동변(童便)에 이르기까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이 되는데 술에 술타고 물에 물타듯 대충 약을 다려 주는것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양방 의학의 약리학 교과서에 "약은 독이다" 라고 강조를 하는데 사용에 따라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되는 것이니 처방에 신중을 기해야 할 터이거늘 "교통사고전문" 한의원이라 하면서 무조건 한약을 한제씩 안기어 주고 환자를 붙잡아 치료 한다고 하는 것은 환자나 침구사 모두 다시한번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漢)의학에 관한한 한(韓)의학이라 하며 종주국임을 자꾸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오늘날 법제에 있어서 만큼은 중국을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변명할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성(精誠)이 부족한 것이라 하겠다.
요즘 한국에서 한의사가 선망의 대상이 되며 한의과 대학에 입학은 물론 수학 과정이 매우 어려운 관계로 청운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을 뿐 아니라 특히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까지 한의학 공부를하여 흰까운 걸치고 마치 의사처럼 성공한것으로 착각하는 침구사로서 환자 진료에 정진하는 것이 부족한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무조건 보약 보약하는 환자분들의 잘못된 한약에 관한 개념을 바꾸도록 하여야 할터이니 한방에서 한약의 복용은 모든것이 치료적 관점에서 처방하는 것으로 그방법이 사(寫)하는 용도인지 보(補)하는 용도인지의 차이이며 모든 것은 치료약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사(寫)하는 치료법을 쓰기 보다는보(補)하는 용도의 치료법 사용이 많으므로 흔히 보약(補藥)이라 칭하나 분명 경우에 따라 약이 독이 될수도 있는 것이므로 교통사고를 당하여 한방치료를 받을 경우에 한약을 한제씩 안기어 준다고 넙죽 받아 마실것이 아님은 물론 이런 기회에 보약이나 한재 먹어야 겠다는 생각도 바꾸어야 할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과거 양방의사로서 한약재의 심각한 문제점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가 있기에 필자의 하나 한방 병원에서는 한약재의 상태 및 환자들의 염려와 걱정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용도에 맞는 법제와 특수 세척 과정을 통하여 모든 한약을 탕제(湯製)할때 반드시 필자를 비롯하여 만드는 직원들이 꼭 맛을 보도록 하는데 농약이나 방부제 등으로 부터 청결하지 못하다면 어찌 매번 다릴때마다 하루 2,3 팩의 한약을 마실수가 있겠는가?
환자에게 침을 놓는 한의사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기꺼이 침을 맞으려 해야 할뿐 아니라 환자가 복용하는 한약도 의사 자신은 물론 의사의 가족이 함께 마실수 있는 안전하고 청결한 한약이 되어야 할것이다.
한약이 어떠한지를 바로 알고 약(藥)과 독(毒)을 제대로 구별해야 할것이며 제대로 알지 못하여 약을 독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2008년 11월 1일 토요일

병고침과 병나음(CURE & HEALING)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질병들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아직도 여러 불편함이 있지만 진단이 안되는 연유로 질병으로 분류가 되지 못하는 것들 또한 많은 것이다.
의학에서는 이를 ‘증상’이니 ‘증후’라 하는 용어를 쓰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질병과 치료
병(病)의 사전적 의미는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들이 느끼는 무언가 잘못된 것 때문에 불편하게 되었거나 고통스러운 것을 바로 잡아줌으로써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질병 치료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병고침’과 ‘병나음’에 관한 많은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일하심’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질병 치료의 사역이다.
누가 복음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질병이 없을 수 없으므로 병고침과 병나음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요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이다.
질병의 치료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는 늘 그 차이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 같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의 치료 방법으로 고통을경감 시켜주기 위하여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수천 수만년 전 의학은 주술적 방법에서 시작이 되었으나 동서양 문화의 차이에 따라 발전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과학 문명의 발전에 따라 질병의 원인을 보는 방식과 치료방법의 선택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강아지를 오게 만드는 방법은 목에 줄을 매고 당겨서 끌려오도록 하거나 강아지로 하여금 관심을 유도하여 제발로 걸어오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
성경에도 이 두가지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했다.
물론 두가지 표현 모두가 질병의 치료를 의미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에는 찍어보는 영상적 진단 방법과 뽑아내어 검사하는 분석적 진단 방법이 있다.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시험적 개복’이라는 수술 방식으로 배를 째고 들어가 정확히 보고 확인한 후 떼어내는 외과적 수술 방법이 있는 것이다.
위를 떼어내거나 자궁을 들어내거나 간을 잘라내는 모든 것이 ‘시험적 개복’하에 배를 열어 보고 그에 합당한 수술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일단 무조건 개복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진단 검사를 통하여 배를 째기 전에 질병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수술에 들어가는 것이다.
지혜의 도(道)
그릇에 물건을 담을 때 꼭꼭 눌러가면서 담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툭툭치거나 흔들면서 더 들어 가도록 담는 방법이 있다.
한의학은 증거주의에 입각하여 논리적 과학적으로 입증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증상이 나아지고 치료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추위를 심하게 타시는 환자분이 있었다.
부자(附子)를 비롯한 온갖 한약을 복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추위 때문에 이곳 마켓에서 십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필자에게 치료받고는 “그렇게 입고 춥지 않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 스스로 참으로 놀라게 되는 치료의 역사를 한의학에서 많이 본다.
한방에서는 질병을 치료하여 고친다는 표현보다는 나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옥석(玉石)의 구분
한의학에서 ‘동의보감’이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지금부터 약 400년전에 수천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그토록 방대한 자료를 모아 정리 했다는 노력이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과학 문명의 발전과 함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서양의학과는 달리 아직도 동의 보감의 글자 풀이에 머물러 있는 오늘날의 한의학은 한계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제대로 모르면서도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병고침에 나서는 것을 볼 때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 된다.
현대 의학을 모르고 떠드는 것은 잡석(雜石)이 되는 것이고 한방의 지혜를 통하여 서양의학에서 치료의 뾰족한 방법이 없을때 병나음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보석(寶石)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추위 타시는 환자에게 몸을 덮게 만들겠다고 부자(附子)를 주는 것을 많이 본다.
부자는 마시고 죽으라며 임금이 내리는 사약이다.
제대로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의 놀라운 능력을 모르면서 마치 많이 아는 것처럼 떠들면서 가족에게 조차찌르지 못하는 침(針)을 들고 있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병고침은 제대로 아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병나음은 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날 때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변비(CONSTIPATION)

흔히 3쾌(快)라 하여 쾌식, 쾌변, 쾌면이라 한다.
즉 잘먹고, 잘싸고, 잘자는것이 건강의 지표라는 것이다.
배변의 즐거움
누구나 재래식 화장실의 잊을수없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수련의사 시절 서울 강남의 중심지에서도 종종 화장실 변기 덮개에 찔려 외음부 열상으로 내원하던 환자들이 꽤 많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수세식 화장실로‘REST ROOM’이 되었지만 한밤중의 재래식 화장실은 무언가 나올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의 장소이며 추운 겨울밤의 볼일은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었다.
문제는 화장실 문화가 좋아져 신문을 정독하면서 너무 오래 REST하다가 오히려 치질이 생기는 등의 역기능이 있기도하다.
무엇이 변비인가
변비란 하나의 독립된 질환이 아닌 여러 질병이나 상황에서 동반되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수 있으나 그 불편한 고통은 표현하기 어렵다. △대변보는 횟수가 일주일에 2회 이하이고 △대변의 무게가 하루 30∼35g이하거나 △배변 4회 중 1회 이상에서 딱딱하고 굵은 변이 나오거나 △배변 4회 중 1회 이상에서 과도한 힘이 필요하거나 △배변 4회 중 1회 이상에서 배변 후 변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 등 5가지 사항 중 2가지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변비라고 한다. 변비의 원인 변비의 원인으로는 단순한 기능적 요인과 복잡한 기질적 요인으로 대별된다. 기능적 원인으로는 대변을 보고 싶어도 참아버리는 습관이나 운동부족,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섬유질이 부족한 식사, 무리한 다이어트, 관장 좌약이나·하제 등을 습관적으로 사용 함으로써 배변행위에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생긴다. 기질적인 원인으로서 주로 대장질환이나 항문의 이상으로, 암에 의한 대장폐쇄증, 대장게실증, 직장질벽 이완증, 직장탈, 치질, 항문 및 복부수술 후 장해 등의 이유로서 변비가 오기도 하며 기타 선천적인 요인으로 대장의 길이가 길고 꼬불꼬불하게 엉켜있는 경우에서도 변비증상이 발생한다. 전체 변비환자의 20% 정도인 기질적인 배변장애로 인한 변비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며 이런 경우는 반드시 원인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변비가 왜 문제인가 일단 변비가 생기면 배설되어야 할 독소들이 체내에 머물며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체내의 독성에 의한 두통, 식욕부진, 복부불쾌감, 불면증, 요통, 치질, 비만, 대장게실증 및 대장암 등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혈액순환 장애에 의한 순환기 질환 및 피부질환들을 유발시키게 된다. 내원 환자들 가운데 변비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으며 심지어 한달에 두번정도 화장실에 가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근래 여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에 편승하여 복용하는 많은 약재들 가운데는 설사를 유발시키는 하제가 포함된것이 많기 때문에 이로인한 이차적인 변비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변비도 스트레스와 함께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것을 잊어서는 아니될것이다.
변비의 치료 대개 기능적 이상에 의한 변비는 병이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증상이므로 식사 요법과 적절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로 대장운동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다면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만성변비나 완고한 변괴로 인하여 배변이 곤란한 경우에는 약제를 복용 하거나 관장을 하게 되며 그래도 변을 못볼 경우에는 손가락으로 변을 파내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변비약의 복용이나 관장약의 사용은 정상적인 배변 반사운동의 회복을 저해하여 오히려 변비를 악화시키고 장을 무력하게 만들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며 변비약을 너무 과다 복용할 경우에는 장 점막이 자극을 받아 다른 병이 생길 수 있고, 정기적이나 장기간의 사용은 약재 의존성을 일으키므로 주의를 요한다. 어떻게 할것인가 변비의 경우 치료보다는 특히 예방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식이요법과 배변습관 그리고 적당한 운동이 기본이다. 서구화된 식생활인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후드를 피하고 식이섬유의 섭취, 변비를 완화시키는 식품의 선택이 필요하나 이완성 변비와 경련성 변비에 따라 다르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울러 대장의 생리기능을 회복시키는 적절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한방의 경우에도 윤장통변 시키는 한약제가 많으나 종종 다이어트 한방이라는 미명하에 체중감량 목적으로 마구 남용되고 오용되는 경우가 많아 심히 염려스럽다. 필자는 만성변비의 치료에 침(針)의 효과를 확실히 보고 있다. 한달에 두번 화장실가던 악성변비 환자도 침을 맞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변을 보았다고 하니 침치료의 놀라운 효과에 감탄 할 따름이다. 다만 만성 변비의 치료에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며 환자 자신의 노력이 따라야만 정상의 쾌변(快便)으로 돌아오는것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백만불짜리 침(MILLION DOLLERS)

오늘도 ‘미용 침술 특강 $2000’ 광고 전단 우편물을 받아 보았다.
내용인즉 ‘ 주름 침’, ‘유방 확대 침’이라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한방 광고이다.
가짜 한의학 박사 광고 못지 않은 웃음거리 이야기지만 이것에 혹하여 돈 주고 이름석자 올린 후 ‘CERTIFICATE’ 종이 쪽지 하나 받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비방은 없다
흔히 ‘오천불 침법’ 이니 ‘만불 침법’ 이라는 침술 광고를 많이 보았다.
중국에 가서 비법 비방을 전수 받고 왔다며 몇 주 코스로 오천불 만불에 비방을 알려주겠다는 내용이다.
한의학은 ‘흉내’를 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디가 아플 때 어디를 찌른다’고 하여 아무리 찔러도 똑같이 낫는 것이 아니다.
침을 찌르는 한방의 침 자리 위치에 대한 설명 자체가 어디에서 몇 촌(寸) 아래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
촌(寸)이란 것이 손가락 마디를 기준으로 삼았기에 사람마다 손가락 마디 굵기도 다를 뿐 아니라 팔 다리 길이와 배꼽과 관절 주름의 위치가 다르며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생김새가 다른 것을 고려 한다면 각 사람의 경혈의 위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터득 해야 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도(道)를 깨달음에 있다.
침 놓는 흉내를 내다보면 여기 저기 좋다고 하더라는 자리를 모두 찌르다 보니 엎어 놓고 찌르고 뒤짚어 놓고 찔러 고슴도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러나 침의 효과는 고슴도치처럼 찔리는 고통이 아니라 한방에 나타나는 것이다.
백만불의 효과
근래 백만불 짜리 침 치료 효과를 보는 분이 계시다.
하혈 때문에 오셔서 치료를 받았는데 밥 맛이 달라졌다고 했다.
속이 뒤집어져 커피도 마시지 못했고 김치도 제대로 못 먹었고 과일도 먹지를 못 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면서 그윽한 커피향의 맛을 알게 되었고 온갖 탐스런 과일들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평소 몸의 반쪽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것도 없어지고 팔다리도 따뜻해 지고 추위를 느껴 마켙에서 오분을 넘기지 못했던 것이 없어 졌다고 하였다.
피부도 고와지고 혈색이 좋아지니 예뻐지는 것이었다.
나이 사십부터 갱년기의 어려움을 겪으며 꺼져가는 불씨 마냥 사그러 들어가던 삶이 회춘(回春)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삶의 질(質)이 달라진 것이었다.
참으로 백만불이 안 아까운 효과를 본 것이다.
부인의 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편께서 ‘나도 좀 맞자’고 하였다고 한다.
한의학은 이런 것이다.
이곳의 대형 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에 침술 치료하는 교인이 많았지만 필자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필자의 한방 병원에 올 때 커피를 못 마시고 과일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침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몸이 달라지면서 좋아지는 증상들을 이야기 한 것이다.
‘침 치료가 이렇게 좋구나’ 치료 받는 환자가 놀랐고 치료하는 의사인 필자도 감탄 할 정도이다.
이러한 효과라면 암(癌)세포도 죽어 없어 질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 환자가 좋아 지는 것이 아니다.
한방의 놀라운 매력이다.
이곳에서는 유난히 교통사고, 비만, 다이어트, 성장, 미용에 관한 광고에 열을 올리는 침술사들을 많이 본다.
한의학을 대안 의술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없이 돈벌이에 급급한 장사꾼의 모습이다.
교통 사고 환자의 고통을 치료하려는 것이 아니고 침 놓는 흉내 내고 환자를 돌리는 것이다.
이 땅에 한의학이 정통의학인 서양의학에 대하여 믿을 수 있는 대안의학으로 자리 메김을 하려면 장사와 의술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본말의 전도
주름 침, 여드름 침, 탈모 침, 유방 확대 침을 광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한의학의 깊은 뜻을 알고나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름을 펴기 원한다면 침보다는 보톡스 주사나 주름제거 수술이 확실하고 유방을 크게 만들고 싶으면 유방 확대 수술을 받는 것이 효과가 빠르다.
한의학에는 주름을 펴주는 침이나 유방을 크게 해주는 침술이 있다는 말도 없고 침을 놓아 유방을 크게 한다는 이야기도 없다.
한방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면 들어가고 나온 부분의 균형을 찾아 유방도 탐스럽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얼굴의 피부가 탄력을 회복 함으로 인하여 주름도 펴 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전체적인 회복을 통하여 국소적인 효과를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것인데 마치 주름 펴는 침과 유방을 크게 만드는 치료의 비법이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해대는 것이 측은 해 보일 뿐이다.
한의학을 자꾸 조롱거리 웃음거리로 만들면 안 될 일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라
한방의 무한한 잠재력을 찾아 이곳 주류 사회에 알려야 할 일이다.
미국인들의 한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곳 한인 침술사들의 본질에서 벗어난 모습이 우려 되기 때문이다.
두 아들의 학업을 위하여 미국에 온 필자가 학업이 끝나감에 따라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물지는 모르겠으나 정통 한방의 나아 갈 길을 제대로 제시해 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돈 몇 푼에 한방의 신비함을 팔아 먹을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본질인 음양으로 돌아가 음양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주름을 보거나 유방이 커지는 것을 볼 것이 아니라 음양의 조화를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과 나의 조화 가운데 세상의 평화를 이루고 우리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순리이며 이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배움의 중요성(LEARNING)

근래 밤을 새면서 공부하기도 하는 필자의 큰아들을 보면서 지난 의과 대학시절 지겹도록 시험이 많았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보통 8절지 20장 내외의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최고 36장의 시험을 몇시간 동안 본 기억도 있다.
지식의 분량
수련의사 시절에 의과 대학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다보니 단답형 문제의 경우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서술형 문제의 답안을 채점하면서 삐뚤 삐뚤 지그재그로 채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느낀적이 있었다.
갑자기 응급 환자가 발생하여 응급 수술을 하고 나오거나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 채점을 할때에 긋어대는 빨간줄이 달라지는 것이다.
학생시절에 선풍기로 시험지를 날려 멀리 떨어지는 순서대로 채점을 하였다는 교수님들의 우스게 소리와 같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기도 했다.
답안 내용을 읽다보면 확실히 완벽하게 작성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아는것인지 모르는것인지 필요한 용어들을 사용하였지만 문장의 설명이 오락가락 할때는 어딘가 주워들은것은 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선무당’인 것이다.
그리고 질문의 핵심에서 벗어나 전혀 연관성이 없는 답안을 그럴듯하게 작성해 놓은 경우도 있는것이다.
때로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하여 엉뚱한 답안을 적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완전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두리뭉실 넘어갈수도 있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지함의 결과
이곳에서 여러 칼럼들을 보면서 미국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얻을수있는 훌륭한 글들도 많으나 때로는 얼굴 화끈거리도록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많이있다.특히 질병에 관한 올바른 개념도 없이 적어놓은 한방칼럼은 지면의 낭비도 낭비거니와 양방의사들이 볼때 과연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 할런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곳의 침술치료사들은 의사가 아니기에 분명히 역활 구분이 나뉘어져 있지만
서양의학에서 고치지 못하는 여러 질병들을 고칠수있는 한의학이므로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로서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맞으련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많이 아는척 말도 안되는 글을 적어놓기 때문에 스스로 한의학의 가치를 깍아내리고 있는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들이 있으며 때로는 무슨 질병인지 모르면서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는 증상들이 많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모든 검사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결과에 이상소경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진단명을 붙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혹은 증상에 따른 검사를 실시하여 확진에 따른 질병명은 나왔지만 그 질병치료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환자들은 불편해 죽겠는데 모든 검사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므로 이병원 저병원 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지어준 약을 복용해 보아도 증상의 호전이 없어 고민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고통과 죽음
요즘 중년 여성 환자분이 있는데 환자분의 증상은 생리기간중 이틀동안“죽어나가듯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온갖 진통제를 복용하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얼마나 아팠으면 ‘죽어나간다’는 표현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틀동안 죽어나가다가 삼일째는 멀쩡해지니 이렇게 한달을 보내고 또다시 이틀간 죽어나가듯 고통 당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필자에게 와서 한약먹고 침맞은 후 아무일없이 생리기간을 넘어갔다.
그야말로 깜쪽같이 나았으니 이것이 한방의 매력이고 능력인 것이다.
먼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서양의학적으로 환자의 인체내 장기들을 들여다 보거나 최소한 그릴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꾸불탕거리는 환자의 몸속을 보면서 하나하나 감별진단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한의학적인 관(觀)을 가지고 접근을 하면 해결의 방법을 찾아낼수가 있다.
일의 순서
근래 모텔하시는 남자분이 손목의 통증으로 그리고 아는 교회의 사모님께서 발목의 통증으로 찾아 오셨는데 두분은 상담후 X-RAY 검사에서 모두 선상골절이 나왔다.
손목 발목이 퉁퉁붓고 시퍼렇게 멍이든것을 어혈을 뺀다고 마구 찔러 부항을 하여 피가 검게나오는것을 “죽은피”라 하며 보여주는 무지한 침술사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찌를때가 있고 찔러서는 안될때가 있는것이다.
한방으로 치료해야 할것이 있고 한방으로 안되며 서양의학으로 해야 할것이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찌르다 염증을 유발시키면 관절과 골수질환으로 생명을 이잃어버리게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고 나설일이다.
먼저해야 할것이 있고 나중해야 할것이 있으며 할수있는것과 해서는 안될일이 있는 것이다.
인체의 해부생리에 관한 서양의학적인 지식을 모르면서 침통들고 설칠 세상이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는것은 환자들에게 고통만 줄 뿐이며 심지어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기도 한다.
의사의 사명은 환자를 죽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죽을것 같은 환자를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꿈틀대는 내장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며 무조건 침을 찔러 넣으면서 창자가 침을 피해간다고 뱃속에 장침을 찔러대는 무식한 침술사도 있다.
달라진 세상에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리되 옛사람의 지혜를 본받을 일이다.
무식한 용기는 만용이며 만용의 결과는 파멸과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발기부전(IMPOTENCE)

얼마전 이땅에 발기부전 치료제를 시판한지 5년의 세월이 흐른후 그 복용효과를 알아보기 위하여 부부 관계에 관한 설문 조사가 발표되었다.
그 내용인즉 다음과 같았다.
무엇보다도 발기부전 치료제 장기 복용에 따른 가장 큰 변화로 남성은 '발기강직도'를, 배우자들은 '오르가슴 증가'를 꼽았다.
흔히 발기부전이나 조루등 남성의 성기능 장애는 비뇨기과에서 그 치료를 담당하는데 발기부전치료제(비아그라)를 5년 이상 복용한 발기부전환자 105명(33~82세, 평균 57.8세)과 배우자 31명(32~66세, 평균 49.8세)을 대상으로 `발기부전치료제 장기복용에 따른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
발표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발기부전치료제 장기 복용 후 성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6점 만점에 남성이 5.15점, 여성이 5.10점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성생활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으로는 남성이 '발기의 강직도 증가'(5.30점)를, 배우자는 '오르가슴 증가'와 '배우자와의 갈등완화'를 각각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의 81%가 "발기부전치료제를 처음 복용하고 성관계를 했을 때 아내가 기뻐했다"고 생각한 반면 실제 이렇게 생각한 아내는 58%에 그쳐 부부간 '눈높이의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배우자의 만족도는 남녀 모두 최초 복용했을 때보다 장기복용 이후에 더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부부들은 '주1~2회' 가량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답했으며, 남성의 48%가 배우자에게 비아그라 복용사실을 알린 것으로 분석됐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는 이유로는 남성의 50%가 "발기부전이 있어서"라고 답했으며 "성기능을 더 잘 유지하게 위해서"라고 응답한 남성도 41%에 달했다고 한다.
남성들의 꿈
아마도 뭇남성들이 성생활에 관한 관심은 연령의 많고 적음에 차이가 없을 것이나 근래 남성 못지않게 여성에서도 성(性:SEX)에 관한 관심이 상당함을 보게 된다.
날로 증가하는 이혼의 사유 가운데 가장많은 성격차이 라는것이 실은 마음이 않맞고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성(性:SEX)생활의 불만에서 오는 성적차이가 실제 원인이 되는것을 알수있다.
필자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를 보아 오면서 젊은 처녀들의 경우 성경험이 많을수록 장차 결혼을 하면 문제가 될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사귀던 남자친구들과 남편의 성(性)적 능력을 비교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이혼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이다.
근래 효과가 좋은 발기부전 치료제가 시중에 많이 나와있고 이를 복용하여 만족할만한 효과를 보았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자연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몇일전 음경 이식 수술을 받은 남성이 성관계를 가질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식받은 타인의 음경을 다시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괜한 말은 아닐것이다.
아마도 서양인들의 성(性)이 개방적이라 하지만 오히려 동양 사람들이 성(性)에 관하여 많은 관심이 있음을 본다
중국의 고전 '소녀경'이 그것이고 인도의 경전 '카마수트라'가 그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병을 진찰할 때 남자는 반드시 성생활을, 여자는 월경을 살핀다"고 적혀 있다.
그만큼 남자의 성적 능력과 정력이 건강을 나타내는 척도라는 말이다. 한방에서는 발기부전이나 조루 또는 지루등 성생활로 인한 문제를 호소하는 남성이나 월경 불순, 생리통 그리고 불임과 유산등을 호소하며 내원하는 여성환자들을 대개 간(肝)에 문제가 있는것으로 본다.
간(肝)의 기능을 피(血)를 저장하며 뭉친것을 풀어주며 기(氣)를 도와주는 작용으로 설명을 한다.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격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과로, 그리고 밤늦도록 이어지는 잦은 술자리등으로 간을 해치게 된다.
반면 성개방 풍조와 함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온갖 향락산업이 발달하고 범람하지만 실제 성능력에 있어서나 남성들의 정자수에 있어서 예전만 못함을 보게된다.
발기된 음경은 뼈가 있어서 뻐뻣한 강직도를 유지하는것이 아니고 음경을 이루는 발기성조직인 1쌍의 음경해면체와 1개의 요도해면체내 스폰지 그물코같은 해면체동으로 혈액이 유입되어 충만해지면서 부풀어 오르고 이런 결합성 조직의 격벽인 소주가 긴장되므로써 벌겋고 빳빳하게 서있는 발기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다
한방에서는 몸속의 모든 혈액을 관장하는 장부를 간(肝)이라하여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간혈이 부족해지거나 탁해져 혈액이 원활하지 못하여 발기 부전으로 강직도가 떨어지며 발기 지속이 안되고 시들시들해 지면서 도중하차하게 되는데 이러한 발기부전 치료는 허약해진 간혈을 보충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와는 달리 발기는 그런대로 잘되지만 섹스파트너의 바램과는 달리 페이스조절을 못하고 이미 사정이 끝나 남들은 등산을 시작도 않한것 같았는데 벌써 하산하고 있다면 이를 조루라한다.
발기부전이나 조루 그리고 여성들의 불감증등 성(性)과 관련된 문제는 단지 간(肝)뿐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이나 기타 질병에 관한 해부 생리에 관하여 서양의학적으로나 한의학적으로 두루 제대로 알아야지 잘모를경우 "복상사"를 일으키게 되는것이다.

'복상사'라는것이 글짜그대로 꼭 배위에서 죽는것을 말하는것은 아니다.
잠을 자는 도중에 잘못되어 자고 일어나니 세상을 떠나게된 경우를 말하는데 흔히 동맥류와 같은 뇌혈관질환이나 관상동맥과 같은 심장질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질환들이 있으면서 고혈압이 동반되거나 심한 심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간혹 성관계로 무리한 경우에 그야말로 눈붙이고는 다시 뜨지 못하게되는 것이니 제대로 환자의 잠재된 질환들을 분별하는 의학적지식을 갖추어야 하는것이다.
처음 사용시 만족할만한 효과를 보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경우 지속적인 용량의 증가를 필요로 할뿐 아니라 부작용도 있으나 한방의 경우 매우 유용한 결과를 볼때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한의학은 정통의학으로 인정이 안된 '보완대체의학'이므로 의사라 칭하지않고 침술치료사라 부르지만 호칭에 구애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서양의학적으로 정확한 진단이 안되며 제대로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는 난치 불치 질환들로 고통당하고 답답해하는 경우에 확실히 차별된 치료의 효과를 보여주면 된다.
이러한 치료의 능력을 보일때 환자들이 한의학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고 제대로 된 의사로 인정을 해주는것이다.
부끄럽게도 스스로 의사라 자칭하면서 내세우지말고 오작 환자치료에 매진할일이다.

바라봄의 법칙(PRINCIPAL OF SIGHT)

얼마전 버지니아 공대의 총격사건으로 전미국이 경악하였는데 그 가해 당사자가 한국계 청년이었다는 사실에 한국이나 이곳 한인사회가 충격에 빠진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단순 총격 살인 사건은 흔히 발생하고 있지만 근래 한국 이민자들 사이의 총격 살인이 자주 발생하는것을 볼때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총기휴대를 개척시대 자기방어를 위한 자위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수많은 총기가 쉽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스트레스
현대 사회는 경쟁사회이다.
남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목숨걸고 피나는 노력과 투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되는데 그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르게 표출되지만 극단적인 방법이 총격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빨리빨리 문화’와 참지 못하는 조급증이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즉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느끼는 중압감이 어느날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 화병(火病)으로 발전하게 되는것이다.
전쟁이다
이러한 화(火)는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과 맞물려 폭발적 현상을 보이게 되는데 손에 총기가 쥐어질 경우 총격 살인의 범죄로 귀결되는 것이다.
한국 밤문화의 흔적이 넘쳐나는 새벽녁에는 여기저기 수없이 많은 구토물과 노상 방뇨의 잔재 보이며 길에는 쓰레기 더미가 넘쳐난다.
파출소마다 취객들의 고성과 난동을 흔하게 볼수있는것은 그만큼 공권력의 무능함을 보이는것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겠다.
필자의 경우 의과대학 졸업후 대학병원에서 수련의사 과정을 거칠때 밤마다 응급실에서는 음주로 인한 각종 상해사고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당시만 하여도 응급 의학과라는것이 없었고 청원 경찰들도 없어 몇몇의 인턴선생들과 간호원들이 난장판을 수습하면서 환자 진료를 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치료받는 환자를 쫒아와서 칼로 찌르고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차를 세우고 멱살잡이하며 싸우는 모습도 흔하게 보았고 동네에서 주차문제로 이웃간에 칼부림하여 살인에 이른 소식도 많이 들었으며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가 길어진다고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칼로 찔러 죽인 뉴스도 알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다.
필자는 우스게 소리로 한국이 미국처럼 총기휴대가 합법적이 된다면 아마도 하룻밤 자고나면 길거리에 쓰레기 넘쳐나듯 시체들이 나뒹굴것이라 이야기한적이 있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보다는 감정에 휩쓸려 먼저 일을 저질러 놓고 이를뒤짚어 놓으려 목소리 높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당장 시원하게 쏟아붓는 방식을 택하므로 이를 주워담아야하는 수고가 따른다 하여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의 재벌가(家) 아버지가 아들이 폭행당한것에 분풀이로 폭력배를 동원해서 보복 폭행을 저질러 사회적 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모두가 그 재벌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지만 자식이 학교에서 맞았다고 학교선생님을 찾아가 폭행하는 부모들이 자주 보도되는것을 볼때 그재벌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나 재벌가문으로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불미스런일을 야기시킨것이 더욱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피를 본다는것
필자는 오랜기간 산부인과의사로 수많은 수술을 해오면서 항상 피를 묻히고 피비린내속에 살아왔다.
어느 의사 선생님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특히 피를 많이보고 출혈에 유난히 민감하다.
보이지 않는 뱃속의 아기 상태까지 확인해야하니 항상 예민해진다.
부인과 수술을 비롯한 모든 외과 수술은 마취가 충분히 된것을 확인하고 칼을 대는데 응급을 요하는 산과 수술의 경우에는 미처 마취를 하지 않더라도 칼로 배를 가르는 경우가 있다.
산모의 “악”하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마취가 되는것은 그만큼 태아의 상태가 위급함을 의미한다.
전쟁터와 같은 것이다.
슬리퍼 속으로 피가 들어가 발가락이 흥건해지며 속옷에 피가 묻어 의심(?)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방법의 선택
전쟁터에서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을 죽이기 위하여 총을 쏘아야 하지만 일상의 사회 생활속에서 총격 살인이 발생하는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장난삼아 사격을 한다고 하여도 총소리에 겁을 집어먹으며 방아쇠를 당겨 격발하는순간 심장은 두근거리고 눈은 감기고 몸이 떨리게 되는것이 정상이다.
누군가 죽이려는 살의(殺意)를 가지고 총을 쏜다는것은 잔인한 것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경우 한의학이야말로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노라면 치료의 방법이 떠오르게 된다.
이리로 갈것인가 저리로 갈것인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다지 서두를 이유가 별로 없는 법이다.
서양의학을 총알을 장전한후 소리쇠를 당기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상태라면 한의학은 콜랙션으로 총을 감상하는 것이라 하겠다.
바라봄의 법칙
지금까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하여 많은 환자들을 보아온 의사로서 느끼는 바는 의사나 환자 모두가 서로를 제대로 볼줄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삼라만상을 제대로 보고 구별을 할때 그가운데 창조의 섭리를 깨달을수가 있다.
이런 세상의 조화를 보고 깨달을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여러가지 진단 기법의 도움으로 유익한 정보를 얻으며 한의학은 직관과 통찰력으로 환자를 치료하는것이다.
충분한 의학 지식 없이 침을 찌르겠다고 나서는것은 무차별 총기를 난사하는것과 다름이 없는것이다.
가능한 몇대의 침으로 치료해야 하거늘 엎어놓고 찌르고 뒤짚어 놓고 찌르며 고슴도치를 만든다거나 여기저기 마구 찌르는 모내기 침법을 쓰는 침술사라면 그만 두는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이된다.
의학적 통찰력이 있다면 침한대로 효과를 볼수있으나 제대로 모른다면 좋다고하는 침자리 모두를 찔러대므로 잔인한 총기 살인행위가 되는것이다.
침통을 함부로 흔들일이 아니며 아무나 침을 들고 달려들일이 아니다.

미국 한방(ORIENTAL MEDICINE IN USA)

한의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론이 음양(陰陽) 사상으로 이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모든것을 상대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음(陰)과 양(陽)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진단과 치료가 달리 나타나는 것이기에 "한방은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 하는 한의사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양방 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한의학을 공부하면서도 이러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응용하여 "안되는 일을 되도록 하는것"에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에서의 한의학"을 상고해 볼때 "미국=서양" 이며 "한의학=동양" 이지만 미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서양이 아니고 동양으로도 간주할 수가 있는 것으로 한방 의학이 생소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친밀하다 할것이다.
지구상 어느곳이라도 그나름 대로의 고유한 토속 의학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대륙 또한 예외가 아니나 미국의 역사가 이주민들에 의한 다인종 문화이면서도 앵글로 색슨 계통의 백인에 의한 주류적 역사를 대표하고 있으므로 근대와 현대의 서구적 과학 문화의 진보 발전과 함께 의학 분야에 있어서도 대세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한방 의학의 미대륙 유입에 대하여 오랜 역사와 그에 따른 여러 계기들이 있었겠으나 미서부 개척 시대에 중국 노동자들의 이주 과정을 무시 할수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간의 국교 정상화 과정과 천안문 사태에 따른 전래 과정을 간과 해서도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지구 단일 공동체로서의 생활 여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것"과 "네것"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무한 경쟁에 돌입해 있는 상황으로 이마당에서 "한(韓)의학"이냐 "한(漢)의학"이냐 논쟁하는것에 의견을 달고 싶지 않음은 물론 이곳 미국에서는 한방 의학을 TCM(전통중국의학)으로 알고 있었으나 점차 OM(동양의학)으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현재는 한의사를 침구사의 역활로 국한 시켜 보는 것이지만 점차 OMD 과정으로 이행하여 나가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TCM이건 OM이건, 침구사라고 칭하던 한의사라고 칭하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추어 훌륭한 치료 효과를 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이성적 합리적 실증적으로 납득되어 지도록 설명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며 오늘 이시대를 이끌어가는 미국 주류 사회 특히 의료 분야 관계자들이 한방을 바라보는 유일하고 지대한 관심사인 것이다.
미국에서의 한의학을 나무에 비유 하자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내린 깊은 뿌리와 줄기는 분명 동양적 사상과 이론으로 채워진 한의학이지만 이런 줄기로 부터 나온 가지와 가지에 붙은 꽃과 열매는 장차 미국적인 상품성을 가지고 위력을 발휘할 충분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는 한의학이라 하겠다.
따라서 현재는 한의학을 양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제한적으로 인정은 하되 양방에서 문제 해결이 어렵고 잘 안되는 경우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 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경우에 양방과 한방 사이의 정보 교류를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대두되므로 한의사들에게 양방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도록 양방적인 지식을 갖출것을 요구하면서 한방 침구사 자격 시험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양방 지식의 비중을 높이는 경향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양방 문제 풀이를 포기한다하여도 그다지 합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지난해 6월 부터 미연방 침구사 자격 시험에서 양방 의학 50문항이 별도의 과목으로 추가되어 기본적인 양방 지식을 갖추고 양방 문제를 풀어 내어야만 침구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였고 캘리포니아 침구 위원회에서도 금년부터 침구사 면허 시험에 양방적인 개념을 지니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방 지식을 요구하기로 하였으니 기존의 침구사 면허를 갖고 진료를 하고 계신 분들도 유념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될것이며 앞으로 환자분들의 요구 사항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약간 늦은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며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양방에서 기본적으로 원하는 수준까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지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이 기존의 한의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기도 하겠지만 장래를 위하고 후배 한의사들이 이땅에서 존경 받는 한의사로서 지위를 갖출수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듯이 치루어야 할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의 세상에 환자를 보면서 환자의 질환에 대하여 환자들이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 보다도 못한 상식 이하의 수준으로 제대로 알지 못해서 얼버무리거나 전혀 달리 설명해주는 황당 무계함으로 환자분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만 가중시키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한의학이 아무리 두리 뭉실하다고 하여도 그가운데 참으로 경탄 할만한 선각자들의 예지가 담겨 있는 것을 보게되는데 환자들의 상태를 한의학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현대인들의 의식적 사고 구조와 상반되는 내용이 많을 뿐아니라 많은 환자를 보게 됨으로써 환자 개개인에 할당되는 시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더욱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의학적 문화와 의식 가운데 살아온 사람도 이러할진데 하물며 서구적 사고를 지닌 분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설명하면서 납득시키려 하는것은 무리인 것이다.
하지만 근래 동양적인 문화와 의식에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의외로 한방적인 치료의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한방이 이곳 미국의 주류 사회에도 뿌리를 내릴수 있는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짧은 미국의 주류 역사속에서 획기적으로 발전을 거듭해가는 양방 의학의 놀라운 위력 앞에 수천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한의학이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각고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손자 병법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싸움에 이기려면 우선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우선 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년초에 동양 의학을 주도하는 중국, 한국, 일본 세나라의 한의학자들이 우리몸에 있는 침자리 가운데 361개의 경혈중 약 사분의일 가량 되는 상이한 침자리 위치를 하나로 통일 시키기 위한 모임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 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의 한의학의 흐름은 일본에서는 양방 의사가 한방 의학을 다루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양방과 한방 공통적으로 기본적인 양방 기초 의학을 공부한 다음 양방과 한방으로 나뉘어 전공하게 하며 한국의 한의과 대학에서도 기초 양방을 중요시 하며 6년의 과정을 이수하여야만 학의학사 학위를 수여 할뿐 아니라 한의과 대학을 졸업 후 한의원 개원시에는 초음파 기계를 갖추는 것이 관례이며 조금 규모가 큰 한방 병원의 경우 대부분이 CT 진단 기계를 가동 할뿐 아니라 양방 의사와의 협진을 통한 진료의 양방적인 과학화와 객관화에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과학 문명 시대에서 생존경쟁 가운데 적자 생존을 위한 한방의 과학화는 필연적인 것으로 양방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위한 끊임없는 대체의학의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니 넓은 바다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의 실용적 합리적 사회에 한의학을 파종하는 자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언론 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종류의 주간(週刊) 문자 매체들이 있으며 그내용중에 많은 건강 관련 컬럼이 연재 되는 것을 읽어 보노라면 간혹 사리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배전의 노력을 함으로써 넓은 미국땅 가운데 이곳 서북미 지역 만이라도 배우고 익히며 확실한 일에 거하는 마음 가짐을 갖고 건강 백세를 선도하는 신천지 미국에서의 한방 의학이 되는데 선구자적 역활을 할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미국남편(AMERICAN HUSBAND)

언젠가 이런글을 서울의 어느‘의사회(醫師會)’에 쓴적이 있었다.
간뎅이 부은 남자 시리즈가 생각 납니다
국한솥 끓여놓으면 어떻게하고 이삿짐 트럭이 오면 어떻게 하라는 행동 강령이지요
이곳에서 산지 얼마않되고 늘 한국방송 보고 듣기에 내가 한국에 사는것인지 미국에 살고있는것인지 혼동할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살면서 어느정도 도(道)를 터득했지요
배우자라는 개념을 중요시 하고 묻지를 말것 등
그래도 환자들을 보면 결혼유무 및 배우자와 자녀 관계를 물어보는데
특히 미국 남자들과 사는 한국 여자분들의 한결같은 대답이 “너무좋다” 입니다
더구나 한국남편을 가졌었던 분들의 대답은 두말하면 잔소리로 “너무너무 좋다” 입니다
‘왜 진작 몰랐을까?’ 하면서 너무도 애석하다는 표정입니다.
부인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옆에서 허니허니하면서 꿀물이 줄줄흐르고요
일어나면 신발 신겨주고요 어쩔줄 몰라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 입니다.
위기의식(?)이랄까 불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한번씩 다짐을 해보지만 여전히 “이봐, 어이” 입니다
다큰 아들녀석들도 “밥주세요”입니다
대대로 걱정이 됩니다.
씨가 문젠가 밭이 문젠가 모르겠지만 터가 다르긴 다른 모양입니다
운전하면서도 옆에 의젖하게 앉아있는 개들을 보면서도 ‘다르긴 다르구나’하고 감탄합니다
미국남편이나 미국 남자친구들이 너무 좋다고들하니
한국 남자들 살아서도 부인 빼끼고 죽어서도 부인 빼끼게 되었는데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국산(國産)이냐 외제(外製)냐
지금은 대한민국의 제품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필자의 학생시절만 하여도 ‘국산품 애용’이라는 리본을 달고 학교에 다닌 기억이 새롭다.
온갖 구호를 외치던 시대였으므로 씨리즈로 접은 구호를 비닐케이스에 넣고 돌아가면서 바꾸기도 하였다.
연필심은 돌가루가 섞여 써지지가 않았으며 공책 종이는 모조지도 아닌 갱지였으므로 쉽게 찢어지곤 하였는데 물이라도 묻으면 마를때까지 건들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색연필들은 너무도 쉽게 부러지곤 하였다.
간혹 미제(美製) 연필이나 색연필의 미끄러져 나가는것을 쓰노라면 감탄할 정도 였으니 ‘미제는 좋다’는 인식이 각인 될 정도 였다.
오죽했으면 ‘미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하였을까
당시는 빨래 삶을때 쓰던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밀수’라는 말을 귀에 닳도록 들었는데 양담배 양주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길거리에서 양담배를 피우거나 소지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었으니 어찌보면 미제(美製)에 대한 한(恨)이 맺힌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놀라운 발전
수출 한국의 명성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허릿띠 졸라매고 몸배바지 입고 얘쓴 결과이다.
그러나 빠른 발전의 결과와 급작스런 신분의 변화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과거 일본일들이 ‘현지처’를 두고 ‘기생관광’하던 짓 못지않게 중국과 동남아에서 행하는 것을 보노라면 빠른 발전이 좋은것 만은 아닌것 같다.
허세(虛勢)에 길들여진 한국 남성들의 경우 장래가 염려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한결 같음을 볼때 이제는 달라져야 할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장가를 못간 노총각이 딸처럼 어린 베트남 신부를 데려다가 갈비뼈가 온통 부러지도록 두둘겨 패서 죽게 만들었다하니 사람의 짓이 아닌것 같다.
어찌 어린 처녀애를 데려다 저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끔찍할 따름이다.
좋은것이 좋다
필자는 이곳 미국에 온지도 얼마안되고 미국 사람들 보다는 주로 한국 교민들을 상대하다 보니 미국인들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한다.
때로는 놀랄정도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킬것 지키고 해줄것 해주는 사람들이며 크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만난 몇몇 한인들로 인하여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지금도 피해가 진행중인 것을 보면서 뇌리에 깊이 각인된 ‘미제는 좋구나’하는 선호 인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미국 남편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경우도 많은데
저렇게까지 해주는구나 새삼 놀랄 따름이다.
남편이 좋은지 아내가 좋은지 모를 일이다.
한의학적으로는 이세상의 이치가 음(陰)과 양(陽)이며 음양의 조화를 잘 맞추고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인 것이다.
동양과 서양 즉 한국과 미국 사이에도 음양의 차이가 있으며 남(男)과 여(女) 즉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부부 관계에도 음양의 조화가 있으므로 그 모든 것이 오고 가고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나 견물생심(見物生心),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아니라고 부정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지함의 결과(RESULT OF IGNORANCE)

환자를 보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되는데 참으로 황당한 경우도 들린다.
이곳 저곳에서 침치료를 받았다고 하는데 침을 맞고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위중하게 되는 환자들이 있음을 본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무엇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의 소중함을 안다면 함부로 여기저기에 몸을 내놓고 맡길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언젠가 LA에 갔을때 ‘밟히는게 목사며 한의사다’라는 우스게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남을 위하여 이모저모로 봉사를 하려는것은 좋은 일이다.
불쌍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히면서 침술을 배워 영혼뿐 아니라 육신의 고통을 당하는자들의 육체적 아픔을 치료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고 숭고한 의도에서 출발한 의료 봉사 차원에서 치료를 해준것이라 할찌라도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함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따라서 어디까지 해줄수가 있고 어디서부터는 해서는 안되는것인지를 잘 구분 할줄 알아야 한다.
의욕만 앞서고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여 오히려 화(禍)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근래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의 구역예배 시간에 침을 맞다가 잘못되어 환자가 된 어느 성도의 쾌유를 빌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었다.
침을 찌를때 근육을 찌르는지 폐(肺)를 찌르는지 구분을 할줄 알아야 하고 근막이 무엇이며 늑막이 무엇인지를 아는 해부학적 지식없이 찔러대다가 폐(肺)를 찔러 환자를 치료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를 죽도록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유난히 대침 장침을 가지고 설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현대 의료 특히 이곳 미국에서는 절대로 장침과 대침을 금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의학이 정통의학이 아니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따라서 침을 놓는 사람들도 ‘의사’가 아니고 ‘침술치료사’일 뿐이다.
오늘날은 대침 장침을 찔러 치료해야할 질병도 없을뿐 아니라 대침 장침들고 설치는 침술치료사가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침술치료사로서 침(針)을 놓을수있는 허가를 받았다 할찌라도 배움에 게으름이 없어야 할것이지만 더구나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주워들은 몇가지로 침치료를 하겠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노릇이다.
너 자신을 알라
예전에 자칭 의료선교사라는 분이 있었다.
LA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뿐아니라 한국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까지 환자들을 불러모아 진료하고 돈을 받고 탕약을 지어 주는 완전한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였다.
불법적인 진료행위도 문제가 되었지만 환자들에게서 약값을 받고 경동시장에서 탕제하여 집으로 배달을 시키는 장사를 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복음을 전하며 육신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한의학을 공부한 사역자라면 찾아온 환자들에게 좋은 방제를 알려주고 경동시장에 가서 탕제해 들도록 안내해 주는것이 도리이다.
그리고 환자들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헌금하여 선교사역에 동참하도록 하는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동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약방과 결탁하여 환자와의 삼각 커넥션을 이루는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과욕이 화(禍)를 부른다
한의원을 내고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일을 하면서 환자 진료보다는 환자 유치를 위하여 사람만나러 다니는 비즈니스를 하거나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해대며 환자를 현혹되게하는 것은 한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는 거리가 먼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의 시대에 현대 의학으로도 진단이 되지 않거나 뾰족한 치료의 방법이 없어 애태우며 고통당하는 환자들의 증상을 치료해 주는 방법을 한의학에서 찾아야 하는것이다.
내몸이 아니라고 여기저기 좋다고 하는 침자리들을 마구 찔러 그중에 하나 맞으면 다행이라고 여기며 환자들의 찔리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침통을 내려놓고 한의원을 접어야 할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여기저기 마구 찌르다가 불행스럽게도 어느한 곳을 잘못찌르게 될때 환자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해부학적 지식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
모든 세상살이가 그러하지만 의료는 만에 하나‘일어날수 있는 일’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죽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혹시라도 잘못 놓치게 될수도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확실하게 갖추는 것이다.
어림짐작으로 할일이 아니요 모르면서 아는척 할일도 아니고 요행을 바라며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오직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해야만 되는것이니 결코 배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한의학은 침(針) 한방으로 일으키고 살리는 효험을 볼수도 있는 효과가 있으나 대충 흉내내며 찌르다가는 사람을 죽일수도 있는 무서운 의료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을 환자 거래하는 돈벌이 장사로 가볍게 여겨서는 결코 안 될것이다.

무식함과 살인(IGNORANCE & KILLING)

세상에 많은 학문이 있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醫學)만큼 오묘하며 조심스런 분야는 없을 것이다.
건물을 짓다가 잘못되면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되고 그림이나 도예를 하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시 그리거나 다시 빗고 구워 내면 된다.
화학이나 물리학처럼 여러 가지 실험을 해야 되는 경우에도 실험 결과에 따라 수백번 수천번의 실험을 반복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학 분야에서는 사람의 몸에 약물을 주입하고 난 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여 이미 투약된 약물을 뽑아 내고 다른 약물을 바꾸어 주입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외과 수술의 경우 수술이 잘못 되었다고 하여 떼어난 장기를 다시 붙이고 다른 장기를 적출 할 수 없는 이야기 이다.
그만큼 의학이란 한치의 실수도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환자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한방병원에 내원하시는 환자분 들로부터 많은 소리를 듣게 된다.
어제 내원하신 목사님은 어느 한의원에서 “간(肝)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었다”는 진단을 받고 한약 한재를 지었는데 복용 후에도 효과가 없다며 한약 봉지를 들고 찾아 오셨다.
다른 한분은 침술사로부터 약침(藥針)을 맞고 부작용으로 응급실로 실려가는 등 죽을뻔하고 깨어 난 후 부터는 가슴이 조이는 증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하였다.
두 분의 환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명언(名言)을 생각하였다.
보고 배우고 익혀라
먼저 간(肝)의 병리(病理)에 대한 의학지식의 무지함에 놀랄 뿐이며 약(藥)이 독(毒)이 될 수도 있는 약리(藥理)도 모르는 만용에 경악 할 따름이다.
간(肝)에 관한 해부학적 구조는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에서나 다 같은 간 덩어리이다.
다만 현미경적 구조와 분자 생물학적인 생리 기전을 밝혀낸 현대 의학과는 달리 그모양이나 생김새에 따라 장군(將軍)같으며 혈액을 저장(藏血)하고 소설(疏泄)을 주(主)한다고 하였다.
현대 생리학과 병리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어떻게 알았을까?’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좌간(左肝)으로 설명을 하는 것을 볼 때 오른쪽 왼쪽도 구분을 못하는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필자가 한의과 대학에서 강의 할 때 좌간(左肝), 우폐(右肺)로 알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해부학을 그림책으로 공부하는 한계를 많이 보았다.
물론 오른쪽 왼쪽의 관점이 음양이라는 개념적 이치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을 해부학적 무지와 한의학적 깨달음의 부족이라 느끼게 되었다.
제대로 알기나 하나
환자에게 ‘간이 딱딱하게 굳었다’고 하면서 한약 한재를 먹으라고 하는 침술사가 있으니 한의학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의사들로부터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간(肝)이 어떻게 생긴 것 인지를 모르고 간경화가 무엇인지를 모르니 ‘딱딱하게 굳었다’고 하면서도 치료한답시고 한약을 먹으라 하는 것이다.
간(肝)은 만져보면 따끈따끈하고 보들보들한 장기이다.
‘딱딱하고 굳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간이 섬유화되면서 점차 굳어져 가는 것을 간경화, 간경변이라 진단 하는 것이다.
간경화가 진행되어 그야말로 딱딱하게 굳어가게 되노라면 복수(腹水)가 차오르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환자에게 한약을 먹으라는 것은 마시고 죽으라는 말과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참으로 무식하면 용감하고 무식한 만용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약리에 관한 지식도 없으면서 함부로 약침(藥針)을 찔러대는 것 역시 무식한 용기의 극치이다.
약침(藥針)이란 주사와 같은 이치로 약물을 주입하는 것으로 자침과 함께 약의 성상에 따라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고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곳에서는 한약이 약이 아니고 보조식품으로 분류된 탓에 아무나 한약을 다려서 팔 수가 있다.
즉 침구사는 약물을 다루는 자격이 없으므로 약침 치료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의사들도 약의 성분에 따라 근육이나 피하, 정맥내 주사를 하는데 정맥내로 투입 해야 할 약물이 흘러나와 근육이나 피하에 투약이 되는 경우 조직이 썩게 되는 괴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살인의 길
그러나 정맥인지 동맥인지 혈관도 구분 못하며 정맥 주사 한번 제대로 놓아 본 적이 없는 침술사들의 경우 용감하게 약침을 찔러대는 것은 무지와 무식의 탓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간을 치료하는 한약을 지어와 복용하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던 목사님은 필자에게 침을 맞으면서 기운도 나며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였다.
육십 평생 침을 맞아보지 않았던 목사님은 침이 이렇게 좋은 것을 몰랐다고 했다.
질병에 대하여 제대로 모르고 인체의 해부와 생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므로 진단을 잘못하고 치료를 잘못하는 것을 볼 때 염려되는 바가 크다.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잘아는 것처럼 무조건 한약을 먹으라 든지 마구 약침을 찌르겠다고 달겨드는 것은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고 살인자의 길이 되는 것이다.

모자관계(MOTHER & SON)

세상에 모자(母子) 관계의 소중함을 설명하는 표현이 너무도 많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많은 산모들의 분만을 개조해 왔지만 출산의 과정만큼 극(劇)적인 만남의 장면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피(血) 튀기며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인생의 대하 드라마이며 삶의 대 서사시인 것이다.
세상에 어머니(母)만큼 자식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관계는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한의학의 근본 원리인 음양 오행의 이론에 따르면 상생(相生)의 개념을 중요시 하는데 모자(母子) 관계로 설명을 하고 있다.
어머니(母)는 아들(子)을 도와주고 살리는(生) 주체로 여기는 것이다.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 오행의 운동 규율이다.
즉 어머니(母)인 목(木)은 아들(子)인 화(火)의 생아자(生我者)요, 아들(子)인 화(火)는 어머니(母)인 목(木)의 아생자(我生子)가 된다.
따라서 목(木)인 간(肝)은 화(火)인 심(心)을 도와서 살리는 것으로, 화(火)인 심(心)은 토(土)인 비(脾)를, 토(土)인 비(脾)는 금(金)인 폐(肺)를, 금(金)인 폐(肺)는 수(水)인 신(腎)을 수(水)인 신(腎)은 목(木)인 간(肝)을 도와 주고 살려주는 생(生)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오행(五行)의 원리에는 상생(相生)과 함께 상극(相克)의 원리가 있어 억제가 없으면 무제한으로 성하여 해롭다는 개념이 있다
즉 木克土, 火克金, 土克水, 金克木, 水克火의 극아자(克我者)의 억제 제약의 원리이다.
관점의 차이
이러한 원리 설명은 ‘A는 B이고 B가 C이면 고로 A는 C이다’는 삼단 논법에 근거한 논리와 상충하는 것이 되므로 현대인들의 논리적 사고와 배치되는 까닭에 한의학의 이론이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학문적인 괴리이다.
서양의학은 정확한 근거에 따라 모든 것을 객관적인 디지털 데이터로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한의학은 ‘관계’를 바라보는 ‘관(觀)’에 따라 주관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수 천년 전의 세상은 과학적인 기계로 측정 할 수도 없었기에 환자의 표현과 의사의 느낌에 따라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의 입장에서 간(肝)을 목(木)으로, 심(心)을 화(火)로, 비(脾)를 토(土)로, 폐(肺)를 금(金)으로, 신(腎)을 수(水)로 간주하고 이들 사이의 연관 관계로 몸의 건강 상태를 이해 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에 감탄 할 뿐이다.
물론 한방의 이론이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틀린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수천년 전의 세상의 학문적 지식을 고려 할 떄 매우 훌륭한 지혜의 컨셉이라 하겠다.
수학적인 표현을 하자면 서양 의학인 집합 A와 한의학인 집합 B사이의 교집합이라 이해 하면 될 것이다.
오늘날 한의학의 나아 갈 방향은 양방과 한방 사이의 교집합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며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양의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 수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
여기에 상생과 상극의 오행이론에 따른 모자 관계의 설정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모자의 관계를 이해하면 해결 못 할 문제가 없다.
어머니의 모성애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덮어주며 도와주는 위대한 ‘블랙 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지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돌아가 쉬고 싶어지는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 상정이다.
30여 년전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지어의 헤비급 경기후 패한 조 프레지어가 “어머니 돌아가 울고 싶어요”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세기의 철권(鐵拳)들이 무시무시한 주먹을 휘두르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어머니의 품이다.
몇 일전 필자의 모친께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신 적이 있었다.
의사로서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의 보호자에게 “몇 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알려 왔던 필자였지만 죽음 앞에 선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지병을 가지고 계시며 80이 넘으신 연세라 떠나 보내 드리며 이별을 고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으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 ‘아 이제는 가시는가 보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쉽고 회한이 남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함께 있을 때 상부 위장관 출혈의 응급 상황이 발생하였고 많은 출혈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내시경하에서 지혈이 되어 회복 중에 계시다.
물론 평소 심폐 소생술을 받지 않고 언제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돌아 가는 것으로 말씀을 해 오셨기에 평소에 중병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불편해도 한번도 병원을 가시지 않으셨다.
생사의 갈림 길
중환자실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 쉬고 계시는 외소한 모습의 모친을 바라보면서 50년이 넘는 지내온 세월의 모자(母子) 관계를 돌아 보았다.
특별히 몸이 불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친께서도 여느 어머니와 같이 자식을 위한 수고와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던 것이다.
서울 남산 국민학교를 다닌 필자는 버스 통학을 했는데 당시는 남대문 시경 앞에 정류장이 있어 학교에서 명동 충무로 신세계 백화점을 지나 자유 시장에 계셨던 어머니를 뵙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곤 하였다.
학교가 끝나고 올 아들에게 삶은 밤을 까 놓거나 당시에는 귀했던 미제(?) 쵸코렛을 사놓고 기다리시며 때론 회현동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 먹여 보내곤 하시던 어머니였다.
오십 여 년의 지나온 세월이 새롭게 떠오르며 느껴지는 어머니이나 기나긴 십대의 방황을 보였던 부끄런 자식의 모습이 송구스럽게 느껴질 따름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補)하고 자식은 어머니를 사(瀉)하는 보사법이 한방의 치료 원리에 속하는 것을 보니 이것이 인생사 모자 관계인가 보다.
중환자 실에 누워 힘겨워 하시는 어머니를 간병 하면서 느끼는 아들의 소회이다.

모든 길은 교회로 통한다(CHURCH)

흔히 한국사람 둘이 모이면 교회를 만들고 셋이 되면 쪼개져 하나를 더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민 사회의 특성상 미국의 시작이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하였고 한국인의 적응력이 개척정신과 어울려 교회를 많이 이룬것 같다.
이민교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나 교회속에 세상 비즈니스를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인 사회의 특성상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데 먹고사는 비즈니스와 연관시키면서 문제가 파생 되는것을 많이 보게된다.
교회의 경우 참여의 정도가 낮아 뜨뜨 미지근 한것도 바람직한것은 아니나 감당치도 못할일에 나서는것이 더 큰 문제이다.
더구나 교회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무슨사역이니 무슨선교니 하며 비즈니스를 위하여 위장 시키는 자의 소행이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는 것이다.
길을 찾아서
성경 말씀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길 가운데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고 가고 싶지만 가서는 안되거나 못가는 길이 있다.
생명의 시작이 무수한 정자(精子)들의 방황 가운데 제대로 길을 찾은 오직 하나만의 올바른 선택에 의하여 잉태가 되었고 정해진 길을 통하여 이땅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삶은 죽음이라는 종착점을 향하여 이리 저리 흐르고 흘러 가게 된다.
이땅에 태어나 언젠가 죽는것은 정해진 이치이기에 생(生)과 사(死)사이의 온갖 삶의 여정이 있으며 수없이 많은 사연들이 깃들게 되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 서러움과 원통함, 흐뭇함과 놀라움, 사랑함과 미워함 등 모든 감정의 마음이 담기게 된다.
만남
인간의 모든 만남이 어우러져 좋은 인연을 이어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서로의 악연을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이해타산이 결부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분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인데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그 후유증이 크게 남는 것이다.
이민 사회의 수많은 교회도 복음전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수를 더해 가는것이라면 그보다 더 좋을수는 없는것이나 흔히 다툼으로 갈라져 나온 교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교회가 많아질수록 사회에 덕(德)을 세워야 할일이나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음은 볼때 모든것이 욕심과 결부된 이해타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수가 더해가는것은 모든 것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민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다보면서 느끼는바는 서양의학에 비하여 한의학의 경우에는 환자나 의사의 마음먹기 여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氣)가 무엇이며 혈(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 할 사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하여 모든 답이 틀린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일리가 있는 말이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모르면서도 잘난척 할수도 있고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좋다고하는 침자리들 찌르다 보면 어쩌다 효험을 볼수도 있는것이 한의학이다.
그러나 침술치료는 그야말로 한방에 효과를 볼수있도록 침을 적게 찌르는것이 중요하다.
뉘어놓고 찌르고 엎어놓고 찌른다면 어쩌다 나을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알고 치료하는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는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온갖 조미료 섞어가며 간장 넣었다가 짜다고 물붓고 다시 싱겁다고 소금넣는 짓을 반복하는 것이다.
침술의 매력과 능력은 환자를 보고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다.
본질의 문제
세상의 수많은 질병가운데 서양의학이 해결 못하는것을 한방으로 해결 할수도 있지만 그렇다고하여 한의학이 서양의학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아니된다.
한의학으로 할수 있는것이 있고 한의학으로 되지가 않는 것이 있다.
오늘날 정립된 서양의학적인 지식과 술기를 익힌후 한의학의 본질을 지킬때 환자들에게 고통을 적게주며 치유의 기쁨을 얻도록 할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 할수록 온갖 사이비적인 치료법이 난무하며 대단한 시술을 하는 인물인것 처럼 광고 해대는 것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본질에 충실 할것이다.
의학의 목적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며 생명을 살리는데 있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거짓이 있을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최선을 다하는것 만이 진실이기에 거짓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교회도 세속의 흐름에 따르기 보다는 신앙의 본질을 지켜야 할것이다.
모든길은 교회로 부터 통한다.
그속에 참 생명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것은 마음 먹기 달려있다(一切唯心造)

一切唯心造
세상을 살아 가면서 제마음대로 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하고싶은대로 했으면하는 바램에 권력을 갖고 싶어하고 돈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몇해전 "부자되세요"라는 인사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다.
말로나마 부자되라는것이 싫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무소불이의 권력을 휘두르며 원없이 맘껏 쓸만큼 큰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다.
근래 빌케이츠가 "부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하여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한 말이지만 부자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에겐 작은 충격이되었으리라
얼마전 아는분이 아들 학교모임에 참석하여 후원하러온 빌케이츠도 똑같은 의자에 앉은것을 보았다고 한적이 있다.
부자가 좋은것은 오직 한가지 "발라스를 확인 안해도 된다"는 점이다.
모두가 마음껏 눈치안보고 카드를 긁거나 체크를 쓰고 싶으나 '발라스'를 생각 안할수 없으므로 늘 마음에 갈등과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번민과 고통이 '스트레스'가 되어 현대인들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러나 부자라고해서 고민되고 걱정되는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기에 정도의 차이라 하겠다.
여기에 한가지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것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이다.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효대사가 34세에 의상과 함께, 당나라 현장 법사와 규기 화상에게 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옥에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10여년이 지난후 45세 때에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다로 해서 입당하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는 도중 비를 만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해매다 겨우 토굴을 찾아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갈증이 심하여 토굴속에서 고여 있는 물을 떠 마셨더니 도무지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 무덤이었으며 물을 떠마셨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간밤에 그토록 맛있게 마셨던 물이었지만 생각할수록 역겨우며 괴로운것 뿐이었다.
여기서 "유심(唯心 : 모든 사물의 법칙은 오직 한마음에서 일어남)"을 깨닫고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

세상의 모든것이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에 일면 수긍이 간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一切唯心造'가 한의학적 이론과 흡사한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세상을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고 "陰이 다하면 陽이 되고 陽이 다하면 陰이 되는 것이며, 陽속에 陰이 있고 陰속에 陽이 있다"는 음양이론을 느끼게 한다.
보기에 따라 陽으로 볼수도 있고 陰으로도 볼수 있으며 陽이라 해도 틀린것이 아니고 陰이라 해도 맞는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것이 보기나름이니 이러한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부자도 부자가 아니고 가난한자도 가난한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기준에 의한 고정관념이 없으니 생각하기 나름이다.

필자가 산부인과를 개원하였을때는 환자분들에게 엽서로 자궁암 검사와 정기 산전 검사 결과들을 알려주고 재검사 날짜를 통보하면서 관리를 하면서 매번 내원날짜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한방 병원을 개원하고는 오라 가라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지 않는다.

환자가 의사를 잘만나는것이 복이 되듯이 의사도 환자를 잘만나야 되는 것이므로 모두가 '제복(福)이다' 생각한다.
다만 진찰과 치료를 할때 서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비교 설명하면서 가장좋은 치료방법을 알려주며 알아서 하도록 한다.
대체로 환자들의 반응을 보노라면 질병의 예후를 알수가 있는데 특히 한의학의 경우 더욱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지난해 얼굴의 풍(風) 치료를 받은 젊은 부부 환자의 경우 풍은 물론 치료하는 필자도 놀랄정도로 산후풍, 매핵기(목에 걸린것 같은 느낌), 만성 설사등 여러가지 증상들이 나아졌는데 한국에서 오신 양쪽 부모님들까지 모시고와 치료를 받고 약을 들게 하였고 또 매번 내원 하는것을 볼때 잘치료되는 경우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며 치료의 반응을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나며 예후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컵에 반쯤담긴 물을 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할수도 있고 반밖에 안남았다고도 할수있다.
생각에 따라 치유의 과정이 다르고 치료의 결과가 달라질수 있다.
이점이 서양의학과 다른점으로 한의학을 의철학(醫哲學)이라 하는것이다.
항간에 필자의 신문 칼럼이나 라디오 대담 방송에 관하여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있는가보다.
필자의 신문 칼럼을 복사하는것은 물론 라디오 방송을 녹음까지하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서면이나 전화등으로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불만이 있고 손해를 본다하여도 한의학이 이땅에 뿌리를 확실히 내리기 위해서는 한의학이 새로와져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입증된 이론을 중심으로 누구나 알아들을수 있도록 정확하게 설명을 하여야 한다.
불치 난치 질환에 대한 치료율을 높여야하고 누구나 이해가 되는 한의학이 되어야하며 누구에게도 이해시킬수 있는 침술치료사들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필자의 칼럼 내용은 오직 더나은 한의학을 위하여 끊임없이 분발할것에 관한 방향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공부를 통하여 신뢰받는 한의학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모든것은 마음먹기 달려있다(一切唯心造)'고 하였으니 이또한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 질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 발전과정을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을 하였는데 서구문화 가운데 동양의료문화인 한의학을 정착 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별일없이 잘지냈다고 했다지만 돌아보면 자신들이 더 잘알일이다,
이제는 달라질때가 된것만은 확실하다.
더나은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한의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할때인가 생각해보고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할일이다.

몇가지를 생각하며(OPINIONS)

워싱턴주에서 유일하게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땅에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식시키고 워싱턴주 한인들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수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건강과 장수 입니다.
즉 오래살되 건강하게 오래 살게되기를 바라는 것 입니다.
오늘날 웰빙의 거센 바람이 그것인데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양생(養生)이라 합니다.
최근 인간의 평균수명이 90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60세 환갑의 나이는 연세 축에도 끼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안락한 삶을 누리며 오래 살게는 되었지만 수없이 많은 질병과 증상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과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의료 장비가 개발 되었지만 제대로 진단하지 못할 뿐아니라 뾰족한 치료의 방법이 없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원시 시대이후로 오랜세월 동안 질병을 보는 관점이나 주술적치료 방법은 별로 다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서양의학의 놀라운 발전은 동양의학으로 대변되는 한의학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구분짓는 관점들이 많이 있으나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서양의학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규명해 나가는 학문이라 한다면 한의학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봅니다.
즉 하나의 증상을 보고 서양의학은 원인을 찾아 이것이냐 저것이냐 ‘DECISION MAKING’을 해나갑니다.
열이 심할때 발병 원인이 감염증이라면 감염균의 종류를 찾아내기 위하여 균배양 검사와 항균제에 관한 감수성 검사를 실시하여 박테리아인지 곰팡이인지 바이러스인지 찾아내고 그균에 가장 잘듣는 항생제나 항균제를 선택하는 진단과 치료의 방법을 찾아 갑니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를 우선시 하므로 열이 있다고 하여도 겉으로 풀것이냐 속으로 없앨것이냐 그리고 불을 끌것이냐(瀉火), 피를 식힐것이냐(凉血), 습을 말릴것이냐(燥濕), 독을 없앨것이냐(解毒) 또는 음을 보충할것이냐(補陰)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과정을 중요시하며 과학적 지식을 배운 현대인들에게는 원인과 결과를 매우 중요시 하므로 나름의 변증논치를 한다고하는 한의학의 경우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문제는 수천년전의 이론적 근거를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지식에 결부시키다 보니 믿을수 없는 정도의 의학적 지식의 차이가 나는것 입니다.
달나라의 계수나무아래 있는 토끼를 생각했던 시대와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달나라를 건너집 드나들 듯하는 세상과는 다르지요.
문제는 보잘것 없었던 지식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의 지혜를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인간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도닥이는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장육부는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적 기능이 똑같습니다.
지식의 부족으로 세부적인 구조와 기능을 알지 못하면서도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옛선조들의 우주관, 인간관, 질병관 그리고 인생관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영(靈)적이라 할까 심오한 이치를 께달았던 옛 조상의 눈에 인체의 경맥과 락맥 그리고 경락들이 보였고 기(氣)와 혈(血)의 순환이 보였는지 모릅니다.
한의학적 치료가 이러한 논거를 근거로 침을 찌르고 뜸을 뜨고 약재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마치 성서(聖書)적인 신앙관과 유사하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믿으며 순종하냐의 문제입니다.
다만 의학(醫學)인고로 오늘날 최신의 현대 의학적 지식을 익히고 난후 옛 선조들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방법이 옳은것 이지요.
서양의학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그리고 병리학을 비롯한 기초 의학 지식과 이를 토대로한 내과 외과등의 임상지식이 없이는 한의학을 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몸의 오장육부 가운데 비(脾)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는 중앙 토(土)이며 주운화(主運化)로 청양지기를 상승시키며 주통혈(主統血)하는 공능이 있는데 비(脾)장은 영어로 SPLEEN 입니다.
SPLEEN(비장)은 서양의학적으로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임파기관 입니다.
그러나 비장(SPLEEN)은 한의학에서는 위(胃 STOMACH)와 더불어 소화기계에 속한다고 보지요.
근래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비(脾)와 위(胃)의 표리 관계를 언급하면서 비(脾)가 SPLEEN이 아니고 PANCREAS(췌장)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의학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역시 신(腎)이라고 하는 신장(콩팥)도 영어로는 KIDNEY(신장)이나 실은 ADRENAL GLAND(부신)을 빼놓고 신(腎)을 KIDNEY로 설명해서는 인체의 해부생리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가 되고 맙니다.
서양의학적인 해부 생리에 관한 지식없이 함부로 SPLEEN(비장), KIDNEY(신장)가 어떻다고 해서는 불신만 가중시키게 됩니다.

다만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의 오장과 표리가 되는 육부의 상호 연관성 및 오장 육부를 칠정(七情) - 노(怒), 희(喜), 사(思), 우(憂), 비(悲), 공(恐), 경(驚) - 이라는 심리적인 요인과 결부시킨 선조들의 안목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는 세포가 무엇이고 효소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지요.
즉 서양의학에서는 간(肝)이 나쁘다고 할때 두근 정도 나가는 간덩어리를 보는것이 아니라 간을 이루는 수천억개의 간세포를 보고 간세포내의 생리기능과 분비되는 효소들을 분석하여 비정상적인 소견을 파악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노여움(怒)이라는 요소는 개입이 되지가 않습니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간(肝)의 소설공능을 보면서 분노의 감정을 연관시켜서 인체를 보았습니다.

한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대로 부터 인간은 병이 나면 그것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약초가 발견되어 왔습니다.
수천년전 신농이라는 분이 하루에도 70가지의 독초를 맛볼정도로 여러가지의 풀을 맛보아 약초를 발견했다는 일화가 있지요
이와 같이 수천년 동안 구전으로 내려온 경험이 누적된 천연 약물을 본초라 말하며 본초는 한방적 사고에 의하여 약효를 설명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약물의 성분을 분석하여 어떠한 약리작용을 하는지 찾아내서 증상의 치료에 사용합니다.
오늘날 복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약제들은 약효를 지닌 성분을 추출해 내었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이지요
이곳 미국에서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물 중 하나가 아스피린입니다.
히포크라테스시대부터 버드나무 껍질을 해열과 진통의 목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버드나무 껍질내에 함유된 아세틸 살리실산이 즉 아스피린 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武科)시험을 보던중 말에서 떨어져 다쳤을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묶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도는 없으나 연관성이 있지 않았을 까 생각됩니다.
본래 아스피린은 요통 치통 생리통등 해열 진통제로 사용이 되었지만 1967년 아스피린에 혈소판이 서로 엉겨 붙어 위험한 응혈이 형성되는 것을 예방하는 '항혈소판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1996년부터 미국 FDA가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아스피린 처방을 인정하여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많이 복용하고 있지요.

옛 선조들은 한약재의 기(氣) 미(味) 형(形) 색(色)에 따라 약의 성상을 나누어 이용하였습니다.
온갖 가지 줄기 잎 뿌리 열매 꽃의 느낌이나 생김새 그리고 맛과 색깔에 따라 어느 장부에 효과가 있을런지 미루어 치료에 이용한 것입니다.
즉 황기처럼 곧고 기다란 뿌리들은 뻗어오르는 기상과 연관 시켰고 뾰족한 모양은 찌르고 터뜨리고 하는 기능과 연상 시켰으며 약의 뜨거운 성질과 차가운 성질을 구분하였지요.
다섯가지의 맛(신맛,쓴맛,단맛,매운맛,짠맛)과 색(푸른색,붉은샛,누런색,흰색,검은색)도 오행(五行)에 귀속시켜 설명을 하였습니다.
예를들면 백도라지의 흰색을 폐(肺)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거담 기침에 이용하였으며 그 매운맛 또한 폐의 기운과 연관시킨것 입니다.
흔히 시중에서 ‘용각산’이라는 백색 분말가루약도 길경(도라지)이 들어가 있지요

그러나 한의학의 기본원리가 공식처럼 음양오행이나 모든것이 구분대로 나누어지고 모든것이 분류대로 효과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한의학에서는 ‘태과불급(太過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는다’는 뜻이지요.
백색(白色)이 폐(肺)에 좋다고하여 백색식품을 폐병치료에 쓴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백색식품을 많이 먹는다면 오히려 폐(肺)를 안좋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의학은 음(陰)과 양(陽) 사이 중용의 조화를 치료의 목표로 삼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것이 치료의 과정입니다.
음식 섭생도 편식하거나 과식하지 말고 골고루 섭취하여 조화를 이루는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며 자연의 순리대로 제철에 나는 식물을 신선하게 드시는것이 양생의 법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방에는 누구나 만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수치적으로 정해진 합격선이 없습니다.
백점짜리는 백점짜리 대로 오십점짜리는 오십점짜리 대로 나름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좋은것이며 만족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족(自足)할 줄알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요 삶의 철학입니다.
즉 건강이지요.
한의학은 의철학(醫哲學)이요 서양의학을 의과학(醫科學)이라고 하는것을 깨달을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의과학적인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한의학을 바라본다면 그런 엉터리도 있을수가 없는것 이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는것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고 절대로 환자 치료를 맡길수가 없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위한 교육을 받아온 현대인들에게 A가 B이고 B가 C이면 A는 C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의학에서의 상생상극 원리를 살펴보면 간(肝)은 심(心)을 도와주고(生), 심(心)은 비(脾)를 도와주는데 간(肝)은 비(脾)를 극(克)한다 즉 억제한다고 합니다.
삼단논법상으로는 A는 B를 돕고 B는 C를 돕는다면 고로 A는 C를 돕는다가 되지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비(脾)를 설명할때 SPLEEN(비장)으로 이야기하거나 신(腎)을 이야기 할때 KIDNEY(신장)로 설명하면서 ADRENAL GLAND(부신)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은 무식함의 극치가 됩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고개를 끄덕일것 이지만 서양의학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돌릴것입니다.
더이상 떠들어봐야 ‘쥐뿔도 모르면서 되게 잘난체하는 못봐줄 일’입니다.
먼저 해부 생리에 관한 서양의학적 최신 의료 지식을 갖추고 난후 오랜 역사 동안 조상들이 깨우친 한의학적 우주관 인체관에 대한 지혜를 깨우쳐야 합니다.
한의학 원리를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지식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난도질을 한다면 남아나는게 거의 없습니다.
아직 현대 의학적으로도 규명이 안된것이기에 잠시 유보시켜 놓을수는 있어도 예리한 칼날에 살아남기는 힘들지요.

현대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한방의 도(道)를 깨우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한방의 매력은 치료의 능력입니다.
서양의학의 놀라운 발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인을 찾지 못하여 진단이 안되고 진단명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와 진단은 되더라도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지요.
서양의학의 한계입니다.
이처럼 어찌할 방도가 없는 답답한 경우에 해법의 단초를 제공 할수있는것이 한의학으로 대체의학 또는 대안의학이라 말합니다.
얼마전 의사선생님으로부터 “NOTHING I CAN DO”라는 말을 듣고 오신 백인 환자가 있었습니다.
대퇴방사통증을 호소 했는데 아마도 FEMORAL NERVE의 문제로 보였는데 한방치료를 받으며 매우 흡족해 하였습니다.
한방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한방을 찾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서양의학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별다른 증상의 호전이 없어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인데 무엇보다도 이때 서양의학적으로 어느정도 이해와 설명이 가능해야하며 그후에 치료의 대안으로 한방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합니다.
환자들이 그동안 병원에 다니며 듣고 본 바를 설명할때 의학적인 지식이 모자라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해서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Rapport가 형성되지가 않습니다.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설령 증상의 호전이 있다고 할찌라도 신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한방의 효험을 확신 시켜주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적인 지식을 익히고 있어야 합니다.
가짜 학위보다는 진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 환자의 증상 치료가 서양의학적으로 효과를 볼것인가 한방적으로 효과를 볼것인가 감별 할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들면 정신을 잃는 혼궐(魂蹶 SHOCK)환자를 볼때 한의학적으로는 독맥을 중요시하여 인중혈과 십선이라고 손가락 끝을 따주고 백회라는 머리 정수리에 침을 놓으라고 나와 있고 우황청심환을 먹아던가 또느 독삼탕(獨蔘湯)이라고 인삼을 진하게 다려 먹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쇽이 발생했을때에는 응급처치의 ABC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氣道)의 확보가 가장 우선입니다.
그리고 쇽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치료의 방법이 다르며 한방적으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고 반드시 서양의학적인 수술의 방법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출혈성 쇽의 경우 출혈부위의 지혈과 혈액의 보충 없이는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십선을 따겠다고 하거나 인삼을 먹여야 한다고 약을 대린다면 환자는 죽고 맙니다.
그리고 정신 잃은 사람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이려 한다면 기도를 막아 질식해 죽게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의학적 감별의 중요성입니다.
우선 순위를 알아야하고 한의학으로 되는일과 안되는일을 분별할줄아는 의료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의학에는‘동의보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400여년전 발간된 책으로 당시 중국의 의서 83권과 조선의 의서 3권을 참고하여 민간에 내려오는 요법을 모아 편찬한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나 출판 여건상 방대한 작업이었기에 의서(醫書)의 집대성이라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지요.
그러나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동의보감의 내용을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하고 시대에 맞게 개역하고 영어로 번역한것 밖에는 달라진것이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이므로 한의학의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내용이 많고 미신적이 내용도 있어‘이불밑에 도끼를 넣고 잠자리를 가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등 허구스런 구절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기념비적인 역사적 가치와 당시의 의료상황을 살필수있는 학술적 가치는 훌륭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한의학을 현대화 시키지 못한점은 애석한 노릇입니다.
반면 400여년전 동의보감이 발간된 즈음 서양에서는 현미경이 발명되고 현미경을 통하여 세포(CELL)를 관찰하게 되었으며 이후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전자 현미경까지 발명하여 세포 뿐아니라 세포속의 핵(核)과 핵속의 염색체 그리고 염색체속의 DNA를 통하여 유전자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꿈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 입니다.

언젠가 클린턴 전대통령이 미국의 의료보험은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 뿐아니라 미국인들의 의식주(衣食住) 생활 습관방식이 심각한 질병의 발생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점에서 한의학의 역활이 필요한 때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한방 시술을 하고 있는 필자의 관점에서는 체질적으로 친숙하지 못하며 침자리인 경혈을 1, 2, 3 숫자놀음으로 익히는 것을 볼때 서구인들에게는 배움의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한의학은 의미와 느낌에 따라 치료의 효과가 다르며 감(感)을 느낄줄아는 도(道)를 터득해야 하는것입니다.
서양의학은 자르고 베고 묶고 꿰메어 주는것에 별로 큰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의학은 같은자리에 침을 놓는다 하여도 감(感)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한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를들어 비빔밥의 재료를 가지고 한데 어울러 비벼먹는 비빔밥의 맛과 비비기가 번거롭다고 밥 한숫가락에 반찬 하나씩 먹고 고추장을 떠 먹는것이 같은 맛은 아니지요.
한방은 우리의 사는 주변의 온갖 여러가지 요소들의 조화속에 독특한 맛(味)과 느낌(感)의 도(道)를 찾는것 입니다.
음양의 상대적인 속성상 모든것이 음(陰)이라 할수도 잇고 양(陽)이라 할수도 있습니다.
음이라해도 틀리지가 않고 양이라해도 틀리지 않는것이 음양의 이론 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중국산이냐 한국산이냐에 관심이 많은것을 봅니다.
한약의 복용에는 환자의 한의학적 진단이 필요한것 이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간(肝)기능이나 신장기능의 검사수치를 아는 서양의학적 지식이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환자를 살리겠다고 주는 한약이 환자들의 간과 콩팥을 망가뜨리게 될수도 있습니다.
침또한 아는지 모르는지 찌르다보면 나을수도 있는것이 침술치료 입니다.
그러나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죽일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문명의 중심인 미국땅에서 한의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인 침술사들이 적다는 점과
둘째 강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중국계와 백인들로 한인들은 거의 없으며
셋째 한인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한의학의 본질적인 문제 보다는 유난히 교통사고와 살빼고 키크게 해주는 비즈니스에 열심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경우 의사와 의사가 아닌 침술치료사의 역활구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일본의 경우는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 가운데 한방을 전공하며 중국의 경우에는 양방과 한방의 기본적 학문을 익히므로 상호 신뢰하에 서로 협진이 가능한것을 봅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양방과 한방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이 있지요.
파이 조각 나누는 문제 뿐아니라 서로간의 불신의 골이 깊음을 볼수 있습니다.
한의학의 경우에도 원조 논쟁으로 중국이냐 한국이냐를 따져 한(漢)의학에서 한(韓)의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매우 소모적인 논쟁이며 국수적인 아집이지요.
필자의 생각으로는 역사적으로나 규모면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통용되는 CTM(중국전통의학)이라는 관례적 용어의 사용면에서 중국의 역활을 인정합니다.
다만 중요한것은 한방적인 치료의 능력을 입증해 내는것이라 봄니다.
무엇보다 본질에 충실해야 할것입니다.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교통사고와 같은 비즈니스광고 보다는 불치 난치 질환 치료의 대안이 되는 한의학의 효험을 알려야 할것입니다.
더구나 제대로 알지못하면서 여기저기 써대는 칼럼들을 보면서 한의학의 능력을 코미디로 만들어 조롱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환자분들 가운데 특히 교통사고 나신분들의 경우 ‘보약이나 한재 지어달라’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환자들의 무지함을 탓하기 앞서 한의학적 치료의 자부심을 잃지 않아야 할것입니다.
한방은 어떠한 질환이든 모든것을 치료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는 아무것도 치료해 줄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 모르면 치료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땅에서 한의학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배우고 익히는 확실한 일에 매진하여 한의학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 주류 사회를 위해서나 한인 이민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후학들의 미래를 위한 침술 치료사들의 사명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