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일 금요일

생명(LIFE)

요즘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최대의 화제는 배아복제 일것이다.
배아복제의 의료적 목적은 질병치료를 위한 조직과 장기의 복제로서 마치 자동차의 고장난 부속품들을 수시로 갈아 끼우듯 인체의 질병을 유발 시킨 불량 조직과 장기를 데체해 줌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는 것이 그목적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추구하는 목적은 좋으나 때로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배아복제의 진행이 장차 인간 복제로 이루어질수가 있으나 그것이 인체(人體)의 복제이지 지(知), 정(情), 의(意),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나"의 모든것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수가 없는 인간으로서는 복제는 할수있을 지언정 창조(創造)는 할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피조물로서의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설정이 되는 것으로 혹시라도 의도가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인간 복제가 현대판 바벨탑이 되어 또다른 재앙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복제기술이 발달 발전 시킨다 하여도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에 의하여 탄생한 인간은 "인간 탄생" 그자체로서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약 7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개중에는 물질문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나 반면에 기아에 허덕이며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아무리 그생명이 살아있는것인지 죽은것인지 조차 구분할수 없을정도의 비참함 가운데 있다고 하여도 "인간" 이라는 존재는 약3억마리의 정자(精子:근래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지만)와 수십만의 난자(卵子:발생과 성장의 과정에 따라 달라짐) 가운데 하나의 조합에 의하여 그야말로 극(劇)적인 수정의 순간을 거쳐 임신기간 동안의 분할과 발생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과정을 지나 세상에 둘도없는 바로 "나" 라는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현대의학의 발전이 배아 복제의 완성에 이른다 하여도 "나의 탄생" 이라는 사건은 천문학적 확률에 의한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가 아니고 엄청난 계획 가운데 택정(擇定)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고귀함이 있는것이다.
필자가 시험관 아기를 시술할적에 현미경을 통하여 난자에 한마리의 정자를 주입 시켜 수정란을 만들고 이 수정란이 분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이 제대로 발생하여 아기로 자라 세상에 태어날때 "시험관 아기 성공" 이라 하였지만 생각하고 음미할수록 산부인과 불임 전문의사로서의 계획과 기술이 아니라 우주 가운데 함께하는 창조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부인 할수 없는 것이다.
한의학의 경우 인간(人間) 이라는 것을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 가운데 하나로 사람의 수태와 출생 그리고 죽음의 모든 과정을 오운육기(五運六氣)를 가지고 설명을 하였는데 이는 세상 년대의 기후의 변화와 질병의 발생과 예후를 예측함으로써 질병의 발생과 경과가 인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인류의 지대한 관심과 소원인 불노장생(不老長生)의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하자는 것이니 비록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미신과 주술적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대우주의 섭리를 규명하여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의도는 높이 평가 하여야 할것이다.
어느 복음성가 가운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참으로 태어난 생명 그자체가 선택 받은 축복이라 할것이다.
더구나 둘도 없는 하나뿐인 희소적 가치의 귀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이지구를 100명이 사는 동네로 축소하여 설명을한 스텐포드 의대 하터 박사의 글을 보면
백명의 동네주민 가운데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은 문맹
50명은 영양부족
1명은 죽기직전이며
오직 한명만이 대학교육을 받았다 한다.
그렇다면 좋은집에 살고, 먹을게 있고, 글을 읽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선택받은 사람이라 할것이며 축복을 받은 것이다.

누구나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하며 한번씩은 고민하고 괴로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것이 어쩌다 태어난것이 아니고 신비로움 가운데 태어난 지극히 놀라운 비밀이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경우 성교(性交)라는 행위를 통하여 여성의 질강내 사정된 무수한 정자가 엄청난 속도로 자궁강과 나팔관의 팽대부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의 달음박질 끝에 배란된 난자를 만나 수정을 하게 되는 것으로 재어 보자면 비록 우리의 한뼘 남짓한 거리에 불과하지만 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정신없이 떠 다니는 것이라 비유 할수 있다.
또한 그토록 수많은 정자 가운데 오직 하나만 살아 남아 수정에 성공한다는 것은 성공이라고 하기 보다는 완전한 실패인 것이 분명한데 경제원리에 비추어 보자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이는 기적중의 기적인 것으로 인류 역사 이래 이러한 기적(?)을 감히 누가 이룰수가 있겠는가?
바로 창조의 섭리 인것이다.
"사정" 과 "수정" 이라는 말은 간단하나 사출력만 하여도 정자에게는 쓰나미 보다 더한 충격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노릇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 조물주의 창조 비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성개방 풍조로 인하여 성적 접촉과 교류가 빈번해 지는 때에 동양인의 경우 서양인의 성관계 빈도수에 비하여 약 절반에 이른다는 조사 보고가 있는데 이는 체격이나 체력, 체질에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남자의 정액(精液)을 진액(眞液)으로 간주하여 함부로 쏟아 부어서는 아니될 것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성(性)의식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요즘 어느 남녀 동료 의사간의 성적 접촉에 의한 출생의 비밀에 얽힌 판결이 회자(膾炙)되고 있는데 정액이 진짜 액(液)인지 가짜 액인지 간에 한의학에서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선천(先天)의 정(精)으로 보고 배출하여 소모시키는데 심사 숙고를 하며 정(精)을 보존하는것이 양생(養生)으로 알고 비록 선천의 품부를 약하게 받고 태어난 경우라 할찌라도 섭생을 통한 후천(後天)의 정으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였으니 성(性)에 관한한 절제와 방종을 구분하여 고귀한 생명의 보존과 건강한 삶의 유지로 이땅에 태어난 보람과 사는 기쁨을 누려야 할것이다.

생리통(PAIN OF MENSTRATION)

생리(生理)라는것은 여성으로서 충분히 성숙하여 수태가 가능하게되었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즉 남자와는 다른 여성의 징표를 상징하여 한달에 한번씩 '달걸이'를 하게 되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넘어가야 하나 때로는 고통가운데 일상적인 생활을 못하며 매우 힘들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근래 '생리휴가'라하여 매달 오는 생리때 정신 심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통증으로 인하여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배려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자유가 많고 하늘로 부터 받았다는 빼앗길 수없다는 몇가지 천부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통된 소원중에 통증(痛症)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가장 으뜸되고 근본적인 것이다.
통증(痛症)을 바라보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은 신경과 신경 전달 물질의 관계를 기지고 수용체가 어떻고 활동전위가 어떻고 자극의 역치가 어떻다고 이를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하며 인체가 용인 할 만한 수준을 넘는 경우에 이런 상황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을 통증(痛症)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통증의 메카니즘과 상호작용에 따른 각각의 단계별로 분석하여 여러가지 진통제 약물이 합성 축출되고 이를 복용하거나 바르거나 주사로 이용되거나 패취형태로 붙이는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약물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할경우 극단적인 방식의 신경 차단술 및 해당되는 장기 부위에 대한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경감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만의 운명적 고통
한방에서는 통(痛) 즉 불통(不通), 불통(不痛) 즉 통(通) 이라 기술 하고 있는데 이말은 간단하나 그내용은 어마 어마하여 한방의 모든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가 오직 통(通)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감히 선언해도 좋을듯하다.
통(通)해야 할것이 불통(不通)하여 기(氣)와 혈(血)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 모자라고 부족해지는 부분이 생기거나 반대로 너무 많아져 흘러 넘치게되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결국은 조화가 깨지게 되는것이므로 음(陰)과 양(陽)의 부조화를 질병으로 보는 한의학적인 질병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불통(不通)된 부위를 찾아내어 통(通)하게 해 줌으로써 통증을 경감시키고 환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치료방법이고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다.
생리통(生理痛)이라는 것이 자궁(子宮)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동통이기에 남성과는 달리 여성에게만 자궁이라는 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여성 특유의 증상으로 혈액내 푸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에 의한 과도한 자궁수축이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자궁 근종이나 자궁 선종이 있는 경우에도 생리통이 올수도 있고 때로 자궁내막증과 같은 질환이 내재되어 있을때 골반강내 또는 직장을 비롯한 여러 이소부위에서 출혈이 발생됨으로써 극심한 동통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여 진통제로도 효과를 못보는 심한 경우가 있다.
양방에서는 진통제와 함께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치료를 시도하지만 효과를 못볼 경우 마지막 해결 방법은 복강경 수술이나 자궁절제술을 시행하여 생리에 관계되면서 통증을 유발시키는 병소를 제거하여 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니 이때야 말로 불통(不通)되어 부족한 곳은 보(補)하여 통(通)하게 해주고 울(鬱)한곳은 사(瀉) 해주어 통(通)하게 해줌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한방의 치료법이 대안이 되는것이다.
이처럼 생리 할때 히스테리하게 평소와 다른 여러가지 육체적 정신적 행동 변화의 양상을 보이는 여성들에게 있어 이러한 특이한 행위를 자궁으로 연결시킨 선인들의 안목도 훌륭하다 하겠다.
자궁이란 것이 여성을 가장 여성답게하며 모성의 지극한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보배로운 곳으로 영원히 잊지못할 우리들의 본향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반면에 이러한 극심한 고통으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따라서 생리통이 있는 경우에는 그생리통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할것이니 양방적으로는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난소를 비롯한 골반내의 염증등 여러 병변이 원인이 되므로 이를 감별하여야 할뿐 아니라 한방적인 개념으로는 내상칠정(內傷七情)인 노,희,우,사,비,공,경(怒,喜,憂,思,悲,恐,警)으로 인하여 기혈이 울체 되거나, 한습(寒濕)이 자궁에 침범하거나, 또는 습열(濕熱)이 자궁의 경맥 흐름을 방해하여 결국 기혈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는 경우 생리통이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을 하는 것으로 자궁이나 난소의 혹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어 나가야 할것이다.
이때도 보할곳과 사할곳을 제대로 살펴야 할것이니 무작정 어혈을 뺀다고 사혈하는것이 능사가 아니며 양방과 한방의 정확한 진단을 통하여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최선의 치료를 받음으로써 묻기 어렵고 이야기하기 힘들어하며 혼자서 고통을 감수하는 여성들이 생리통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흔히 '아이를 나으면 생리통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옳은 이야기로 자궁내에 위치한 신경종말에 관한 해부생리학적인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생리에 관한 여성들의 질환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여성 골반강내의 자궁이나 자궁부속기들에 관한 해부 생리학적인 지식을 갖추어야만 하는데 여성의 뱃속을 들여다 보지도 못하고 자궁이나 자궁부속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여성 내부 생식기를 만져보지도 못하고서는 여성들의 질병을 치료 할수가 없는것이다.
옛날에는 마취나 수술이 어려워 뱃속을 들여다 볼수가 없었으나 오늘날은 배를 째지않고도 얼마든지 뱃속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진단기계로 뱃속을 알수있다하여도 직접 눈으로보고 만져보는것하고는 다르다.
이제는 달라져야만 하는 세상이다. 흉내가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따라서 뇌하수체 시상하부 그리고 여성의 난소와 자궁 그리고 질에 이르는 여자의 내부 및 외부 생식기에 관한 해부 생리를 정확히 잘아는 의사 선생님을 첮아가 제대로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함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생리통증(MENSTRUAL PAIN)

요즘과 같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자유가 많고 하늘로 부터 받았다는 빼앗길 수없다는 몇가지 천부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통된 소원중에 통증(痛症)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가장 으뜸되고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통증(痛症)을 바라보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은 신경과 신경 전달 물질의 관계를 기지고 수용체가 어떻고 활동전위가 어떻고 이를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하며 인체가 용인 할 만한 수준을 넘는 경우에 이런 상황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을 통증(痛症)이라 정의하고 이러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통증의 메카니즘과 상호작용에 따른 각각의 단계별로 분석하여 여러가지 진통제 약물이 합성 축출되고 이를 복용하거나 바르거나 주사로 이용되거나 패취형태로 붙이는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약물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할경우 극단적인 방식의 신경 차단술 및 해당되는 장기 부위에 대한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경감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통(痛) 즉 불통(不通), 불통(不痛) 즉 통(通) 이라 기술 하고 있는데 이말은 간단하나 그내용은 어마 어마하여 한방의 모든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가 오직 통(通)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감히 선언해도 좋을듯하다.
통(通)해야 할것이 불통(不通)하여 기(氣)와 혈(血)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 모자라고 부족해지는 부분이 생기거나 반대로 너무 많아져 흘러 넘치게되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결국은 조화가 깨지게 되는것이므로 음(陰)과 양(陽)의 부조화를 질병으로 보는 한의학적인 질병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불통(不通)된 부위를 찾아내어 통(通)하게 해 줌으로써 통증을 경감시키고 환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치료방법이고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다.
생리통(生理痛)이라는 것이 자궁(子宮)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동통이기에 남성과는 달리 여성에게만 자궁이라는 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여성 특유의 증상으로 혈액내 푸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에 의한 과도한 자궁수축이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이며 자궁 근종이나 자궁 선종이 있는 경우에도 생리통이 올수도 있고 때로 자궁내막증과 같은 질환이 내재되어 있을때 골반강내 또는 직장을 비롯한 여러 이소부위에서 출혈이 발생됨으로써 극심한 동통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여 진통제로도 효과를 못보는 심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
양방에서는 진통제와 함께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치료를 시도하지만 효과를 못볼 경우 마지막 해결 방법은 복강경 수술이나 자궁절제술을 시행하여 생리에 관계되면서 통증을 유발시키는 병소를 제거하여 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니 이때야 말로 불통(不通)되어 부족한 곳은 보(補)하여 통(通)하게 해주고 울(鬱)한곳은 사(瀉) 해주어 통(通)하게 해줌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한방의 치료법이 대안이 되는것이다.
이처럼 생리 할때 히스테리하게 평소와 다른 여러가지 육체적 정신적 행동 변화의 양상을 보이는 여성들에게 있어 이러한 특이한 행위를 자궁으로 연결시킨 선인들의 안목도 훌륭하다 하겠다.
자궁이란 것이 여성을 가장 여성답게하며 모성의 지극한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보배로운 곳으로 영원히 잊지못할 우리들의 본향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반면에 이러한 극심한 고통으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생리통이 있는 경우에는 그생리통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할것이니 양방적으로는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난소를 비롯한 골반내의 염증등 여러 병변이 원인이 되므로 이를 감별하여야 할뿐 아니라 한방적인 개념으로는 내상칠정(內傷七情)인 노,희,우,사,비,공,경(怒,喜,憂,思,悲,恐,警)으로 인하여 기혈이 울체 되거나, 한습(寒濕)이 자궁에 침범하거나, 또는 습열(濕熱)이 자궁의 경맥 흐름을 방해하여 결국 기혈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는 경우 생리통이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을 하는 것으로 자궁이나 난소의 혹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어 나가야 할것이다.
이때도 보할곳과 사할곳을 제대로 살펴야 할것이니 무작정 어혈을 뺀다고 사혈하는것이 능사가 아니며 양방과 한방의 정확한 진단을 통하여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최선의 치료를 받음으로써 묻기 어렵고 이야기하기 힘들어하며 혼자서 고통을 감수하는 여성들이 생리통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뇌하수체 시상하부 그리고 여성의 난소와 자궁 그리고 질에 이르는 여자의 외부 생식기 해부 생리를 정확히 잘아는 의사 선생님을 첮아가 제대로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함응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생리통(DYSMENORRHEA)

생리통(生理痛)



요즘과 같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자유가 많고 하늘로 부터 받았다는 빼앗길 수없다는 몇가지 천부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통된 소원중에 통증(痛症)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가장 으뜸되고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얼마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제2기 취임 연설의 화두도 자유를 기조로 시작이 되었는데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상황을 고통(苦痛)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통증(痛症)을 바라보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은 신경과 신경 전달 물질의 관계를 기지고 수용체가 어떻고 활동전위가 어떻고 이를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하며 인체가 용인 할 만한 수준을 넘는 경우에 이런 상황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을 통증(痛症)이라 정의하고 이러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통증의 메카니즘과 상호작용에 따른 각각의 단계별로 분석하여 여러가지 진통제 약물이 합성 축출되고 이를 복용하거나 바르거나 주사로 이용되거나 패취형태로 붙이는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약물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할경우 극단적인 방식의 신경 차단술 및 해당되는 장기 부위에 대한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경감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통(痛) 즉 불통(不通), 불통(不痛) 즉 통(通) 이라 기술 하고 있는데 이말은 간단하나 그내용은 어마 어마하여 한방의 모든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가 오직 통(通)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감히 선언해도 좋을듯하다.
통(通)해야 할것이 불통(不通)하여 기(氣)와 혈(血)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 모자라고 부족해지는 부분이 생기거나 반대로 너무 많아져 흘러 넘치게되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결국은 조화가 깨지게 되는것이므로 음(陰)과 양(陽)의 부조화를 질병으로 보는 한의학적인 질병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불통(不通)된 부위를 찾아내어 통(通)하게 해 줌으로써 통증을 경감시키고 환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치료방법이고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다.
생리통(生理痛)이라는 것이 자궁(子宮)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동통이기에 남성과는 달리 여성에게만 자궁이라는 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여성 특유의 증상으로 혈액내 푸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에 의한 과도한 자궁수축이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이며 자궁 근종이나 자궁 선종이 있는 경우에도 생리통이 올수도 있고 때로 자궁내막증과 같은 질환이 내재되어 있을때 골반강내 또는 직장을 비롯한 여러 이소부위에서 출혈이 발생됨으로써 극심한 동통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여 진통제로도 효과를 못보는 심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
양방에서는 진통제와 함께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치료를 시도하지만 효과를 못볼 경우 마지막 해결 방법은 복강경 수술이나 자궁절제술을 시행하여 생리에 관계되면서 통증을 유발시키는 병소를 제거하여 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니 이때야 말로 불통(不通)되어 부족한 곳은 보(補)하여 통(通)하게 해주고 울(鬱)한곳은 사(瀉) 해주어 통(通)하게 해줌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한방의 치료법이 대안이 되는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진료하면서 이런한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얼마나 통증이 심하고 고통스러웠으면 결혼도 안한 여성이 자궁을 떼어내 버리고 싶었을까 그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그토록 명랑하고 쾌활하던 여성이 "그때" 만 되면 데굴 데굴 구르듯 고통을 못견뎌하는 것에 난감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생리 할때 히스테리하게 평소와 다른 여러가지 육체적 정신적 행동 변화의 양상을 보이는 여성들에게 있어 이러한 특이한 행위를 자궁으로 연결시킨 선인들의 안목도 훌륭하다 하겠다.
자궁이란 것이 여성을 가장 여성답게하며 모성의 지극한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보배로운 곳으로 영원히 잊지못할 우리들의 본향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반면에 이러한 극심한 고통으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생리통이 있는 경우에는 그생리통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할것이니 양방적으로는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난소를 비롯한 골반내의 염증등 여러 병변이 원인이 되므로 이를 감별하여야 할뿐 아니라 한방적인 개념으로는 내상칠정(內傷七情)인 노,희,우,사,비,공,경(怒,喜,憂,思,悲,恐,警)으로 인하여 기혈이 울체 되거나, 한습(寒濕)이 자궁에 침범하거나, 또는 습열(濕熱)이 자궁의 경맥 흐름을 방해하여 결국 기혈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는 경우 생리통이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을 하는 것으로 자궁이나 난소의 혹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어 나가야 할것이다.
이때도 보할곳과 사할곳을 제대로 살펴야 할것이니 무작정 어혈을 뺀다고 사혈하는것이 능사가 아니며 양방과 한방의 정확한 진단을 통하여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최선의 치료를 받음으로써 묻기 어렵고 이야기하기 힘들어하며 혼자서 고통을 감수하는 여성들이 생리통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생각의 중요성(POWER OF THINKING)

근래 필자의 병원에서 치료 받고 계신 분으로 연세가 팔십이 넘으셨고 보행이 불편하여 보조기를 밀고 다니시는 분이 계시다.
이곳의 침술사들 모두에게 침을 맞아 보았다 하셨고 좋다고 하는 약이란 약은 모두 구입해서 드신다고 하였다.
평소 필자에게 치료를 받아오시던 분의 강권에 의하여 함께 찾아 오셨다.
한방의 진단 방법인 볼(望) 때부터 온갖 질환이 있어 보였고 연세도 고령이므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한번만 침을 그냥 놓아 달라” 며 모시고 온 분의 요청이 워낙 아름답게 생각 되었고 필자의 모친이라 여기고 침 치료를 해 드렸다.
과연 낫겠는가
환자께서는 지난 봄에 어느 한의원에서 열 번 침을 맞았는데 더 심해졌다고 했으며 어디서는 침을 놓아주고는 한약 봉지를 주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고 했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한 두 번에 치료 될 상태가 아니었다.
한 쪽 다리는 중풍(中風)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무릎이 통증은 퇴행성 관절염의 소견이 있는데 얼마 전 병원에서 연골이 다 달아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그보다 필자가 염려되는 점은 심각한 복부 비만과 함께 전신적으로 나타나는 부종의 상태였다.
고령의 환자께서 자신의 병력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십여 년 동안 이뇨제를 복용 해 오고 있으며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이뇨제를 투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종이 지속되는 것은 무언가 심각한 만성 질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에게 침 열 번 맞으면 낫는다고 하였다니 한심한 침술사이다.
더구나 침 맞을 때마다 한약 몇 봉지 주고 드시라 했다니 더욱 무지한 침술사이다.
환자의 정확한 상태의 파악과 함께 의학적 검사 소견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이뇨제를 복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푸석하며 다리의 부종이 심한 분에게 침 놓고는 기운 내라고 한약 몇 봉지 주는 것은 막힌 변기에 변을 보고 계속 물을 내리는 짓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연골이 달아 없어진 무릎 관절은 침 열 번 찌른다고 연골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다.
치유와 소망
첫 날 다녀가신 환자분께서 다음날 오셔서 침 치료를 받으시겠다고 했다.
먼저 침 치료의 과정에 인내가 필요함을 말씀 드리고 복용하는 약물 가운데 혈압 당뇨약과 이뇨제 그리고 와파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드시지 말라고 했다.
동반된 질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연세도 고령이시며 중증의 퇴행성 관절염이 있으시고 중풍 후유증이 남아 있으므로 난치(難治)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꼭 복용해야 할 약과 안 먹어도 되는 약의 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다” 거나 때로는“치료하나 안 하나 똑같다” 고 했지만 “발목의 붓기가 빠졌다”, “관절의 버걱대는 것이 줄었다”, “다리에 쥐나는 것이 적어 졌다”, “어떨 때 가만히 있을 때 기분이 매우 좋다”, “다리 끌리는 것이 덜하다” 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필자의 생각에 무언가 침 치료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의 치료 과정이 요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환자의 설명에도 뭔가 반응이 가는 것이라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지지가 않는다” 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서양 의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분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혈전 예방을 위한 와파린 투여와 함께 부종에 따른 이뇨제를 투약하고 있지만 중풍에 의한 족관절의 마비와 슬관절 연골의 마모에 의한 동통에는 진통제 외의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치료와 반응
많은 환자를 보노라면 치료의 효과를 매우 예민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분들은 별다른 차이점을 감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의 경우 치료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찾아서 치료의 방향과 예후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상기 환자의 경우에도 분명히 달라지는 기운(氣運)이 있다.
본인이 느끼고 말하는 차이점이 그것이다.
때로 아팠다 안 아팠다 하면서 오랜 세월의 고통이 남아 있으므로 “똑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 이며 의사는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실타래 풀 듯이 치료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있다면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치료의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경우에도 무언가 다른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근거로 하여 나음에 대한 소망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의학(醫學)은 과학이지만 의술(醫術)은 신앙이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많이 본다.
무조건적인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의학 지식에 근거한 확실히 믿어지는 신뢰이다.
여기에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모르는 자에 의한 무식한 확신과 무지한 강요는 사이비 종교이며 푸닥거리 가 된다.
치료 할 수 있는 것과 치료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분별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리고 전후 좌우를 구분 못하고 누구에게나 한약을 주어 먹게 하는 행위는 의료가 아니다.
오히려 한의학에 대한 불신과 짜증만 가중 시킬 따름이다.
한방이 모든 질환을 치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에게 치료 받고 효과를 못 본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의학적 지식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의료의 왜곡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하는 가짜들로 부터 기인한다.
가짜는 떠들수록 드러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믿음과 기다림
환자를 보면서 치료의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의사는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총 동원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흉내를 내어서도 안되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환자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면서 치료의 결과를 예측하게 되는데 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의학적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환자분들의 경우에도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대략의 치료 기간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종종 치료의 과정을 제대로 들어서기도 전에 효과를 예단하며 ‘효과가 없다’ 고 판단을 내리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치료하는 자나 치료받는 자나 피차에 손해이다.
확실한 의학적 지식의 근거 위에 가능성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의료(醫療)이다.
의사는 자신의 의술(醫術)의 모든 능력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며 치유의 역사는 믿음과 기다림으로 얻어지는 축복인 것이다.
믿음과 인내에 대한 자신의 몸가짐을 돌이켜 볼 때이다.

새로운 시작(NEW BEGINING)

이땅을 왜 미국(美國)이라 하였을까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땅과 하늘 그리고 물과 공기가 좋으며 나무하나 풀 하나에도 생명의 아름다움이 느껴 지는 곳이다.
하늘의 구름도 언제나 정겨워 보이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조차도 싫지가 않다.
이토록 아름다운 땅을 냄새 나게 만드는 것이 사람 이다.
아름다운 땅 오염된 인간
사람의 일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필자가 이곳에서 한방병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시 쉬고자 했건만 본의 아니게 한방병원을 하게 되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되었다.
사람을 고용하면서 그리고 장소를 구하면서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많았다.
‘눈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세상을 실감나게 경험 하였다.
왜 미국 땅에 변호사들이 이토록 많은지를 알 것 같았다.
지난 일년간은 병원 자리 때문에 세 곳에서 내부 공사를 하였다.
병원 이전 문제로 두 군데의 장소에서 황당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계약서 문제로 손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서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또다시 낭패를 보게 되었다.
왜들 주변에서 ‘꼼꼼히 챙겨라’는 말을 했는지 이제야 깨달음이 왔지만 꼼꼼하게 챙긴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것 같지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될 일인데 ‘불순한 의도’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당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말로 해주기로 약속을 한 것은 사실이고 이를 인정하지만 계약서 상에 글로 적지 않았으므로 이곳 워싱턴주에서는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연관되었던 부동산 에이전트와 건물주가 아직도 우아(?)하게 광고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무에 걸려들까 심히 염려가 될 뿐이다.
산 넘어 산
이러한 와중에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분들로 인하여 다른 장소를 구하게 되었다.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PUD에서 전기를 끊어 환자에게 침을 놓는 중에 전깃불이 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물도 안나오고 히터도 고장이나 테난트들의 불평이 많았으나 환자 진료에 크게 불편함이 없어 참고 넘어갔는데 전기가 끊어지니 더 이상 환자를 진료 할 수가 없어 문을 닫게 되었다.
이 두 곳 모두 건물주가 한인들이다.
한 사람은 완전 제멋대로 막무가내이고 한 사람은 씨큐리티 데파짓을 돌려 준다는 첵크를 끊어 주었는데 파산 신청이 들어가 끝난 일이 되어 버렸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에 사람과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해서야 어디 살아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지 의아 할 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오염시키는 추한 인간의 모습이다.
새로운 처소를 향하여
하여간 갑작스런 일들로 인하여 본인의 재정적인 손실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환자분들을 불편하게 해드리게 된 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되어 새로운 제삼의 장소를 찾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병원 인테리어 공사를 많이 해 보았기에 인테리어에 관하여는 노하우가 많이 있다.
모든 공사는 언제나 늦어지기 마련이다.
인테리어 공사의 경우는 고무줄과 같아서 비용이나 기간 등 모든 면에서 늘였다 줄였다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환자를 진료 할 수가 있게 되었지만 아직 간판도 제대로 못 달았다.
그동안 기다려 준 환자 분들에게 성심을 다하여 진료해 드려야 겠다는 마음 뿐이다.
일년 동안 멀리 린우드에서 부터 타코마까지 치료 받기를 원하여 왕복 130마일을 넘게 다녀가신 분들도 계시고 벨뷰에서 터코마로 매주 세번씩 내원하신 노(老)부부도 계시다.
그 분들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최선의 진료를 위하여 정성을 다 할 것이다.
의료의 길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잘 치료하여 낫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낫게 해 주는 것도 좋으나 그보다 더 중요 한 것은 치료 과정 중에 부작용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백 명의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것 보다 한 명이라도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배움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흔히 엉터리 가짜 학위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많이 보는데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 얼마든지 많은 정보를 접 할 수가 있지만 제대로 아는 의학적 지식이 있어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남의 것 퍼와서 옮겨다 적어 봐야 자기도 모르고 읽는 사람들도 모르는 것이다.
의학의 대상은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오장육부는 쉼없이 꾸불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르는 것 베껴오는 것이 아닌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을 환자 진료에 응용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가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몰라서 환자를 잘 못 치료하여 고통을 안겨 주거나 심한 경우 환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의학 지식의 모자람도 큰 문제이나 제대로 아는 것 없으면서도 많이 아느 척 나서는 지혜의 부족함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올바른 선택과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모든 지식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 그리고 사람 사이의 조화가 한의학의 도(道)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의학적 지식과 깨달음의 지혜를 새롭게 터득 뿐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NEW GENERATION)

새로운 FTA 환경
한미 FTA를 앞두고 한미 양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모양이다.
지난 해 한미 FTA 협상을 놓고 한국의 어느 한의사 글을 필자의 칼럼에 소개 한 적이 있었다.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되면 미국에서 침술을 배운 사람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것에 대하여 한의학 의료 시장의 방어적 측면에서 결사 항전의 뜻을 표시 하였기 때문이다.
이곳의 침술사를 ‘침사(針士)’라 칭하며 비교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겼던 것이다.
마치 장교와 사병 신분의 넘지 못 할 신분적 차이로 비교하였다.
물론 한국에서 한의과 대학을 진학 못하여 온 학생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곳의 한의과 대학들이 한국에서 학생을 모집하면서 내 걸던 문구도 ‘미국에서 한의사 되기’ 이다.
‘의사’라는 타이틀에 의한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닥터 라 일컫는 ‘한의사’란 직업 명칭이 없다.
다만 ‘침술치료사’일 뿐이나 자칭(自稱)하여 ‘한의사’ 인 것이다.
이점을 한국 한의학계에서 부각시키며 ‘침사(針士)’로 까지 비하 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과거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어느 날부터 흰 가운 입고 한의사 행세를 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많았었기에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면 양국의 의료 시장이 개방되어 미국으로 부터 수준 이하의 ‘침사’들이 대거 유입 될 경우를 상정하여 항전 의지를 다졌던 것이다.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
최근 한국 한의학계에서 미국의 침술 수준을 1980년대 정도의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 왔다.
예전에 미국에서 침(針)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약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때에는 아무나 한의원 간판 걸고 흰 가운 입고 비즈니스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근래 각 주(州)에서 NCCAOM이라는 미국 국립 침구와 동양의학 인증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사람들에 한하여 침술 치료 비즈니스를 하도록 사업장 면허를 교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WY주를 비롯하여 중남부의 8개 주에서는 NCCAOM의 인증 시험 없이도 한의원 내서 흰 가운 걸치고 침(針)을 찌르며 자칭 한의사 행세를 할 수가 있다.
문제는 ‘침사’건 ‘침술치료사’건 ‘한의사’건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한의학을 배우고 얼마나 많이 무시 당하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서양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 한 것이다.
과연 알고 있느냐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느냐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새로운 환경의 변화
최근 두가지의 중대한 시도가 있는 것을 본다.
부항 요법을 ND들이 가져가고 MD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통하여 침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NCCAOM에서는 중국의 중의과 대학과 한국의 한의과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 NCCAOM의 인증 시험을 응시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한국의 서울 한복판에 NCCAOM 시험장을 개설 하였던 것이다.
흔히 ‘침사(針士)’라 하면서 닥터와의 신분적 차별화를 시도하던 한국 한의학계에서 스스로 NCCAOM 인증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의 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침술 수준을 1980년대 정도로 얕잡아 보며 NCCAOM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관점에서 이곳에서 회귀하는 침술사들을 막을 것이 아니라 직접 본토 상륙을 위한 공격 개시인 것이다.
제3의 길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서양 의학과 동양의학의 인적인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학문적 공감대를 형성 할 때이며 이것에 ‘제3의 의학’으로 환자들의 고통 경감과 의료비 재정의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되리라 여기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의학의 놀랄만한 발전 가운데 의료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치 난치 질환의 경우 너무 많은 약물의 오용과 남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에 한의학의 경우 놀라운 치유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침술사들의 현대 의학적 지식의 부족으로 양방 의사와의 학문적 의사 소통에 있어 의학적 지식의 한계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근래 워싱턴주에서 부항 요법을 ND에게 주고 일정기간의 간단한 기본적 술기 교육을 통하여 MD들에게 침술 치료를 허락하겠다는 의도는 침술사들의 의학적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의원 직원이나 원장 부인 등이 부항을 하거나 침을 찌르는 무면허 의료 행위가 횡행하며 벌침(蜂針)을 비롯한 용인되지 않은 수많은 불법 시술에 따른 부작용의 결과에 기인 하는 것이다.
물론 넓은 의미로는 침술의 효과를 인정하고 정통 의학인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려는 수순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점점 가짜가 설 땅이 좁아지며 실력이 모자라면 도태 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정확한 상황 인식이 요구되는 때이다.
한의학의 본질과 한방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방을 교통사고 전문으로 만들고 교통사고 환자에게 MRI를 찍어 주겠다는 것은 한의학의 앞날에 재앙(災殃)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MRI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MRI의 영상 소견에 관한 의학적 지식이 없이 MRI 검사를 해주는 것은 안전핀을 뽑고 들고 있는 수류탄과 같기 때문이다.
일부 의료인에게 침자리 몇 개 알려주고 침 놓게 하려는 주 정부의 생각보다 더욱 위험 천만한 발상인 것이다.
아무리 ‘침사(針士)’ 라 여김을 당한다 할 찌라도 침통 들고 찔러대는 일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똑같다.
자칭 ‘한의사’라 칭하며 흰 가운입고 기를 쓰고 나설 필요 없다.
침(針) 한대로 낫게 하면 그것이 바로 의술이고 의사가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는 결코 비교(比較)가 없는 것이다.
‘의사’라 불리어 지기를 원하며 신분 상승을 위한 가식적인 과장 광고가 필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합(合)하여 선(善)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양(陰陽)의 이치이며 한방의 도(道)인 것이다.

삶의 지혜(WISDOM OF LIFE)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하고 많은 환자를 보아오면서 나름대로 환자들의 예후를 어느정도 짐작할수있는 도(道)를 터득한것이 있다.
서양의학의 경우 대체적으로 진단과 치료의 방법이 객관화 되어있기에 진단적 검사자료의 데이터가 모두 취합되면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진단코드에 따라 적법한 진단명이 붙게되고 그에따른 치료방법의 선택이 정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피검사, CT, MRI,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받았건 미국에서 받았건 해당 전문의사 선생님의 소견서가 첨부되었을 경우에는 크게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적절한 치료방식의 선택에 따른 예후와 경과도 객관적인 확률적 데이터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한의학의 경우에는 객관적 자료보다는 치료자의 관(觀)과 감(感)에 따른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즉 제대로 모르면서도 얼마든지 찔르면서 대단한 체 할수 있는 것이 한의학이다.
예전에 필자가 한의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때 어느 문제의 답안에 모든 교수들의 해석이 각기 달랐던적이 있었다.
물론 결국 문제가 적절치 못한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과정을 살펴볼때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 할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넓은 세상을 보자
한의학에서는 한약재를 본초(本草)라하고 여러 한약재를 합해 약을 만드는것을 방제(方劑)라 한다.
방제학의 첫페이지 ABC는 마황탕과 계지탕으로 시작이 된다.
즉 장중경의 상한론이라는 책에 觀仲景治太陽經傷寒 頭痛發熱無汗者 用麻黃湯(관중경치태양경상한 두통발열무한자 용마황탕)이라 기록 되어있다.
한약 치료는 증(證)을 중요시하여 증(證)으로 말하고 증(證)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심한 추위에 두통이 있고 열이 펄펄나는데 땀은 안나는 경우에 마황탕을 다려 먹으라는 이야기인데 이때 맥(脈)은 부(浮)하고 긴(緊)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흔히 한방칼럼들을 보노라면 무슨약, 무슨탕 하면서 마치 비방처럼 써대는것에 심히 염려되는 바가 크다.
오늘날에는 마황탕증(證)이나 계지탕증(證)에 해당되는 감기가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이 달라졌고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장중경이 살았던 중국 장사(長沙) 지역은 대륙성기후와 아열대기후가 교차해 일교차와 년교차가 심한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대륙성기후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상한, 태양중풍하면서 마황탕 계지탕하는것은 무지몽매한 것이다.
무지함의 결과
지난해 KBS2 '추적 60분'은 간질과 당뇨,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환약 안궁우황환을 집중 취재 방송하였다
뇌 발달이 제대로 안 돼 반복적으로 발작과 경기를 일으키는 '오타하라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경기 치료제로 안궁우황환을 3개월 복용한후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진단은 '수은 중독' 이었다.
즉 안궁우황환에 함유된 수은과 비소때문 이었다.
과거 경기 발작에는 ‘주사’라하여 수은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수은의 중독성 때문에 오늘날은 금지 약물이 된 것이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이처럼 살고 죽는것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2000년전하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고 사람이 달라졌고 병원균들이 달라졌다.
그때는 멀리가봐야 백리였고 천리밖 세상은 꿈속의 세상이었으니 오늘날처럼 달나라를 건너집 다녀오듯하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것이다.
한의학을 하면서 옛 지식을 어거지로 짜맞추려 하거나 현대의학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못하면서 잘못 비교하는것은 한의학을 모욕시키는 일이 된다.
한의학은 옛사람들의 지혜를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모르면서 마치 잘아는것처럼 글을 써대는것을 많이보는데 이야기를 시켜보면 곧 바닥이 들어나는것을 알게된다.
거짓 지식을 자랑 할것이 아니라 지혜의 깨달음과 혜안을 가지도록 노력할일이다.
가짜 박사도 의미가 없으며 박사 공부 한다고 나발부는것도 창피한 일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워싱턴주에서는 한의원내고 침을 놓는 침술치료사들은 의사가 아니므로 Doctor(의사, 박사), Dr., Ph.D, 의 호칭을 쓰지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다.
몇해전 닥터라고 명함박아 쓰다가 주정부로 부터 처벌받은자가 이제는 경력으로 박사 과정중에 있다고 쓰는것을 볼때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다.
한의학을 우스겟거리로 만들어서는 안될 일이다.
한의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고 터득하는 의학이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하여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의 지식으로는 오늘날 통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가졌다하여도 세상을 사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가짜 학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무지몽매한 인간으로서는 감히 깨달을수없는 것이다.
잘못된 지식은 사람을 속이고 죽이는데 사용되나 지혜로움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과 보람과 만족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삶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

살신성인(SACRIFICATION)

지난해 아프간으로 봉사를 떠났다가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23명을 기억한다.
그가운데 두분이 살해되었으니 그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은 이루 말할수가 없을 것이다.
얼마전 故배형규 목사님의 시신을 인수하면서 박상은 원장이 다음과 같이 적은 글을 보았다.
‘지난 7월 30일 오후,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활주로 끝에 나무로 만들어진 관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하얀 천 밑에 누워있는 시신은 바로 고 배형규목사였습니다. 신문과 TV에 너무 자주 마주쳐 친숙해지기까지 한 아프간 봉사단 출국기념 사진에서 그토록 환하게 웃고 있던 그분이 이제 말없이 누워계십니다. 떠날 때는 여객터미널에서 출국하셨지만, 돌아올 때는 화물터미널로 귀국하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더 이상 인간생명이 아닌가 봅니다.
유족을 대신해 시신을 인수받아 병원 안치실로 돌아와 검시를 하였습니다. 모습은 분명 배목사였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 한 마디 없습니다. 육신의 각 부분은 모두 이전대로였음에도 영혼없는 육신은 그저 시신일 따름입니다. 수많은 총알이 빗발쳐와 머리부터 발까지 들쑤셔 놓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육신일 뿐, 텔레반은 배목사의 영혼을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배목사의 영혼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쉼을 누리며, 오히려 우리를 위해, 무엇보다 남은 파랍자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라고 감회를 적었다.
사랑에 빚진자
120여년전 몰라도 너무도 모르며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이땅의 조선 민족들을 위하여 대동강 물에 목이 잘리며 피를 쏟아낸 토마스목사님 처럼 오늘날 저주 받은곳이라 여기는 아프간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고(故)배형규목사님이 흘리신 피가 척박한 땅을 젹시는 생명샘 물꼬가 되리라 믿는다.
성경에 예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120여년전 보도 듣도 못한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이땅에 사랑의 복음을 들고와 물설고 낯선 이땅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자녀들을 묻으면서까지 뜨거운 사랑을 전하였던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것이니’에벤에셀’의 은혜와 축복이라 아니 할수없다.
고려대를 나온 박원장은 필자와 의과대학 시절부터 아는 사이로 특별히 의료윤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 심성이 맑은 의사이다.
故 배형규 목사님도 평소 박원장에게 치료를 받아왔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시신의 처리를 의탁하였다니 그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짐작 할수 있겠다.
금번 아프간 민족을 불쌍히 여기며 저들을 위하여 바쁜 생활가운데도 짬을 내어 찾아간 23인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돌이켜 보아야 할것이다.
그가운데 두사람의 희생이 있었던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것이다.
떠난자와 남겨진자
41일간 인질 사태가 정리되고 21명이 무사히 돌아 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것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번 피랍 사태 이후 의견들이 갈릴 뿐아니라 왜곡된 눈으로 조롱하고 저주하는 악한말들이 난무함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소수의 무리들에 의해서도 요동치는 회오리 바람이 불며 흙탕물이 되기도 하지만 공항에서의‘달걀투척’시도사건이 있었다는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아들을 잃은 부모의 처절한 절규가 아들의 마음과 달르게 들려오는것이
비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을 지키며 아름다운 뜻을 펼치다 젊은 나이에 죽어간 아들을 생각하면서 애통해하는 부모의 절규가 교회를 탓한다 하여도 얼마든지 이해 할수 있는 일이다.
헤아림
세상에는 항상 반대되는 모습이 상존하는것을 본다.
생각하노라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겨지지만 세상의 음양 이론으로 보자면 그럴수도 있는것이 된다.
다만 음과 양의 조화로 얼마나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느냐가 문제의 관건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도(道)이다.
신앙의 도(道), 의학의 도(道)가 그것이다
다시금 썩어져가는 작은 밀알이 되기로 헌신했던 분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가기를 기원 할 뿐이다.

기다려 지는 年(NEW YEAR)

보따리 싸겠다고 합니다.생각해보니 약속 날짜가 되었네요 늘 일년만 계약하고 살기로 했던 년이거든요앞에 갔던 년 보다는 낫겠지 하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잠도 같이 자며 정도 많이 들었는데 때가 되니 이 년도 떠나 가네요물론 딴 년이 찾아오겠지요 이 년도 딱 1년만 같이 살겠다고 합니다정들어 더 살고 싶어도 도리가 없고 살기 싫어도 1년은 살아야 할 년 이거든요. 모두들 불경기라고 난리 치는데 지친 가슴에 상처만 남겨놓고 이 년도 아주 가네요 매번 이 년은 다른 년이겠지 하고 만날 때마다 기대하고 흥분되는데 살아보니 그 년이 그년이고 우리를 안타깝게만 해 놓고 가는 군요 늘 새 년은 좋은 년이겠지 하고 큰 희망을 가지고 새 살림을 시작해 보지만 지나고 보면 먼저 갔던 년이나, 가겠다고 하는 년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네요. 몇 년 전에는 IMF라는 서양 년이 찾아와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돌 반지까지 다 빼주고 안방까지 내주고 떨고 살게 만든 년도 있었지요한 평생 살다 보니 별의 별 년들이 다 있네요
애인같이 좋은 년, 원수같이 도망간 년, 살림 거덜 내고 간 망 할 년도 있었고 정신을 못 차리게 해놓고 떠난 미친 년도 있었으며 어떤 년은 평생에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간 년도 있었고, 또 어떤 년은 두 번 다시 쳐다보기 싫고 꼴도 보기 싫은 년도 있었지요.
이런 년, 저런 년 별 년들과 다 살아보았어도 그다지 특별한 년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년 만큼은 좋은 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새 년(年)을 맞이 해 보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
일년 삼백 예순 닷 세이며 열 두 달 이다.
지내온 한 해를 돌아보자면 흐르는 세월의 빠름에 새삼 놀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참으로 한 해 동안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고 갖가지 사연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간 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에서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세월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태양력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을 로마 시대를 거치며 수정되어 왔다.
고대 시대에는 하늘만 보며 살아야 했다.
그야말로 주어진 년을 맞이하여 ‘복꼴복(福不福)’ 새옹지마의 인생을 살아 갈 따름이었다.
인간으로서 기다리고 바라만 볼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순환 주기를 깨닫고 기억하여야 살아 남을 수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하여 지난 세월의 정확한 기록인 달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역(歷)은 역(易)이다
태양력 달력을 사용하는 오늘날 양력과 달리 음력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24절기는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 역(歷)을 만들게 된 것은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에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이다.
음력 날짜와 계절의 변화가 제대로 일치하지 않았기에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태양의 운동을 표시하여 주는 24절기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24절기는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시작이 되었고 태양의 운동을 24등분 한 것으로 달력에 불규칙하게 표기가 되는 난해함이 있지만 오랜 세월 신기하게도 계절을 잘 맞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현대 과학의 발달에 따라 천문학에 의한 지구와 태양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지축의 각도에 따라 일년 삼백 예순 닷세 계절의 변화가 확실해 지는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앞으로 보존 발전 시켜야 할 천문 수리 영역이다.
한방의 근본 한의학의 개념도 이와 같은 역(易)에서 출발이 되었다.
우주의 돌아가는 이치를 바라보면서 세상의 흐름을 알고 인간의 모습을 깨닫는 것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조화이며 한의학의 근본 원리이다.
이것이 한의학의 도(道)이다.
하루 24시간은 마찬가지인데 한 해를 나누어 송년(送年)의 아쉬움을 달래게 하기 때문이다.
한방은 겉을 보고 속을 알아내는 학문이다.
속병이 겉으로 나타나므로 겉을 다루어 속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농사 짓는 절기를 알아 내었듯이 사람의 오장육부가 병들었을 때 그 모습을 보고 겉을 자극하여 오장 육부의 병을 다스리는 이치이다.
역(易)이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보고 느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지혜를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의학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람의 질병을 보는 원리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 할 때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감회가 새로워 지는 것은 지난해의 어리석음과 아쉬움에 대한 깊은 회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함이다.
언제나 떠나가는 년에게 미련이 남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그래도 새로 오는 년이 있기에 기다려지는 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가는 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필자도 지난 년을 돌아 본다.
어떤 년을 생각 하노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며 끓어 오르는 분노가 있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잊어 버리려 한다.
살아오면서 별의 별 년 다 겪어 보았지만 그 년만큼 끔찍한 년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년 잘 못 만나 손해 막심하며 지금껏 뒤 치다꺼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새로운 년을 만나게 되지만 그런 년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이 참으로 복되다 할 것이다.
2008년을 보내는 이때 그래도 다가오는 2009새 년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기다려 지는 년을 맞이 할 준비를 하자.
지난 년 주셨던 것도 감사하고 새로운 년 주시는 것도 감사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