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일 화요일

어느 한의사의 고백(CONFESSION)

아래글은 필자가 참여했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모임에 실린 어느 젊은 한의사가 한의학에 대한 애정과 갈등 그리고 무력감을 적은 일부의 내용이다
특히 근간에 한미 FTA에서 언급된 한의사 자격 상호 인정에 관한 제안을 어떻게 받아 들일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알고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였으면 한다
한미 FTA
지금 한의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외 직능이라고일컬어지던 한방의료영역에 FTA 적용 언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들이 FTA에서 한방은 자유롭다고 했던 이유는,한의사라는 직종 자체가 우리나라 고유의 직능이고미국에는 없는 직종(그 면허성과 실효성 등 각종 제반 조건에서)이라고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의 침사(Acupuncturist)와 한국의 한의사를 동등한 위치에서서로 개방 대상으로 본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개방인데 어떻게 늘 내 자리에 내가 지속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만,
미국의 침사는 한국의 한의사와는 다른 격입니다.
민간 자격증과 국가 면허증을 어떻게 같은 격에 두고 있는 것인지.이게 너무 슬프고 참담합니다.
뻔히 장교로 근무하던 이에게 다른 부대 하사관들과 말 트고 지내라고 하면그리고 업무를 서로 교류한다고 하면 이것은 옷 벗으라는 말일 뿐입니다.
한의학의 위치
간혹 저는 수련 과정과 단독 임상 과정을 통해 내가 한의사 된 것이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대 가서 정형외과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랬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의료계에서 한의사들의 위치가 참으로 애매하고아직도 한의학에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현대인들의 과학 개념에완전히 이해 할수 있는 증명을 할 수가 없는 내용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놀라운 치료 경험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도 늘 불만인 것은, 그 치료 과정의 구체적인 경과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적인 판단과 치료를 하기는 했지만,그것은 한의사들의 용어이고 그것을 현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마땅한 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의사들끼리도 서로 설명이나 이해가 다를 경우마저도 있습니다.
고민과 갈등
저 역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고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으로서,‘예’ 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오’ 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나면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나 역시 한의학의 이런 곤란한 문제에 대해 참으로 고민이 많은 사람이기에.
제가 군에 갔다와서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한의과대학에 가지마라.”
이 말을 하던 것이 거의 10년 되어 갑니다.
지난 봄에는, 저희 한의원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한 어머니께서 자기 아들이 의대를 갈까 한의대를 갈까 고민하다 한의대 갔다며 제게 자랑하는 것을 보고 “내 조카라면 빨리 휴학시키고 내년에 의대 보내겠다.” 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마저도 이런 말을 하는 것에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지만,그렇다고 해서 한의학이라는 게 이렇듯 홀대받을 그런 류는 결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16개 전문직종에 대한 미국의 개방 수락에 대해한의사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에게 맞설 우리나라 정부도 아니라 생각되므로 한의사들은, 늘 그래왔듯 또 투쟁에 나설 것입니다.
위기냐 기회냐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첨단 과학 세상인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한의사의 고민과 갈등을 충분히 이해하며 한의학의 나아갈 방향은 현대의학의 기초위에 새롭고 튼튼하게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는 바이다.
여러 환자를 보다보면 들리는 이야기가 많다. 침술치료사 자격도 없이 불법적으로 대침, 장침을 마구찌르는 경우도 보며 때로는 치료한답시고 벌침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는 대단히 유명한 한의사 행세하며 무면허 진료하고 비싼값 받고 한약을 경동시장에서 주문하여 배달시키는 가당치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정통의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국에서는 먼저 침술치료사로서 할수있는 일과 해서는 않되는것을 구분하여야 한다. 그리고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때 치료하는자나 치료받는자가 공히 이해할수 있는 객관적인 설명을 할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현대 의학적 지식을 기본으로 하여야 하는것이다.
모르고서는 되는일이 아니다.
대안의학
한의학의 특성상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줄수 없는것이 문제이지만 환자분들에게는 지금까지 서양 의학적으로 확인된 진단과 치료의 모든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서양의학적인 치료방법 외에 한방적인 치료법을 대안으로 제시하여야 하는것이 한방의 옳은 길이다.
그것이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얻는길이며 상호자격 인정을 받기 위한 시작이 되는것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침술치료사나 한의사 호칭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환자 치료하는 능력을 함양토록 할것이다.

어느 송년사(CLOSING MENT)

이년(年)이 가고 저년(年)이 오고
이제 이달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저년이 옵니다.
오는년을 맞이함에있어 새년과 함께 보낼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와함께 가는년을 고맙게 여기고 깨끗이 정리해야 할 마음의 준비도 또한 중요합니다.
새년이 오면 더 잘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짐합니다.
지난 년들은 돌이켜 보면 여러가지 종류의 년들이 있었습니다.
꿈과 기대에 미친년도 있었고, 어떤년은 몹시 실망스러웠고, 또 어떤년은 그럭저럭 감당할 만 했지만..
뜻밖에도 어떤년은 무척 재미있고 아기자기 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지난 년들이라고 모두 나쁘기만 했겠습니까?
나름대로 각자 뜻깊고 기쁨을 안겨준 년들이었지요.
자, 이달이 지나면 앞으로 찾아들 새년 !
그년은 과연 어떤년일지 자못 호기심과 기대가 큽니다.
사실 헌년이든 새년이든 모두 이세상이 주는 선물입니다.
몸과 마음을 단장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년을 맞아 기쁘고 즐겁게 살아보렵니다.
보내는 아쉬움
다같은 하루 24시간이고 일년 365일 이지만 매년 12월은 늘 새로운 감회에 젖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한해이고 한달이고 한날이지만 12월인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는것은 지난 시간의 아쉬움들이 많이 남게 되는 것이다.
수없이 묻어나는 세월의 삶이 회한으로 남으며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돌이켜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일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그때를 떠올리게 할때마다 가벼운 탄식의 아쉬움이 배어나는 한(恨)스러움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금 돌이킬수가 없는 일이기에 두고두고 미련으로 남기 때문이다.
아무리 후회를 한들 이제는 어쩔수 없는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아쉬움이 남는 일이라 하여도 이미 흘러가버린 옛시간의 흔적이 되었으므로 지나가는것 잡을수없고 다가오는것 막을수가 없는 것이다.
가는년잡지말고 오는년막지말자
어느 유행가 가사에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속에 우리도 변했구려’라는 구절이 있다.
인생사 생(生),사(死),화(禍),복(福)의 모든것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마음가짐에 따라 노(怒),희(喜),사(思),우(憂),비(悲),공(恐),경(驚)의 칠정(七情)으로 들쑥날쑥 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우리몸의 병으로 나타나게 된다.
건강함과 병듦속에서 새끼줄 꼬아나가듯 엮어져 가는 인생은 대자연과 더불어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이라는 오행(五行) 순환의 섭리 가운데 놓이게 된다.
즉 자연과 인간의 삶 자체가 철학이요 종교가 되는것으로 과학 뿐아니라 의학도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한 부류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수없이 많은 일상들 속에서 지지고 볶이는 것이다.
길 / 진리/ 생명
넓고 넓은 세상속에 수없이 놓여진 길들 가운데 어느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역정이 달라지며 인생의 여정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옳은길과 진리의 길을 찾아야 할것이며 제대로 골라야 할것이다.
건강한 삶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순간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
언제나 12월 마지막 달에는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며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감회에 젖게 된다.
즉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 오행(五行)의 흐름 가운데 다음해의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면서 이제는 한해의 갈무리를 해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듀
돌아보면 그모든것이 웃어넘길수 있었던 일이건만 그때는 왜 그리도 서로를 힘들게 했던것인지 모를 일이다.
떠나가는 해를 아쉬워하지 말고 새로 맞이하는 새해를 위한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 한해한해의 시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연속으로 이어져 나가게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이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보람된 한해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것이다.
2007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나의 인생가운데 “2007년이야말로 참으로 좋았더라”고 기억되는 한해로 마무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언젠가 2007년을 회상하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배어나고 눈가에 잔잔한 기쁨이 넘쳐나는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그리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는해를 보내며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자.

어느 환자의 치료(THERAPY FOR PATIENT)

이곳에서 환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경우 양방과 한방을 늘 비교하면서 치료하는데 치료의 우선 순위와 제대로 알고 치료를 하는 의학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한방은 정통의학이 아니다.
따라서 대안 의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통사고
2년전 교통 사고를 당하신 작은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시다.
좌회전을 할 때 달려오는 차에 받혀 에어백이 터지면서 우측 어깨와 안면부를 심하게 다치셨다.
차는 폐차 했다고 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하여 어느 곳에서 한방 치료를 받았는데 첫날 흉내 내듯 침(針) 한번만 놓고는 계속 마사지와 카이로프락틱 치료만 해 주었다고 하였다.
환자는 어깨 통증이 계속되었고 어깨 사용이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내다 일년이 넘은 후 필자의 한방병원을 찾게 되었다.
처음 진찰시 어깨를 돌릴 때 ‘우두득’ 소리가 나며 매우 고통을 호소 하였다.
사고를 당했으니 치료를 받았어도 이만큼 아픈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신 순박하신 사모님이었기에 고통을 참고 견디며 지내신 것이었다.
즉 ‘장애인’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억울한 장애인
침 한방에 효과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환자의 손상 상태에 관한 의학적 지식이 모자라 치료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의 어깨 통증과 견관절의 운동이 어려운 것은 척수 신경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척추 교정으로 나아지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뇌신경과 척수신경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다.
말단까지 이르는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영향으로 사지 관절을 움직이며 온몸의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척추 뼈와 척수 신경의 이상에 의한 어깨 통증인 경우 반드시 척추 신경의사에 의한 근본적인 치료를 하여야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에어백이 터져 그 폭발력에 의하여 어깨를 다친 사모님의 경우는 아무리 척추를 교정해도 어깨의 국소적인 통증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수도 꼭지가 고장 났는데 아무리 보일러를 탓하고 보일러를 교환하더라도 문제가 해결 되지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지의 소치
어리석은 침술사는 이러한 환자를 첫날 흉내 내듯 침 한번만 찔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방 치료는 안하고 계속 마사지와 카이로 프락틱 치료만 시켰다고 하였다.
무지한 침술사 탓으로 애매한 환자만 억울하게 오랫동안 고생을 하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한의학이 대안의학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한방의 능력을 입증해 주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침술사들에게 있다.
그냥 얼버무려 침을 놓는다거나 교통사고 환자들에게 침으로 치료를 하야야 함에도불구하고 환자분들이 침을 맞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여 마사지를 권하며 환자를 유치하려는 의식을 가지고서는 한의학의 장래를 보장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환자의 불편한 고통을 치료하는 한방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침에 찔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도 침 치료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침으로 효과를 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보고 느끼 듯 흉내 내듯이 침 치료를 하는 침술사는 불신의 대상이 된다.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치료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교통 사고를 당했던 환자는 필자에게 침 치료를 받으며 어깨의 통증이 사라짐과 함께 그 외에 손 발이 따뜻해 지는 부수적인 치료의 효과도 있었다.
어깨의 고통을 안고 제대로 어깨를 쓰지 못하며 영원히 장애인으로 살아 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치유가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의사 잘 못 만나 죽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의사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광고의 허와 실
의사에게는 환자 치료가 우선이다.
환자의 고통과 아픔은 결코 흥정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질병의 치료에 거짓이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에어백의 폭발력에 어깨를 다친 환자를 침 한번 찔러 흉내 내고 마사지와 카이로플락틱을 시키는 한방 침술사의 무지함과 영특함(?)에 놀랄 따름이다.
진정으로 환자의 치료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방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간다.
마사지 치료가 좋을 때가 있고 척추 신경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침에 찔리는 고통이 있지만 침을 찌르는 것이 환자에게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올바른 치료로 효과를 보도록 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일이며 금전적 손실을 막아주는 일이 된다.
절반의 성공
종종 연재되는 한방 칼럼을 보면 남의 것 그대로 베껴다 놓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맞는다.
모르면서 나서기에 불신의 화살을 맞는 것이다.
한방에는 무한한 능력의 잠재력이 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끊임없이 놀라는 치유의 효과이다.
과연 어디까지 낳을는지 측량 못 할 일이다.
교통 사고 후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안고 살아가도록 만든 것은 통증의 유발 원인을 모르고 치료의 과정을 모르는 의학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환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노력 없이 대충 몇 번 치료하고 넘기는 교통 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 치료는 불신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한방 자체의 효험이 문제가 아니라 한방을 하는 침술사들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 우선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는 순리가 있으며 한방에서는 이러한 순리를 매우 중요시 한다.
오른 쪽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왼 쪽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알아야 할 것이다.
오른 쪽 왼 쪽을 잘 못 선택하여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思母(BELOVED MOTHER)

저의 모친되신 안혜순권사님께서 금일 새벽 4시(한국시간 지난 밤 12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으셨기에 속히 가시게 되기를 원하셨지만 가시는 길이 쉽지만은 않으셨습니다
"천국가는 길이 이렇게 힘이 든 구나" 하시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틀을 고통 가운데 보내셨지만 그래도 마지막을 평온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천국에서 만나게 될것을 믿으며 보내드렸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더구나 63년을 해로하시며 마지막 병 수발을 드시며 두분이 살아온 한 평생을 돌아보시던 아버님께서 어머니를 먼저 보내게 된것에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기뻐해야 된다고 하시면서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신다고 많은 눈물을 보이 십니다.
어머니께서 영혼은 하나님 나라로 가시며 남기신 육신의 몸이 다 식으 실 때까지 7 시간 넘도록 병실에서 어루만지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자가를 붙드신 손이 돌아가신 후 펴지지가 않으셨는데 나와 아내가 잠시 병원을 다녀 올 동안 사후 경직으로 굳어져 가는 몸이었는데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시며 손톱을 다 딱아드리시고 손가락과 손목 그리고 팔꿈치를 부드럽게 펴 드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버님이 어머니의 남겨진 육신을 바라 보며 마음 속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덮은 하얀 시트가 안개의 흔들림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에어콘이나 히터도 없고 창문이 없는 방인데 아지랭이 같은 잔잔한 흔들림을 감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찬송과 기도 말씀으로 예배를 드려 주었고 전화도 많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몸이 식은 후 병실에 어머니를 남기고 차마 떨어 뜨리기 힘든 발걸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돌아서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아침을 걸으셨기에 점심을 드시고 집에 모셔다 드렸 습니다 병원에 돌아와 정리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밖에서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려니 내 마음인 양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것 같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환자를 보지만 웬지 허전하기만 합니다
어머니가 계시던 절반이 비었지만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도 빈 공간은 절반이 넘는것 같습니다
장례 일정은 이곳 시간 토요일 오전 9시30분에 정했기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모자란 아들이 어머니를 행한 애끓는 마음으로 열흘 밤 병실을 지켜드렸지만 지치고 힘듬 보다는 아쉬움과 회한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병으로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에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해 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기쁘고 즐거워 하시는 어머니를 그려 봅니다
이땅에서 많은 육체의 고난을 당하신 어머니셨기에 하늘 나라에서 갑절의 위로와 상급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이땅을 떠나가신지 열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지고 어머니의 음성이 듣고 싶어 집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어머니를 뵈올 수 있는 날을 믿으며 기도로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만남을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어머니를 바라다 보며 (Oh My Mam)

사람이 태어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 했지만
편안한 가운데 가는것이 바램이리라
고통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아들로서 느끼는 괴로움이 있다
세상의 의학을 배운 아들로서 아무것도 해 드릴 수없다는 자괴감이 있는 것이다
몰핀에 의지하여 통증을 완하시키고 있지만 중간 중간 닥치는 고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가 마지막 고비 인것 같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덧입고 이겨 나가기를 기도 드린다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 중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를 소원하며 고통을 견디어 내길 바라는 것이다
"왜 이리도 천국 가는 길이 힘드나" 하시는 어머니의 절규는 너무도 마음이 아픈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돌리려고 했었던 죄를 회개 한다
그토록 천국을 그리며 좋다고 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으시길 바래어 붙들고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불순종의 죄악된 모습인 것 같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 아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품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기쁨과 찬송으로 어머니를 돌려 보내드리기를 원 합니다
언제가 될런지 모르나 고통의 길을 속히 벗어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천국을 그려 봅니다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어머니께서 고통의 멍에를 벗게 되기를 기도 합니다
평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며(RETURN TO ROUTINE)

학교 다닐때 교양과목 영어 시간에 배운 글이 생각납니다
<Show must go on> 입니다
이세상을 살다가 떠나가도 이세상은 계속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어찌보면 인생 자체가 아름답고도 슬픈 쇼인것 같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 추모 영상을 보면서 인생이 다큐멘터리이지만 生老病死의 역사와 노(怒), 희(喜), 사(思), 우(憂), 비(悲), 공(恐), 경(驚)의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라 여겨 집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극본 각색 감독 제작하에 이루어 진것임을 깨달으며 감격과 감사를 드릴 따름 입니다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떠나가셨기에 아침이면 일어나 출근하는 일상의 일과로 돌아 왔습니다.
새벽에 한국에 전화를 드렸지만 아침시간에 쫓기다 보면 전화를 드릴 수가 없겠지요
오늘 아침에는 눈이 약간 내렸습니다
덕분에 여유 시간이 있어 친구 동생과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은 친구의 여동생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위로와 권면과 소망을 함께 했읍니다
옛글에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 는 구절처럼 부모님이 다니시던 길이었는데 다니시던 분들은 계시지가 않는군요
더구나 하얀 눈이 내린 모습을 보니 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내일 장례식이 또 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이곳에 처음에 왔을때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며 밤도 줍고 하셨던 권사님이십니다시애틀 다운타운과 근처 파크에 자주 갔던 이야기를 두고 두고 하셨던 것을 볼때 그때가 즐거우셨던것 같습니다
권사님 아들인 김장로님 내외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든것이 Show Must Go On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들 집착이 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하셨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日常이 그런가 봅니다
"낮에 해처럼 밤에 달처럼 그렇게 살수 없을까?"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 납니다
이제 부터는 좀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려 노력해야 겠습니다
진정한 그날의 소망을 가지고 소망을 전하며 살아 가고 싶습니다

어느 죽음(DEATH)

모든 사람은 이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 가는데 주어진 생명의 길고 짧은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살아있는것이 미운 사람’도 있고‘돌아가는것이 안타까운 사람’도 있음을 본다.

필자가 의과대학에 다닐때 전국의 의대, 치대, 한의대 기독 학생모임이 만들어졌다.
당시 70년대 말에는 전국 의(醫), 치(齒), 한(韓) 연합 수련회에 60여명 정도가 참석을 하였는데 약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삼천명이 모이는 대형집회가 되었다.
한의사 문충모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 의료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대학에서는 교수들이고 병원장들로서 사회적으로 맡은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운데 언제나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으니 그이름 석자가 문충모이다.
당시 한의과 대학생으로 기타치며 찬양을 인도하였는데 복음성가도 작곡했던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어찌보면 문충모와의 만남과 관계가 오늘날 필자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배가 필자보다 서너살 아래이기에 개인적으로는 필자를 형으로 불러주었지만 몸이 아픈 가운데도 바쁜 한의사 생활을 하면서 장신대 신학 공부를 마치고 안수를 받으신 목사님이었다.

가장 영향력있는 기독의료단체인 한국 누가회를 이끈 이시대의 지도자로서 한때는 한의과 대학의 교수로 후진양성에 이바지하였고 한의원의 원장으로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하며 이땅에 기독 의료 문화가 올바로 서기를 바라며 헌신하던 리더였다.

이시대 기독 의료인들이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도록 도전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모범을 보이셨으나 간경화와 간암으로 인한 상부위장관 출혈 뿐아니라 뇌출혈로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아들의 간을 부분이식 받으면서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애석하게도 지난 3월 마지막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늘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존재였으나 제대로 어려움을 나누지 못하고 함께 울어주지도 못한것이 매우 한스럽다.
형제의 한의원이 필자가 살았던 목동아파트와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몇번 찾아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필자가 미국으로 들어오기전 기러기 아빠의 마지막 어려움을 겪을때 자신의 집에서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필자를 불러주어 교제를 나눈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에도 몸이 않좋아 얼굴은 검었고 눈은 휑하니 들어가 있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였던 것이다.
문충모 목사
2002년도 필자가 떠나오기 직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동네 두부 전문 음식점에서 축하모임을 가졌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에 도착하여 몇차례 이메일 왕래가 있었으나 바쁜 가운데 두절이 되었다.
얼마전 이곳에서 발행되는‘좋은신문’에 편집 자문위원으로 문충모 이름 석자가 있음을 보고 얼마나 반갑고 기뻣는지 모른다.
언젠가 문충모 목사가‘형님도 간병으로 돌아가신것’을 이야기 해준 기억이 난다.
우리들이 죽는다는것은 정한 이치로 누구도 피해갈수가 없는 일이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있기에 문목사의 얼굴에서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두아들과 아내를 향한 작은 바램을 느낄수가 있었으나 그가운데서도 능히 사망권세를 이겨내는 감사와 찬양이 늘 함께하는 부활의 가정임에 분명했다.

필자가 지금도 찬양을 인도하던 문충모 학생을 기억해내는것은 당시 카메라 사진을 찍었던 관계로 기타를 열심히 치며 머리숱이 많지는 않았지만 찰랑대던 머리카락의 문충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랜세월 병으로 고통을 받은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의 편안한 안식이 더나은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해온일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해주어야 할일이 많음을 볼때 너무나도 아쉽고 안타까움을 금할수가 없는것이다.
더구나 남겨진 사랑스런 아내와 두아들을 비롯한 이땅의 수많은 누가들 그리고 교회와 병원을 생각할때 이모든것을 남겨두고 떠난다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손가락이 깨물려도 안스러운 아들이 배를 가르고 간을 잘라 아버지께 주었다는데 그아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살아 아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부자의 정을 나누며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아끼지않은 아들에게 육신의 생명뿐아니라 자손 대대로의 영적 축복을 해주어야 할터인데 이리도 빨리 돌아가다니 너무도 슬픈일이 되고 말았다.
한국 누가회 회장 문충모
그리고 지천명의 나이에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주님의 종으로 새롭게 쓰임을 받아야 하며 기독 의료인들을 보듬고 진정한 의사 누가들로 양육시켜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다니 한국 기독의료계의 커다란 슬픔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부터 필자와 한의학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며 새로운 현대 한의학을 재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일찍 가버린것이 애석할 뿐이다.

슬하의 두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으니 필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시절의 문충모와 한세대가 흐른것이 엊그제 같다.
지난해 후배 선교사부인이 암으로 죽어갈때 병상에서 온몸으로 통곡을 하였다고 했다.
아마도 문충모목사의 기도와 찬양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누가회에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갔다고 하니 육신은 이땅에서 수없이 고통을 당했으나 천국으로 입성하는 영혼은 기쁨과 영광스런 찬양의 행진이었을 것이다.

이땅의 누가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돌아보면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고(故) 문충모 목사를 그려본다.

어느 만남(A MEETING)

세상살이는 수없이 많은 만남들로 이어져 간다.
사람 인(人) 자(字)가 붙거나 기대어 있는 것은 홀로 서는 것 보다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이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의 만남에 의하여 시작이 되는 것이며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부모(父母)와 자식(子息)의 관계가 형성되고 형제(兄第), 자매(姉妹)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
성장해 가면서 사회 생활을 해나갈 때 온갖 집단들과의 연결이 종횡(縱橫)으로 엮어지게 된다.
이러한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보람과 기쁨을 맛보는 아름답고도 소중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간혹 잘못된 만남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동안 평생 고통과 슬픔의 삶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八字)가 달라진다고 한다.
부모 자식으로 태어나는 숙명적인 관계도 그렇고 남녀 사이의 결혼의 경우에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예정과 섭리
지난주 이곳 작은 개척교회인 선한목자 교회에서 집회가 있었다.
강사되신 목사님은 공군 사관학교를 나오시고 신학을 공부하여 공군 군종감을 지내신 장영출 목사님 이셨다.
필자는 지금부터 꼭 삼십년전 어느 집회에서 목사님을 뵌적이 있었다.
공군 장교복을 입으시고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며 특히 몸동작을 크게 하시던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이곳 저곳 수없이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오신 목사님께로서는 삼십년 전의 ‘어느 청년’을 기억하실 리 만무하다.
필자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이영무목사와의 관계로 체육인교회에 출석을 하였다.
당시 축구선수였던 차범근감독이 예수를 믿기 시작 했던 시기로 차범근 선수가 공군팀에 소속되어 공군 군종감이셨던 장영출목사님과 연결이 된 것 같았다.
한세대를 넘어서
장목사님을 만나면서 지나온 30년을 회상해 보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여 당시 추진중인 할렐루야 축구단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곳 저곳 복음 전도하러 많이 다닌 기억이 난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바쁜 가운데 이영무, 박민재, 황정연 등 몇몇 선수들과 개인적인 관계 만을 가지게 되었다.
종종 선수들 부인들 치료하면서 몇몇 아이를 받아 주었을 뿐이다.
30년이 지나 한의학을 공부하여 몇해전 할렐루야 축구단이 LA에 와서 시합 할 때 선수들 침치료를 하였으니 세월의 흐름이 돌고 도는 것 같다.
더구나 이영무목사님의 큰딸이 결혼하여 산부인과와 한방의 궁금한점을 국제전화로 물어 올때는 삼십년 한세대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삼십년전 장영출목사님 집회에 참석하였던 시절의 청년 아들이 내곁에 있으니 이또한 한세대의 흐름인 것이다.
인생유전
미국 생활의 차이점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의외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연치 않게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에 놀랄 때가 있다.
지난해에는 옛 주일학교 학생이 농아목사님 사모가 되어 딸들을 데리고 필자를 찾아왔었다.
대전에서 농아목회에 충성을 다하는 훌륭한 목사님 사모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도 삼십년이 넘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필자의 산부인과 병원 근처에 살던 환자들도 우연치 않게 많이 만난다.
부모님께서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 동네 우편배달부로 계셨던 분을 만나신 적이 있었다.
참으로 좁은 세상이고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죄짓고 벗어 날수가 없는 일이며 속이고 살아 갈수가 없는 세상이다.
오직 믿음
이번 집회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새롭게 체험하였다.
말씀을 전해주신 장목사님께 감사하며 이러한 집회를 마련하신 이목사님께 감사하고 더구나 미국 생활 가운데 갈(渴)한 나의 영혼에 복음의 생수를 부어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다시금 나 같은 자를 서양의학 의사(醫師)를 만드시고 또한 한의학까지 공부하게 하시며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는 어쩌다 이루어지는 우연한 일은 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믿음’과 ‘사랑’의 문제인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만남으로써 그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다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의사 잘 만나는 것도 복이고 환자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오직 예수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 진정한 우리의 복(福)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