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수요일

의료의 가치(THE VALUE OF MEDICINE)

세계 최고의 국가에서 허리케인 이라는 자연재해 앞에 인간과 과학의 무력함을 보이는 재난이 일어났다
오늘날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여 재난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피해를 줄여 볼수는 있다 하여도 자연 변화에 따른 재앙을 피해가는길은 별로 없는 것이다.
의학의 분야에 있어도 분명히 양방의학으로 고칠수 있는 병의 한계가 있는 것이고 질병의 발생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많을 뿐 아니라 질병을 진단해 낸다 하여도 특별히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 상호 보완의학이 필요한 것으로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의 경험상 양방의학으로서는 설명이 되지 않고 별다른 방법이 없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설명이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있는것을 체험적으로 느끼며 그 치료효과에 대하여 환자도 놀랄뿐 아니라 필자 자신도 경탄 할 정도일때가 많이있다.
그러나 항간에 기본적인 의학 지식이 없이 환자를 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의 경우 의사와 한의사간의 논쟁이 정도를 넘게 되어 서울 의대 학장이신 왕박사님의 글을 인용하여 의료에 종사한다는 분들의 의학적 지식의 발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언제 어디서나 배움에 정진하여야 하는 것이 의료인의 자세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공부도 안하고 아는척 하는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얼마전 신장이식 수술을 두번씩이나 받으셨던 분이 내원하셨는데 이곳 한의원에서 한약을 몇재씩 먹으라 했다니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지함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면서 몇백, 몇천년전의 과거 지향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의학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장기 이식이 무엇인지, 그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장기이식 후에는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고 있으므로 생갓없이 약을 몇재씩 주는 것은 독(毒藥)약을 주는것과 같은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의 한의사나 이곳의 침구사들이 보물단지 모시듯하는 '동의보감' 만 하여도 수천년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한의학과 민간 요법을 집대성한것으로 지금부터 약 400년전 조선시대에 간행된 것이므로 일본군이 조총을 가지고 조선군의 활과 싸우던 임진왜란 당시와 쿠르즈 미사일과 로봇 전투병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전쟁이 다르듯 엄청난 시대적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스타워즈와 같은 시대에 따발총도 아닌 조총을 고집하고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갈수가 없는 것이며 의학이 발달하여 인간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그리고 분자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정보를 통한 유전자 치료를 하는 서양의학을 모르고서는 환자를 진료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박물관에나 가야하는 한의학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터득하며 아래의 글이 진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의료 행위가 ‘가치’ 있으려면

'의료는 근본적으로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이므로 당연히 자료에 기초한 근거를 가져야 한다.
옛날에는 단순한 경험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의료를 행할 후 있었다.
당시에는 과학의 방법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에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진료지침을 따라야 한다.
천재의 영감이나 우연한 발견이 검증되지 않은 채 인체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한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새로운 약물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이다.
과거 임신부들이 입덧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특정 약물을 복용하였다가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많이 출산한 사건이 있었다.
새로운 의료기 술, 약물, 의료기기가 인체에 적용되려면 안전성과 유효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신약 개발의 예를 들어 보자, 시험관 내 연구 들을! 통해 특정 질환에 유효하고 안전할 것으로 예상 되는 물질이 발견되면 이어서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장기에 미치는 영향, 유전적 위해와 기형유발 여부 등의 안전성 검사를 시행한다.
여기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약물은 다시 인체에서 안정성과 유효성을 검증 받게 된다

제1상(PHASE)
임상시험에서는 건강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안전한 최대 용량과 환자에게 사용될 용량을 결정한다.
제2상(PHASE)
시험에서는 해당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확인하며
제 3상(PHASE)
시험에서는 역시 환자를 대상으로 이미 널리 이용되는 약물과 엄격한 조건 하에서 비교해 이보다 더 우수한지를 검증 받게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 받게 되면 시판이 허가된다.
제3상 시험까지 평균 10년이 넘는 시간과 8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투자해도 제한된 수의 환자로부터 자료를 얻을 수밖에 없어, 드물게 나타나는 유해반응 유무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시판 후에도 수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유해반응 발생 여부를 감사하여야 한다.
이미 시판되던 약물이 유해반응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많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관찰하여야 비로소 나타날 정도로 비교적 드물게 발생하는 유해반응이 있기 떄 문이다.
새로운 의료기술과 의료기기도 이와 유사한 절차를 밟아서 인체에 적용된다.
이러한 연구의 각 단계는 윤리적이며, 과학적이고, 그리고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 전 단계에서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추어야 다음 단계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우려가 되는 위해에 필요 이상으로 동물이나 사람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현대 의료는 ‘근거중심의료 ( evidence- based medicine)’ 를 추구한다.
모든 의료행위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근거는 관련된 기전을 속속들이 밝혀 높은 수준으로 확보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현상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차원에서도인정된다.
과거 약물치료가 발전하기전 간질발작 환자에게서 정신분열증의 빈도가낮다는 현상에 착안하여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전기충격으로 간질발작을 유발시켜 증상을 완하시킨 적이 있다.
정확한 기전을 모르지만 그효과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증명하였다면 비록 근거의 수준은 낮지만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춘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의료 행위는 명백하게 과학적 근거를 갖추고 그 근거의 수준이 정해질때 비로서 의료 행위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유방(BREAST)

얼마전 TV 프로에서 젊은 여자 아나운서가 '유방'에 대하여 "어른이나 아이 모두가 좋아한다"는 말을하여 구설수에 오른적이 있었다.
사실 말이야 틀린말이 아니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떠들어 댄것이 문제였다.

유방이라는 것은 생김새로 보나 촉감으로보나 아름다움(美)의 상징으로 여체의 환상적인 몸매를 표현하는 S라인의 핵심이다.
도드라진 유방을 강조하기 위하여 허리를 잘룩하게 하여야 하는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아름다운 신체를 지니고 유지하기 위하여 기를쓰고 운동하며 땀을 빼고 죽기살기로 굶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치않고 칼을 대는것 조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S몸매의 시작

이처럼 유방을 섹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중요한 성감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엄마의 품'으로 보자면 영원한 우리들의 안식처요 꿈에도 못잊을 어머니 인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것은 모든 여성의 소망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열망과 달리 몸매는 나이가 들면서 탄력이 떨어지면서 쳐지게 되는 것이다.

사춘기의 가슴과 30대 여성의 가슴이 같을 수 없고, 임신 전과 출산 후가 같을 수 없다.
가슴을 구성하는 유선 조직과 지방 세포의 크기와 숫자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습을 할때 오랜시간 포르말린에 담기워 방부처리를 거치며 쭈글해진 유방조직이 해부과정 중에 쉽게 분리되는 것을 보고 놀랜 기억이 난다.
오늘날 풍성한 먹거리로 영양이 넘쳐나며 보고 듣는 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유방발육이나 초경이 빨라지고있으나 사춘기와 함께 시작되는 가슴 크기의 변화는 2차 성징 발달이 끝나는 나이에 그크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때의 가슴은 지방에 비해 유선조직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 탄력적인 것이 특징이다. 가슴의 크기는 유전적 원인 외에도 성호르몬 분비와 관계가 있으며 그밖에 식생활 패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대개 손바닥으로 유방의 70-80%정도가 잡힐때 정상크기이며 큰 가슴의 기준은 개인의 키나 몸무게 등 체격 조건과 인종적인 차이에 따라 다르나 한인 여성의 경우 착용하는 브레지어가 보통 A와 B컵이 평균이고 C컵이상의 속옷 사이즈를 사용하는 경우 유방이 큰것으로 분류한다. 대체적으로 기성제품의 브레지어 사이즈로 맞는것이 없어 특별히 맞춤 브레지어를 사용해야할 정도의 커다란 유방을 거대 유방이라한다.
유방은 이차 성징으로 여성호르몬의 자극에 의하여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발육을 시작하여 여성특유의 모양과 촉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외형적인 미(美)를 이루는 중요한 섹스 심벌이기에 대부분 보다 크고 풍만한 가슴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삶 가운데 수유라는 아주 중요한 역활을 지니고 있는것을 잊어서는 않되는 것이다.
오늘날 분유라는 대용식이 발달하여 쉽게 모유를 대신하며 온갖 필요성분을 첨가한 특수분유를 선보인다 하여도 출산후 분비되는 모유를 대신 할수는 없다. 물론 함몰유두를 비롯하여 산모의 상태나 신생아의 질환등 여러 사정상 수유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하므로 분유를 요긴 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 없어 못먹던 시절에는 가능한 줄수 있을때까지 모유를 물리게 되므로 오히려 영양학적으로는 빈혈을 비롯한 영양결핍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 유방의 미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유에 따른 유방의 형태적인 변형을 염려하여 수유를 안하던 시절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신생아에 좋다는 '초유'만 먹이고 젖을 끊겠다는 계산(?)이 빠른 산모들도 보게 된다.
생명의 근원 영원한 안식처
젖을 물고 빠는 아기를 볼때 꼭 배가고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젖을 빠는것이 아님을 보게된다. 젖을 빨다가 쉬었다 다시 물고 그리고 문채로 잠이들고 자다가 민대고 만지고 비비는것을 볼수가 있다. 유방이 젖이 나오는 식(食)의 문제만을 해결하는곳이 아니요 의(衣), 식(食), 주(住)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이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유방을 여성호르몬과 연관된 유방조직이며 유즙분비 호르몬의 자극에 의하여 젖이 분비되는 기관으로 흔히 유선염이나 섬유낭종 그리고 악성 유방암이 발생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근래 미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유방성형술이 주류를 이루므로 의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며 영원한 섹스 심벌로서 유방의 역활이 강조되기에 요즘 옷차림새가 유방을 살짝 보여주는 쪽으로 최대한 노출을 유도하고 있다. 옛날 물동이 이고가는 아낙네들의 쳐진 젖가슴이 저고리 아래로 보이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은 유방을 올려주는 기능을 강조하여 위로 불룩나오는 모습을 연출하여 풍만한 가슴을 만드는것이다.
한의학적으로는 유방은 젖이 나오는곳이며 간(肝)과 연관성을 두고 있다. 물론 간(肝)이 여성과 밀접하며 오행이론상 생명의 시작과 연결이되니 이러한 관점에서 유방을 해석해보는것도 재미있는 일이된다.
풍만한 가슴, 보드라운 촉감, 그리고 터질듯한 탄력의 유방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다. 이런 유방을 갖고자하는 여성들의 바램은 형편이 된다면 기꺼이 수술을 받고자 하는데 대부분이 유방확대술이며 간혹 거대유방으로 인한 통증 및 생활의 불편이 있는경우 유방 축소수술을 받기도 한다. 종종 연예인들의 유방을 보면서 자연산이니 확대수술을 받았느니 말들이 많은데 유방성형수술을 받은 여성의 유방은 보면 알수가 있다. 어찌보면 인위적인 성형 수술을 받은 유방의 송곳한 모습이 아름다우며 탱탱한 탄력을 지니고 있지만 나이외 견주어 주변과 어울리지않게 항상 솟아있는 유방이 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10대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의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고 촉감도 좋기 때문이며 누구나 저나름대로의 얼굴이 있듯이 유방이라는것이 제자리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것으로 누구나 똑같은 모양의 유방을 성형해서 만들것이 아니다. 근래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 가슴을 선망하는 40, 50대의 여성 유방 성형수술이 유행한다지만 지나온 세월의 경륜을 보이며 사랑의 숨결이 담긴 자랑스런 유방을 간직하여야 할것이다.

웰빙과 웰다잉(WELL-BEING & WELL-DYING)

인간의 생(生),사(死),화(禍),복(福)이 우리의 바램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것이 아니기에 살아가는것이 힘들다는 말이다.
이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추구하는 목표는‘잘 사는것’이다.
즉 ‘웰빙’이다.
공수래(空手來)
누구나 사람은 태어날때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는것이 없다.
오직 부모님께로 받아 자궁내 탯줄에 연결되어 만들어진 몸둥이 하나가 전부이다.
속옷하나 걸친것 없이 오히려 묻히고 나온 태지마저 씻겨버려야할 알몸인 것이다.
여기에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입혀지고 먹이어져 성장해 간다.
이때는 주면 먹고 안주면 못먹고 입히면 입고 벗기면 알몸이 되어 내가 할수있는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말그대로 빈손으로 온것이다.
살아가는것이 은혜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것에 감사해야 할일이다.
살아가면서 땀흘려 애쓰며 수고를 하는 것이 인생이나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않되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열심으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준다고 하여도 그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을 해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것이다.
다만 씨를 뿌리고 가꾸면 결실을 맺어 추수할수 있음을 믿으며 아낌없이 씨앗을 뿌리러 나간다.
이것이 믿음이요 은혜이다.
다만 오직 감사할 따름인것이다.
차이는 별것이 아니다.
웰빙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출발을 하는 것이다.
감사하며 살다가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떠나는것이 웰다잉이다.
질병이 없는것 뿐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웰빙을 건강이라고 정의한다.
모든것에 있어 웰빙을 바라는것이 사람들의 소망이기에 많은것을 소유하고 많은것을 누리며 부족함을 모르는 풍요로움 속에서 살기를 바라는것이다.
이러한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결코 어느것 하나라도 내려놓을 수가 없는것이며 더많은 소유를 위하여 끊임없는 수고를 하는것이다.
공수거(空手去)
이땅에 태어나 복잡한 세상을 아무리 분주하게 살았을지라도 갈때는 그야말로 모든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게된다.
이세상에서 수많은 일로 여러 업적을 높이 쌓았다 할찌라도 결국 가지고 갈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시작도 벗은몸으로 온것이고 마지막도 빈손으로 가는것이다.
말그대로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이다.
살아 생전 손아귀에 온 천하를 쥐었다하여도 죽을때에는 모든것을 놓아두고 가는데 피라미드를 쌓건 타지마할 묘를 만들건 간에 결국 손에는 아무것도 남기는 것없이 모든것은 누군가의 것이 되고마는 것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갈수만 있어도 그것은 행복한 것이다.
모두가 적신으로 왔건만 제몸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너무도 추한것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았고 때로는 인척관계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몇차례 부검과정을 지켜보면서 결국은 죽어서 남기는 것이 육신의 고깃 덩어리에 불과함을 느낄때가 많았다.
시신을 옆에 두고 죽은자의 남은 재산을 탐하며 싸우는 자 뿐아니라 온갖 거짓과 속임으로 남은 자들에게 분란만을 남기고 부질없는 삶을 살며 떠나간자의 육신은 너무도 추한 모습이 된다.
죽음 앞에서 경건해지며 돌아가신분의 삶을 함께 돌아보는 추념의 시간을 가지며 아름다웠던 기억을 음미해 보는것은 너무도 소중하다.
이러한 아름다운 기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남기며 사는것이 바로 웰빙이며 웰다잉인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흔히들 잘먹고 잘입고 좋은 집에서 원없이 살다 가는것을 웰빙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의미있는 삶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점하나 찍어 화폭의 용(龍)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니 아무리 이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육신의 소원을 다 이루었다 할찌라도 그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그 생명은 살았다하나 죽은 목숨인 것이다.
이땅에 태어나 사람들과의 선한 관계 속에 남기고 가는것들이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면 그 삶은 가치가 있으며 의미있는 것이 된다.
한의학은 과불급(過不及: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음)을 목표로 한다.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침이 없이 두루두루 모든것을 어우르는 것이다.
거짓과 과장이 없어야 하며 있는것을 그대로 보고 깨닫는 진솔함이 있어야한다.
이것이 한의학의 본질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하는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다루는 한의학은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서양의학에 비하여 의철학(醫哲學)에 가까우므로 그자체가 웰빙과 웰다잉이라는 삶의 의미를 함축하는 의학으로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월요병(月耀病)

새로운 시작에는 항상 설레임이 있다.
다가오는 미지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도전에 맞서기 위한 응전의 투지가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월요병의 원인
일상의 쳇바퀴도는 생활가운데 새로이 시작해야하는 월요일이 되면 웬지 모르게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무기력해지며 힘들어하는 경우를 일컬어 ‘월요병’이라 한다.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모처럼의 주말 나들이가 삶의 활력을 주는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흐트러진 생체리듬을 원래의 리듬으로 적응해 가는데 나타나는 신체적인 현상이나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오는 것으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많으며 대개 다섯 사람중 세명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월요병이라고 해서 꼭 월요일에만 나타나는것이 아니고 연휴에는 언제나 나타날수가 있다.
월요병은 스트레스가 가장큰 요인으로 특히 소심한 성격의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며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업무가 과중하게 느낄때가 많으므로 이를 기(氣)와 혈(血)이 약한것으로 보고 기허(氣虛), 혈허(血虛)라 하기도 한다.
월요병의 증상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병든닭’을 생각하면 된다.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졸음과 피곤이며 자율신경계의 이상으로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한 위장관계 증상이나 숨이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혈액순환계의 이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무기력증과 함께 짜증이 있는데 이런 단순증상 외에도 빈뇨와 발한등이 있을수 있다.
특히 주말에 밀린잠을 보충하려고 작심하고 늦잠을 자거나 하루종일 침대나 소파에서 뒤척이면서 TV를 보노라면 요통이나 경항통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증상을 특별히 ‘월요척추병’이라 명명을 하기도 한다.
왜 월요병이 문제인가
한주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이 힘들고 직장에 출근하는 생각부터 부담이 될때 이러한 상태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것은 고통스런일이다.
업무의 효율도 오르지 않으므로 생산성이 떨어지는것은 물론 산업 재해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므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건강과 행복 뿐아니라 사회적문제가 되므로 치료와 예방의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방법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할수있는 방법과 직장이나 학교에서 여럿이 어울려 하는 것으로 구분 할수있다.
월요병의 치료와 예방
무엇보다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로 규칙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바람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것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좋다.
인터넷 문자메시지를 이용하여 사랑과 격려의 교감을 나누는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을일이 아니고 스트레칭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고 앉는 동작만으로도 효과가 크다.
이는 서양의학적으로나 한의학적으로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매우 좋은 방법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월요병이 정상적인 생체리듬에서 벗어나거나 업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우리몸에 내재되어있는 질환에 의한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병을 감별해 내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숨겨진 질환을 찾아라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반복되는 피로와 졸림증상 그리고 무기력감과 이유없는 짜증이 계속되는 경우 ‘만성피로 증후군’의 범주에 포함시키게 된다.
특별히 갑상선을 비롯한 여러 내분비 질환을 제외하고는 여러가지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특별한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개 피로하지 않도록 무리하지 마시고 신선한 야채를 드시거나 비타민의 복용을 권하게 된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이런증상들이 나타날때 가장 쉬운것이 기허(氣虛)와 혈허(血虛)가 된다.
누구나 한의원에 가면 기(氣)가 어떻고 혈(穴)이 어떻고 하는것을 듣는데 잘알아도 기(氣)와 혈(血)이요 아무것도 몰라도 기혈(氣血)이라 한다.
이것이 한의학의 한계이다.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것은 객관적인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먼저 의심되는 서양의학적인 질환을 감별 진단하면서 별다른 이상증후가 없을때 한의학적으로 기혈(氣血)의 문제로 보고 치료를 하는것이 옳은 방법이다.
이것이 한의학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된다.
예전에 손에 땀이나서 종이가 젖고 찢어져 글씨를 못쓸정도의 환자가 있었다.
특히 월요일에 심했는데 업무부담에 의한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수술을 권유 받았으나 필자에게 침을 맞고 치료 효과를 보았다.
월요병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며 특히 주말이나 연휴후에 흔히 나타나므로 휴식의 연장선상에서 월요병을 관리해야 하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인체의 해부학과 생리 그리고 병리학에 근거하여 순리로 풀어야 할 질환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월드 컵(WORLD CUP)

온세계를 열광시킬 월드컵 축구 경기가 6월 9일부터 시작이 된다.
4년마다 전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는 축구 경기로 언제부터인가 듣기에 섬득한 "붉은 악마"가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히 들어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70, 80년대 한세대를 풍미하였던 많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있으며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본 증인이기에 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금번 월드컵 경기의 막중한 책무를 담당하는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신 이영무목사님과는 각별한 사이이므로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올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세상에 스포츠 만큼 우리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없다.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하나되게하는 힘은 같은 것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경기때는 거리 응원을 펼치며 온국민을 하나로 만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였으니 시청앞 광장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때로 하나되는 힘이 잘못 분출되어 폭력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다양한 민중을 획일적으로 통일 시킬수 있는 스포츠의 매력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레크레이션으로 삶의 활력이 되지만 한편으로 우매한 민중으로 만드는 스포츠의 힘을 적절히 악용(?)하는 수법이 독재자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가 된다.
독재국가마다 엄청난 규모의 운동 경기장을 지으며 자신의 거대한 동상을 세워 민중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이의 영도자로 각인시키는 숫법이 그것이다.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들어 천천히 흔들면서 우매한 군중들의 눈물겨운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광경을 멀리 로마시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부터 오늘날 북한땅 평양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몇일전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둔 2006 독일 월드컵의 열기가 터질 듯 뜨거운 가운데 월드컵에 열광하는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정을 비판적으로 돌아본 사회학포럼이 열렸다.
한국스포츠사회학회는 '한국사회와월드컵: 미래지향의 성찰과 대안'을 주제로 월드컵 특별 세미나를 개최하고, 열광적인 월드컵 축제의 분위기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통하여 특히 상업주의와 결탁한 대중매체의 선정적 보도 행태를 지적하고,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배타적 애국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내용인즉 "2002년을 기점으로 월드컵은 우리에게 괴물이 됐다. 돈벌이의 도구, 애국을 증명하는 도구가 됐고,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 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스포츠 정신' 을 강조한다 하여도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과 함께 경쟁속으로 빠져 들게 되는 것이다.
절대 경쟁이 아닌 상대적인 경쟁속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나를 우월하게 만들거나 상대를 뒤쳐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의 불행속에서 찾아오는 자신의 행운'에 쾌재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보기에도 예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경쟁 상대에 대한 테러를 사주했던 사건이 한예이다.
아름답도록 우아한 미소 가운데 숨겨진 섬뜩한 살기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오직 일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패배' 와 '패자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줄 알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한순간의 쾌락으로 날려 보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발전의 계기로 삼을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젊음의 분출구
필자가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있을때 대학 축제 기간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을 지낸후 산부인과에 내원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음을 보면서 "산부인과 특수(?)"라 하였다.
2002 월드컵 때에는 꿈에도 상상 못할 월드컵 4강을 이룬 전국민의 흥분이 지니쳐 젊은이들은 실성할 정도였으며 더구나 한국에서 개최된 연고로 그정도를 넘어섰다.
필자의 생각에는 2002 월드컵이 '한국인의 연애관, 이성관'에 일대 전환점이 된 월드컵의 역기능이었다고 보며 이후 월드컵과 유사한 대중의 열기가 더할수록 이와같은 후유증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중들을 환호속에 몰입 시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수도 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의 달아오른 열기로 인하여 혼미해진 민중의 힘이 잘못 분출된 결과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위한 추모대회로 불씨가 옮겨 붙어 시작된 "촛불시위"가 반미 집회로 변질되었고 주사파들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게 된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후 시도 때도없이 시청앞 광화문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흔들어 대면서 그해 대통령 선거에 불을 당겨 홀라당 태워 먹게 되어 지금까지 화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분별력을 잃어버린 힘은 재앙이 되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다"
필자는 금번 독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좋은 성적을 올려 갈갈이 찢겨진 상처를 싸매주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며 불신하는 마음을 도닥여주며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용솟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총선거를 치루며 물줄기의 흐름을 잡았으니 힘찬 정진이 필요할때이다.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우리를 돌이켜보고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며 우리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뿐아니라 상대선수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내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기 바란다.
경기중에 넘어뜨린자를 겨냥하여 되로 받은것을 말로 갑지 말고 일어나 웃으며 등을 두드려주고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 세우는 손을 내밀기 바란다.
진정으로 감동 어린 경기 장면을 통하여 마음 뿌듯함을 느끼는 경기를 보면서 월드컵 출전국가의 국민으로 뜨거운 응원을 할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들만의 감동이 아니라 온세계의 가슴뭉클한 감동의 순간이며 벅찬 감격의 순간이 되기를 소원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꿈"을 이루었다.
우리들은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온인류가 하나되는 "꿈은 이루어지다"의 2006 독일 월드컵이 되기를 소망한다.
경기후 심판 때문이라든가 운이 좋아서라던가 하는 악평이 아닌 진정한 승리와 아름다운 패배로 기억되는 월드컵 경기가 되도록 하자.
모두가 박수를 치고 모두가 박수를 받는 하나되는 월드컵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