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필자의 병원에서 치료 받고 계신 분으로 연세가 팔십이 넘으셨고 보행이 불편하여 보조기를 밀고 다니시는 분이 계시다.
이곳의 침술사들 모두에게 침을 맞아 보았다 하셨고 좋다고 하는 약이란 약은 모두 구입해서 드신다고 하였다.
평소 필자에게 치료를 받아오시던 분의 강권에 의하여 함께 찾아 오셨다.
한방의 진단 방법인 볼(望) 때부터 온갖 질환이 있어 보였고 연세도 고령이므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한번만 침을 그냥 놓아 달라” 며 모시고 온 분의 요청이 워낙 아름답게 생각 되었고 필자의 모친이라 여기고 침 치료를 해 드렸다.
과연 낫겠는가
환자께서는 지난 봄에 어느 한의원에서 열 번 침을 맞았는데 더 심해졌다고 했으며 어디서는 침을 놓아주고는 한약 봉지를 주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고 했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한 두 번에 치료 될 상태가 아니었다.
한 쪽 다리는 중풍(中風)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무릎이 통증은 퇴행성 관절염의 소견이 있는데 얼마 전 병원에서 연골이 다 달아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그보다 필자가 염려되는 점은 심각한 복부 비만과 함께 전신적으로 나타나는 부종의 상태였다.
고령의 환자께서 자신의 병력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십여 년 동안 이뇨제를 복용 해 오고 있으며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이뇨제를 투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종이 지속되는 것은 무언가 심각한 만성 질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에게 침 열 번 맞으면 낫는다고 하였다니 한심한 침술사이다.
더구나 침 맞을 때마다 한약 몇 봉지 주고 드시라 했다니 더욱 무지한 침술사이다.
환자의 정확한 상태의 파악과 함께 의학적 검사 소견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이뇨제를 복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푸석하며 다리의 부종이 심한 분에게 침 놓고는 기운 내라고 한약 몇 봉지 주는 것은 막힌 변기에 변을 보고 계속 물을 내리는 짓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연골이 달아 없어진 무릎 관절은 침 열 번 찌른다고 연골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다.
치유와 소망
첫 날 다녀가신 환자분께서 다음날 오셔서 침 치료를 받으시겠다고 했다.
먼저 침 치료의 과정에 인내가 필요함을 말씀 드리고 복용하는 약물 가운데 혈압 당뇨약과 이뇨제 그리고 와파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드시지 말라고 했다.
동반된 질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연세도 고령이시며 중증의 퇴행성 관절염이 있으시고 중풍 후유증이 남아 있으므로 난치(難治)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꼭 복용해야 할 약과 안 먹어도 되는 약의 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다” 거나 때로는“치료하나 안 하나 똑같다” 고 했지만 “발목의 붓기가 빠졌다”, “관절의 버걱대는 것이 줄었다”, “다리에 쥐나는 것이 적어 졌다”, “어떨 때 가만히 있을 때 기분이 매우 좋다”, “다리 끌리는 것이 덜하다” 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필자의 생각에 무언가 침 치료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의 치료 과정이 요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환자의 설명에도 뭔가 반응이 가는 것이라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지지가 않는다” 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서양 의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분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혈전 예방을 위한 와파린 투여와 함께 부종에 따른 이뇨제를 투약하고 있지만 중풍에 의한 족관절의 마비와 슬관절 연골의 마모에 의한 동통에는 진통제 외의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치료와 반응
많은 환자를 보노라면 치료의 효과를 매우 예민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분들은 별다른 차이점을 감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의 경우 치료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찾아서 치료의 방향과 예후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상기 환자의 경우에도 분명히 달라지는 기운(氣運)이 있다.
본인이 느끼고 말하는 차이점이 그것이다.
때로 아팠다 안 아팠다 하면서 오랜 세월의 고통이 남아 있으므로 “똑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 이며 의사는 이러한 차이점을 알고 실타래 풀 듯이 치료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있다면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치료의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경우에도 무언가 다른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근거로 하여 나음에 대한 소망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의학(醫學)은 과학이지만 의술(醫術)은 신앙이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많이 본다.
무조건적인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의학 지식에 근거한 확실히 믿어지는 신뢰이다.
여기에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모르는 자에 의한 무식한 확신과 무지한 강요는 사이비 종교이며 푸닥거리 가 된다.
치료 할 수 있는 것과 치료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분별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리고 전후 좌우를 구분 못하고 누구에게나 한약을 주어 먹게 하는 행위는 의료가 아니다.
오히려 한의학에 대한 불신과 짜증만 가중 시킬 따름이다.
한방이 모든 질환을 치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에게 치료 받고 효과를 못 본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의학적 지식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의료의 왜곡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하는 가짜들로 부터 기인한다.
가짜는 떠들수록 드러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믿음과 기다림
환자를 보면서 치료의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의사는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총 동원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흉내를 내어서도 안되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환자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면서 치료의 결과를 예측하게 되는데 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의학적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환자분들의 경우에도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대략의 치료 기간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종종 치료의 과정을 제대로 들어서기도 전에 효과를 예단하며 ‘효과가 없다’ 고 판단을 내리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치료하는 자나 치료받는 자나 피차에 손해이다.
확실한 의학적 지식의 근거 위에 가능성을 찾아 매진하는 것이 의료(醫療)이다.
의사는 자신의 의술(醫術)의 모든 능력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며 치유의 역사는 믿음과 기다림으로 얻어지는 축복인 것이다.
믿음과 인내에 대한 자신의 몸가짐을 돌이켜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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