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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일 수요일

여성의 갱년기(CRITICAL AGE OF WOMAN)

아름다운 서북미 지역의 단풍모습이 이제는 땅에 떨어져 딩구는 낙엽의 모습을 보게된다.
따뜻한 봄날의 파릇파릇한 새싹이 수많은 잎사귀들의 푸르름과 함께 풍요로운 열매를 남기고 이제는 떨어지는 낙엽으로 기나긴 겨울의 동면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자연과 인생의 오행인 생(生), 장(長), 화(化), 수(收), 장(臟)의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오행(五行)의 역사
특히 생명의 잉태로 출산과 양육으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일생가운데 ‘배란’과 ‘임신’이라는 ‘생리주기’가 있다.
매달 ‘잉태’의 성(聖)스런 의식을 치루게 되는데 매달 반복되는 달거리인 ‘월경’이 그것이다.
한의학에서는 2X7=14, 열네살이 되면 천계가 열리고 임맥이 통하게 되고 태충맥이 성하여져서 생리가 시작되고 비로소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된다고 하였고 7X7=49, 마흔아홉살이 되면 임맥이 허하여지고 태충맥이 쇠하며 천계가 갈하여 생리가 끊기게 된다고 하였다.
산부인과학 교과서에 여성의 가임기간을 약35년으로 정의하는 서양의학을 볼때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수천년의 역사에 일맥상통함을 발견하는 놀라움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순리
인생살이가 늘 젊은 청춘 같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의 몸은 쇠락의 과정을 겪게 되는것은 피할수없는 역사의 순리이다.
아리따운 이팔청춘의 아름다움도 세월의 흐름앞에 사그러지는 불꽃과 같으니 이를 ‘갱년기’라 지칭하는 것이다.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며 자손의 번영을 위한 생산력을 의미하는 경도는 쥐어짜내듯 찔끔찔끔 거리거나 때로는 건너뛰다가 한번에 울컥 쏟기도하는 불규칙한 양상을 보이고 만지면 터질것같이 탱탱하던 피부는 주글주글해지며 골깊은 주름살만 남기게 된다.
이것이 세월의 무상(無常)인것이다.
신혼(新婚)의 잠자리도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오직 아픈 통증의 자국만 남기게되며 여기저기 새는 누수의 현상만 남을 뿐이다.
이모든것은 여성호르몬의 분비 감소가 그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여성다움과 아름다운 매력의 상실로 부터 느끼는 충격은 매우 큰것이다.
심한경우 얼굴이 벌겋게되는 안면홍조와 시도때도 없는 발한의 증상이 있게 된다.
더구나 골다공증에 의한 병적골절의 발생이 많으며 골절유합의 과정도 늦어져 힘든 노년을 보내게 되는 것이 가장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갈무리 인생
갱년기의 연령에 들어서면 슬하에서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던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며 독립해 나가고 각기 제짝들을 찾아 갈길을 가므로 허전한 상실감이 더욱 크게 된다.
이를 ‘빈둥지 증후군’이라 일컫는다.
남편들의 경우 사회적인 활동으로 바쁘다보니 가정에 소홀해 질수밖에 없으므로 기나긴 밤을 홀로 지샐수 밖에 없는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연로하신 부모님과 형제들이 하나씩 곁을 떠나가는것은 물론 누적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사오십대 한국 남성들의 돌연사(死)가 많으므로 혹시 가장이라도 잃게되는 경우의 충격은 이루 말할수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갱년기(更年期)
라는것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통과의례이다.
다만 그 증상의 경중(輕重)에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지혜롭고 부드럽게 ‘갱년기’라는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것이 중요하다.
먼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마음의 준비를 가져야 한다.
즉 마음을 비울 일이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것이 커다란 도움이 되는것을 잊지 말것이다.
멀어져가고 예전만 못한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일이다.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듯 부부가 합심하여 다시한번 새로운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황혼의 아름다움과 넉넉함 그리고 여유가 있는것이며 이러한 모습이 자녀손을 통하여 전달되어 나가는 가문의 영광과 전통이 되는 것이다.
서서히 넘어가는 황혼녁에 찾아오는 생리 주기의 가물거림이 모든것을 버리고 모든것을 잃는 폐경(閉經)이 아니라 모성(母性)으로서 여인의 삶을 완숙시키는 완경(完經)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화(HARMONY)
세상의 이치는 조화로움이 있어야 한다.
절대적이며 일방적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며 서로에게서 만족과 기쁨을 찾는 상대적 조화가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폐경이라는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먼저 생리에 관한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그리고 자궁과 질에 이르는 호르몬 분비의 생리학적 매카니즘과 여성 내부, 외부생식기에 관한 서양의학적인 해부학의 기본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의 이치를 바라보는 동양의학적인 지혜의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음양과 오행의 원리에 초경(初經)과 폐경(閉經)이라는 생리의 시작과 끝이 들어 있는것이며 이는 호르몬이라는 물질의 매개에 의하여 작동이 되므로 아는것 위에 깨달음을 더해야 하는것이다.
이것이 갱년기를 넘어가는 삶의 지혜이다.

여성불임(FEMALE INFERTILITY)

필자의 한방병원이 불임전문으로 알고 찾아오는 환자분들이 많이있다.
흔히 불임이라하면 여성이 원인인것으로 생각하는지라 당연히 내원하시는 환자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물론 여성들이 임신에 있어 막중한 역활을 하는것은 사실이다.
매월하는 월경이 있고 자궁을 지니고있고 출산의 과정이 있으며 수유의 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따른 해부 생리학적인 기전이 남성에 비하여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이에대한 충분한 의학적인 지식이 없다면 불임문제에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해부 생리학적인 의료지식과 경험이 없는것은 성황당에서 산신할멈께 비는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모를 경우 시간과 돈만 허비하게 만들어 환자들로 하여금 낙심케하고 치료에 불신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임신이라는것이 한달에 한번오는 기회이므로 그때를 정확히 예측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실행하여야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임신을 하기위한 여성의 외부 생식기나 내부 생식기에 관한 의학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을까”를 짐작할수가 있다.
인체의 신비
불임치료가 해부 그림책 보고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뱃속은 가만히 있는것이 아니고 이세상 어느 기계보다도 정밀하게 생리기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충 흉내내면서 얼버무려서는 절대로 않되는것이다.
여성들의 해부 생식기마다 임신에 관여하기에 각기 불임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된다.
여성의 외부 생식기인 질에서 부터 자궁경부, 자궁체부, 나팔관, 그리고 난소에 이르는 내부생식기의 해부학적인 요인들이 있으며 골반이라는 복강내 인자가 있다.
그리고 전신적인 요인이 있으며 뇌하수체-시상하부-난소에 이르는 생리학적인 축이 있는것이다.
사정된 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질로 들어가 자궁에서 난관에 이르는 길은 마치 천로 역정과 같은 고난의 과정이다.
무지무지한 속도로 사정된 수천만에서 수억에 이르는 정자 무리들가운데 자궁점액을 뚫고 자궁강으로 들어가 나팔관 구멍을 통하여 난관 팽대부에서 배란된 난자를 만나 난자의 견고한 막을 뚫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이다.
사정된 수없이 많은 정자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난자내로 입성하는것이니 그경쟁이야 말로 비교 할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천로 역정의 과정은 점액질을 비롯하여 곳곳에 정자의 행군을 막는 것이 있으니 히말라야 산맥보다 높으며 태평양 바닷속 보다도 더깊은 장애물이 있으며 수없이 많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서 난자와 맞나게 되는데 그것도 정확한 시간을 맞추어야 되는것이다.
이것을 수정이라 하는것이다.
수정이 이루어진 난자는 세포분열을 시작하면서 난관을 따라 내려와 자궁강에 이르러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착상이라 하는것이다.
수정란이 나팔관을 통하여 내려오는 길도 시간을 다투는 일이며 험하기는 마찬가지라 때로는 길이 좁아지고 막히게 되는경우 나팔관에서 지체되어 자궁외 임신을 일으키게 되는것이니 난관파열로 출혈이 될때는 목숨이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러나 무사히 나팔관을 통과하여 자궁강내에 착상이 잘 이루어졌다 하여도 태아로 계속 자라지 못하고 종종 미끄러지고 찌그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유산이라하며 임신부로 하여금 가슴아픈 슬픔을 주게 되는 것이다.
아는것이 힘이다
이러한 일련의 진행되는 과정은 눈에 보이거나 손목의 맥을 만져서 알수있는것이 아니다.
시기에 따라 혈액검사를 하거나 소변검사를 하거나 초음파 검사를 하여야만 알수가 있는것이고 때로는 이런 현대의학적인 검사를 하여도 확진을 못하여 시간을 두고 다시 검사를 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여성 불임의 경우 선천성 기형을 비롯하여 여성 생식기의 해부학적인 구조적 요인이 있으며
질의 문제 자궁의 문제 나팔관의 문제가 있고 뇌하수체-시상하부-난관에 이르는 호르몬에 의한 생리적 요인이 있는것이다.

흔히 한의학에서는 여자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것을 “불잉”이라하여 선천의 품부가 부족하거나 육음사기나 내상칠정에 의하거나 음식노권이라 하여 신장, 간장, 비장과 충임맥이 관계되는것으로 설명을 한다.
들어보면 맞는것 같기도하고 틀리는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양의학적인 여성의 해부와 생리를 알면서 한의학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서양의학으로 치료해야할 불임이 있고 서양의학에서 뾰족한 치료의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는것이다.
즉 서양의학으로도 안되는 것이있고 한의학으로도 안되는것이 있음을 알고 제대로 감별하는것이 중요하다.
해결의 방법
먼저 여성의 생식기에 관한 해부학적 지식과 여성 생식 생리를 알고난후 한방적인 개념을 적용할때 효과적인 불임치료와 높은 임신 성공률을 보게 된다.
여기에 불임치료의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이다.
불임 환자의 다급한 심정을 알고 있다면 “되면 좋고 안되면 할수없다”는 생각으로 환자를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환자가 처음 내원할때 치료의 과정을 설명해주는데 불임치료라는것이 환자의 체온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며 토요일 일요일이 없이 추적 관찰을 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배란날짜에 시간을 맞추어 적절한 성관계를 갖도록 하는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불임치료는 도박이 아니고 현대 의학에 의한 과학이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치료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요실금(STRESS INCONTINENCE)

날씨가 추워지게되면
인체는 항온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에 적응을 하는 여러가지 기전이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소변을 자주보게 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간 성가스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겨울철에 소변을 보고난 후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따뜻한 소변이 우리몸 밖으로 배출됨으로 인하여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아 주려는 보상기전인 것이다.
배뇨
우리 몸에서 불필요한 물질인 대사 산물을 배출시키는 아주 중요한 생리 현상으로
배뇨감을 느끼게 됨에 따라 배뇨 관련 방광 근육의 수의적 수축 이완 작용으로 소변을 보게 되는 것이지만
여성분들 가운데 웃거나 기침을 하거나 줄넘기와 같은 운동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소변으로 속옷을 젹시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계단을 오르거나 걸을때도 소변이 흘러 일상생활에 있어
불편함은 물론 뇨실금으로 인한 이차적인 질병을 일으키거나 소변 특유의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됨으로써 대인 관계에 있어 심각한 장애를 주는 환자도 많이 보게 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 이러한 상황에 위생적으로 대처하며 사용할 용품이 많이 나와 있어 여간 편리한것이 아니나
이런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분들은 매우 고통 스럽고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나 소변을 흘리고 다니는 것이 남성에게는 방광이나 전립선등의 질환으로 수술치료를 받고 나타날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여성분들이 나이가 들어 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질환인 것이다.
이런 요실금(Stress Incontenence)과 같은 질환은 누구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경우가 되기 때문에
혼자 고민하며 애태우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의 경우 해부학적으로 남성에 비하여 요도가 짧고 요도구와 질이 항문과 인접하여 있게 되므로 항상 상행성 요로 생식기 감염에 노출되어 있을 뿐아니라
출산과 임신 중절 수술로 인한 질손상 그리고 성생활에 의한 외부 비뇨 생식기의 자극 때문에 쉽게 빈발하게 되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사로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 특히 분만 출산 과정 가운데 아기가 산모의 방광을 과도하게 눌러 방광 괄약근이 손상을 받게 되는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실금이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와 같이 거대 체중아를 분만 하였거나 난산을 하였던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 이지만
질식분만을 하지않고 제왕절개술을 시행 받았거나 심지어 아이를 임신 출산해 본적도 없는 여성분들의 경우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원치 않는 요실금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요실금의 진단은 환자가 호소하는 주관적인 증상을 위주로 판단 하지만
혹시라도 뇨실금을 유발시킬수 있는 동반되는 다른 질환이 있는가를 우선 배제하여야 할뿐 아니라
정밀한 진단을 요하는 경우에는 방광 괄약근의 수축 이완 정도와 환자의 방광 내압과 요류 역동학적 검사까지 시행하여 정확한 상태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요실금에 대한 양방에서의 치료 방법은 뾰족한 방법이 없으므로
대체적으로 간단히 케겔 운동방식과 함께 방광근육에 작용하는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으며 수술적 치료 요법으로는 흔히 말하는 예뿐이 수술에서 부터 매쉬수술에 이르는 방법까지 다양하지만
심한 경우 개복 수술도 시행하게 되는데 수술을 할수 없는 경우에는 페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나
어느 방식으로라도 만족 할만큼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할때가 많이 있음을 보게된다.
한방에서는 우리의 몸을 붙잡아 주고 지지해주는 것을 기(氣)의 기능으로 보고 있으므로 소변이 찔끔찔끔새는 요실금을 비롯하여 냉 대하 생리 혈액 대변 땀 등이 과다 분비 배설 되거나 방광 질 자궁 항문 등이 빠져 나오는 모든 경우가 기(氣)의 부족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질환이 되므로 침이나 한약을 이용하여 장부의 기능을 살피고 기와의 영관성을 고려하는 관점에서 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여성의 비뇨 생식기에 대한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기능을 확실하게 알고 그에 따른 병리적 현상을 철저히 규명한 후에 적합한 치료를 하여야 함이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환자의 뇨실금 상태에 따라서는 양방적 수술을 고려하여야 할 경우가 있는 것이며
상태가 경하다면 한방적인 익기, 승기, 보기의 치료법으로 효과를 볼수도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이기에
수술을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한방으로 된다고 붙잡아 시간만 소비해서도 안되며
한방으로도 얼마든지 효과를 볼수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음으로써 수술에 따른 고통은 물론 수술후 발생할수도 있는 심각한 합병증이 있을 수도 있으며
경제적인 손실까지 초래하는 것이되므로 요실금 치료에 대하여 많은 경험을 지닌 전문 선생님을 찾아가
요실금의 원인에 따라 감별 진단하고 수술을 하여야 되는 경우인지 한방으로 치료를 하여 효과를 볼수 있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여 적적한 치료를 받아야 할것을 명심함으로써 소중한 여성을 회복시켜 유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올림픽(OLYMPIC GAME)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이 났다.
대한민국의 경우 올림픽 출전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인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 7위를 하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놀랐고 세계가 놀란 기록이다.
홍콩의 어느 시사주간지는 인구 4천800만 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무려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세계 7위를 기록한 것에 분명히 비밀이 있을 것 이라는 취지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중국에 이어 메달순위 2위를 차지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태능 선수촌을 중심으로 스포츠 생리학에 근거한 과학적인 훈련 방식과 함께 메달 획득 자에게 주어지는 포상금과 병역면제의 혜택이 경기력 향상의 유발 동기라 설명 했다.
끊임없는 경쟁
운동 경기는 이기려고 피땀 흘리며 힘쓰고 애를 쓴다.
이를 인간 한계에 도전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미화시키며 보는 자들로 하여금 이목을 집중 시키는 것이다.
종종 운동을 하다가 쓰러지거나 심지어 운동 경기를 관람하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나친 흥분의 도가니 가운데 경쟁에 몰입하면서 발생하는 사고이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모든 면에서 남들 보다 앞서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 상정이다.
특히 엘리트 체육을 지향해 왔던 한국의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다.
이토록 결과를 중요시하는 탓에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언사 뿐 아니라 가혹한 체벌이 당연시 되었고 운동장에서는 물리적 실력 행사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제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우리들을 흥분시켰던 올림픽도 끝이 났다.
올림픽 경기 중계 방송을 보느라 밤을 지새우던 일도 없어 졌다.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 간 것이다.
좋은 성적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자도 있지만 올림픽 경기에 출전 한 것 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하는 자들도 있다.
출전선수 267명 가운데 31개의 메달을 딴 선수를 제외한 남겨진 자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피와 땀도 헤아려 주어야 할 것이다.
현대 스포츠는 무작정 뛰고 달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체 공학이요 생리 의학에 대한 스포츠 과학인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현대 과학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조화와 상생의 원리
살아가면서 비교 우위에 따라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현대인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관점에서 보노라면 모든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 기준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스포츠가 사람들을 열광 시키는 것은 둘 가운데 하나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과정이 짜릿한데 절대적 대결 구도 가운데 어느 한편에 몰입 될수록 흥분의 강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경쟁을 추구하는 오늘날 스포츠에 탐닉되는 현대인의 병적 심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방의 개념은 상대적 평형에 의한 음(陰)과 양(陽)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절대적 가치 판단의 강박 관념 앞에서 ‘여백의 미학’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건강에의 지름길
서양의학과 한방의 추구하는 목표는 결국 같은데 유독 대한민국의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부딪히며 경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관점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방과 한방의 기본은 현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수천년전의 사람이나 오늘날의 사람이나 모두가 같은 이목구비(耳目口鼻)오장육부(五臟六腑)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배를 열고 수술을 하다 보면 얼굴 모습이 다르듯 내부 장기들의 구조와 생김새에 나름대로의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의학은 속병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겉을 치료하여 속을 낫게 하는 원리이다.
즉 온 몸에 침(針)을 찔러 음양의 조화를 통하여 장부의 병을 치료하는 이치이다.
여기에 한방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이 모든 것을 치료하는 전능한 방법은 아니다.
어디 까지나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것이 한방의 핵심이며 근간이지만 서양의학 과는 서열이 다른 것이다.
오직 하나의 우승
스포츠가 현대인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세상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이모저모로 도움이 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고 보는데 목표를 둔 지나친 스포츠 지상주의와 사행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염려되는 모습이다.
오직 하나 뿐인 승리의 짜릿한 기쁨을 만끽하려는 것이 스포츠 경쟁의 목표가 되지만 한방은 너와 나, 음(陰)과 양(陽)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동반 우승을 이루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바로 이것이 건강이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경우 지나친 경쟁에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스포츠를 바로 알고 제대로 즐겨야 하는 이유이다.

억울한 누명(FALSE CHARGE)

예나 지금이나 속고 속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정아로 시작된 일련의 가짜박사 사태는 줄줄이 계속되고 있으며 어디가 끝이 될런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태평양을 건너고 여러 주(州) 경계를 넘은 이곳에서는 더욱 정도가 심한것 같다.
세상에는 남을 속이고 피해를주는 나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것을 보게 된다.
서울 외곽도로에는 과속 단속카메라가 있어 벌칙금 고지서와 함께 자동차의 과속주행 위반 사진이 날라오게 된다.
한동안 외도하는 남녀들이 과속하다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불륜 상대가 찍힌 사진이 집으로 배달되어 가정 파탄을 일으키는 사회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즉 변명치 못할 불륜 현장의 물증을 통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외도를 저지르는 불륜커플이 아니고 업무상 동행하는 동반자 관계인 경우도 있을수 있으므로 민원 해결의 차원에서 촬영된 사진의 조수석 부분을 지우고 발송하는것으로 바뀌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필자가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할때 외식하는 경우가 많을수 밖에 없었는데 한번은 경기도 고양에서 목회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친구 목사내외와 점심식사를 위하여 행주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필자가 살던곳에서 경기도 북쪽을 가려면 행주대교를 지나는것이 편리하여 구행주대교때부터 신행주대교에 이르기까지 수도없이 오고가고 했던 곳이다.
하루는 부모님께서 필자앞으로 과속 벌칙금 스티커가 발부되었다고 알려주시며 집으로 오라는 전화가 있었다.
당시는 혼자사는 기러기 아빠였기에 주민등록을 부모님 주소로 옮겨 놓았었다.
점심약속으로 신행주대교를 건너가면서 과속위반하고 또다시 돌아오면서 과속위반하여 같은 날 2장의 벌칙금 고지서와 함께 사진도 2장 동봉되었다.
건너가면서 찍힌 한장에는 아무런 표시없이 혼자 운전하는 모습의 사진이었으며 두시간 정도 경과하여 돌아올때 찍힌 사진에는 조수석을 네모로 지운 사진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친구목사와 점심 먹으러 갈때의 사진이었고 점심 식사후 신행주대교를 건너 돌아올때의 사진이 틀림없었다.
필자 혼자의 나들이었고 시간과 장소도 정확하여 제삼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한장의 사진은 조수석에는 동승한 사람이 없는 운전자인 필자만 보이고 다른한장은 조수석을 보이지않게 지우고 운전자만을 보여주고 았으므로 분명 누군가 조수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지우고 보낸것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하였다.
설명을 하자면 불이나게 행주대교를 건너가서 누군가와 만나 한두시간 잘놀은 후 차에 태우고 신바람나게 오고가다 과속 위반 감시카메라에 찍혔던것이며 동승한 사람이 없는 경우는 별문제가 없으므로 그대로 보내주었고 조수석에 동승한 인물이 찍힌 사진은 그대로 공개할수가 없어 조수석을 지우고 보낸것이라는 심증(?)을 확인시켜주는 물증(?)이 되었다.
빼도 박도못할 불륜행각(?)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억울함의 극치
부모님께 공연한 근심거리(?)를 만들어 준것이 되었지만 만일 처갓집으로 같은 사진이 두장 날라가서 장모님께서 보셨다면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필자의 병원 관내모임에서 알고지내던 관할 파출소 소장에게 화풀이를 하는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사람을 골탕 먹이는 방법도 가지가지 이다.
물론 사진의 원본을 확인하면 간단한 일이 되겠지만 그 확인하는 과정동안의 불신과 천대의 죄인 취급은 면치 못할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일이 상호 신뢰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잠시나마 서로간의 불신의 가능성을 확인 시키는 계기가 되어 장차 큰 화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고의적이던 아니건 한장은 그대로 보내고 한장은 가리고 보내줌으로써 불륜 현장의 물증임을 암시해주는 누군가의 장난이 재앙의 단초가 될수도 있음을 안다면 모든일에 원칙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신뢰의 회복
오늘날의 과학 세상에는 증거를 매우 중요시 한다.
범죄 수사에도 심증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반드시 물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명백한 물증이 있더라도 판결이 뒤짚어 질수도있는것이 미국의 재판인것 같다.
서양 의학의 경우에도 진단을 위하여 여러가지 검사들을 시행하게 되며 그결과들을 종합하여 확진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주관적인 감(感)을 위주로하는 한의학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수가 없으므로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믿을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의 개념과 이론상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 논리가 부족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논리적인 한의학을 제대로 전달못하는 침술치료사들의 현대의학적인 지식의 부족이 더욱 큰 문제이다.
먼저 서양의학에서 보는 관점을 이야기하고난후 동양의학적인 관점과 치료법을 설명해줌으로써 저들의 이해를 구하는것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동문서답을 해서야 불신밖에 남는것이 없다.
지혜로운 한의학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무식한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환자는 물론 의사들도 믿고 맡겨볼 수있는 한의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짜에게는 억울함이 없는것이다.

귀경(COME BACK)

밤 늦게 LA 다녀 왔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더구나 내가 LA를 떠난 날자까지 기억하시면서 재회의 기쁨을 보여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다는데도 LA를 4년 반동안 찾아 뵙지 않은것이 매우 송구스러웠습니다
나는 대충 2004년 9월 쯤인가 하는 정도였는데
9월 17일이라고 잊지 않고 계셨다니 고맙고 감사 할 따름입니다
밤에 갔다가 밤에 오면서 바쁜 가운데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한것에 기다리시던 여러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나 않았나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번 LA 방문은 점점 축소되어가는 CA의 복지 환경에 의료 혜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세계의료 선교센타를 개원한 김인철목사님의 요청에 따라 다녀 왔습니다
초음파검사 자궁암검사 유방암검사 혈액검사를 비롯하여 내과 치과 산부인과 그리고 침술치료를 무료로 해주는 곳입니다
토요일 늦은 밤에는 도착하여 급성 맹장 수수받은 아이의 병원에 들렸고
주일날 예배후 환자 진료를 하였고 저녁에는 의료선교센타 개원예배가 있었습니다
미주 장로교 신학대학 전/현직 총장님을 비롯하여 여러목사님들이 오셔서 의료 선교센타의 앞날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외사촌 동생과 연로하신 외숙모님을 만나 뵈었고
지난주 시애틀에서 반갑게 만났던 오목사님과 장인되신 이광용장로님 내외분께서 한국에서 들어오셔서 오랬만에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Z에서 오신 어느 목사님 내외분이 계셨는데
피닉스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유목사님을 잘알고 계시다는것과
더구나 아들의 안경때문에 찾아간 LA에서 큰 안경점을 하시는 분이 이곳 시애틀에서 목회 하시다 한국에 나가신 최목사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인것에 새삼 세상이 좁다는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큰애가 그교회에서 유스그룹을 지도하고 있으니
사람들 관게가 얽히고 설히는것이 묘할 뿐입니다
바쁜 가운데 오랬만에 잠시 AZ에 계신 사모님과 짧게나마 통화를 하였고
떠나오는 비행기 시간에 쫓겨 잠시 친구인 황정연집사 내외를 만나 차 한잔 마시지 못하고 그야말로 다운타운에서 얼굴 한번 마주 보고 돌아 왔습니다
LA에 사는 오랜 친구에게는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고 왔습니다
요즘 개인적으로나 집안의 큰아들 문제로 어느 길이 가장 좋을런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료 선교센타 주변에는 히스페닉이 구름같이 많던데 건너편 히스페닉의 오순절 교회에서 들리는 음악이 듣기에 좋았습니다
여러 분들이 자주 LA에 오시라 하시는데 앞으로 얼마나 자주 가게 될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분들이 많이 있는것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시애틀로 오는 LA공항에서 이곳 워싱턴주 재무장관을 역임하셨던 손박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져 LA를 떠나오면서 그간 함께하신 분들께 전화를 못드린것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런지 그때까지 모두가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LA로(To LA)

잠시 LA를 다녀 올 예정입니다
의료 선교센터 개원식에 맞추어 참석하며 산부인과 초음파 진료를 해주기 위하여 갔다가 화요일 새벽에 돌아 올 예정입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심란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부름을 받아 다녀 올 수있는 것이 감사한 일인것 같습니다
어제는 LA와 VA에서 오신 목사님들을 만나 집에 온 후 잠시 시애틀 밤을 구경하였습니다
짧게는 5-6년 길게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알고 지내다 2년만에 다시 만나는 재회를 나누었습니다
바쁜 이민 생활 가운데 살아가며 전화로 나마 안부를 묻고 지내었지만 만남의 기회를 갖는것이 반갑기도 합니다
물론 LA에 계신 목사님은 내가 LA에 내려가면 잠시나마 다시 만날수가 있지만 VA에서 오신 목사님은 그리 쉬운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께서 주신 사명인 목회에 열심인것을 볼때 그자체가 많은 은혜가 됩니다
나 자신도 이곳에서의 반복된 생활속에 구태의 진부함이 있어 기도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하여 시간을 내기로 하였습니다.
나를 과연 어디로 인도하실런지는 알지 못하고 아직 정해진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는 때가 가까이 온것이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할 때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금번 LA 방문은 여러가지 면에서 기대가 됩니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의료선교센터 개원 예배와 환자 진료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신 후 LA에 계신 몇몇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도 드려야하고 몇가지 알아보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 여깁니다

반가운 해후(JOYFUL MEETING)

오늘 아침 메시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김철용목사님께서 남기신 음성 메시지입니다
선교회 모임에 참석하여 뱅쿠버에서 타코마로 내려 가고 있는 중인데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주일이라 교회 예배 후 다시 연락하기로 하였습니다
바쁜 일정상 타코마에서 뱅쿠버로 올라가는 중간에 잠시 만났습니다
20여년전 한국에서 본후 인도네시아로 떠난이후 중간에 한두번 보았고 LA에서 5년전 잠시 만난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이곳 시애틀에서 만나게되어 매우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지나는 길에 잠시 집에 들러 예배드리고 차한잔 마신후 뱅쿠버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가 봅니다
사모님이 동행하지는 못했는데 결혼을 앞두고 동부이촌동에서 처음 만난 아가씨가 지금은 12학년 올라가는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임신하고 배 부른 모습이 기억나기도 하고......
하여간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선교회 일로 여기 저기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 봅니다
바쁜 미국 생활 가운데 그래도 얼굴을 볼 수있는 만남이 있다는 것 또한 큰 기쁨입니다
언제 다시 만날것이라는 기약을 할 수는 없지만 오며가며 만날 수 있으며 좋은 일입니다
오랬만에 반가운 얼굴을 볼수가 있었던 해후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저녁 식사도 못 했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하며 사진 한장 남겼습니다

법정(COURT)

오늘 COURT에 갔다 왔습니다
지난 3월에 프리웨이에서 TICKET 받은 것 때문 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교회에 가는 길에 늘 경찰이 단속하던 지점을 알고 있기에
미리 알고 특히 조심해서 운전을 했고 절대 80MPH를 넘지 않았으며
옆에 빨리 달리던 차들이 있어 아내에게 "자들 딱지 떼겠다" 하면서 가는데
패트롤 카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내차 뒤에 붙기 시작하기에
'자가 왜 나에게 붙나' 하며 가니까 불을 반짝반짝 키데요
물론 내가 과속을 했다면 모를까 분명히 아니기에 한 2마일 가다가 세웠지요
새파란 신참 인 듯한 경찰에게 아무리 아니라 그래도 통하지 않으니
티켓 받고 변호사 통해서 어필 했는데
한번 연기가 되었고 시간이 난 김에 코트가 가까워 가서 보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경위서에 적은 내용 가운데 잘못된 것을 - 앞에서 쏜것인지 뒤에서 쏜것인지를 기록 안하고 오전인지 오후인지 기입 안한것 - 때문에 Dismiss 시켜 버렸습니다
변호사가 다 먹고 살게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덕분에 법정 구경도 하였지요
미국와서 별 것 다 보고 삽니다
그리고 아직 티켓이 하나더 남아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2월에 받은 티켓 때문에 Hearing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지난 5월에 날짜가 잡혔지만 바쁜 관계로 연기하여 8월 말로 날짜가 잡혔습니다
물론 이 케이스도 Dismiss되는 Case 입니다

이곳 미국에서 살면서 Policeman들의 당당함에 주눅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돈 만원 집어줘 해결되는 데가 아닙니다
대들기는 커녕 우겨도 통하지가 않으므로
티켓을 받으면서 "Thank you(?)"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Dismiss된 티켓을 받았을 때는 정말 열을 받았습니다
1355피트 떨어진 곳에서 Rader에 찍혔다고 했던데
내가 미리 알고 조심을 했고 내 옆의 차들이 빨리 달린것을 알았기에
경찰이 혼동을 했을 터인데
티켓을 받아 억울하였고 티켓 받느라 교회 예배에도 참석을 못하였습니다
하여간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city에서 수입이 없는지 딱지 떼는데 열심인 것을 많이 봅니다
곳곳에 단속 카메라를 설치한것을 봅니다
물론 매우 조심을 하고 다니며
한국에서에 비하면 아주 모범적으로 교통 법규를 지키며 운전합니다
<방어 운전>을 몸소 실천하는데
지난번 사고처럼 와서 들이 박는데는 어쩔 수가 없겠지요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009년 6월 2일 화요일

어느 한의사의 고백(CONFESSION)

아래글은 필자가 참여했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모임에 실린 어느 젊은 한의사가 한의학에 대한 애정과 갈등 그리고 무력감을 적은 일부의 내용이다
특히 근간에 한미 FTA에서 언급된 한의사 자격 상호 인정에 관한 제안을 어떻게 받아 들일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알고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였으면 한다
한미 FTA
지금 한의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외 직능이라고일컬어지던 한방의료영역에 FTA 적용 언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들이 FTA에서 한방은 자유롭다고 했던 이유는,한의사라는 직종 자체가 우리나라 고유의 직능이고미국에는 없는 직종(그 면허성과 실효성 등 각종 제반 조건에서)이라고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의 침사(Acupuncturist)와 한국의 한의사를 동등한 위치에서서로 개방 대상으로 본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개방인데 어떻게 늘 내 자리에 내가 지속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만,
미국의 침사는 한국의 한의사와는 다른 격입니다.
민간 자격증과 국가 면허증을 어떻게 같은 격에 두고 있는 것인지.이게 너무 슬프고 참담합니다.
뻔히 장교로 근무하던 이에게 다른 부대 하사관들과 말 트고 지내라고 하면그리고 업무를 서로 교류한다고 하면 이것은 옷 벗으라는 말일 뿐입니다.
한의학의 위치
간혹 저는 수련 과정과 단독 임상 과정을 통해 내가 한의사 된 것이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대 가서 정형외과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랬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의료계에서 한의사들의 위치가 참으로 애매하고아직도 한의학에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현대인들의 과학 개념에완전히 이해 할수 있는 증명을 할 수가 없는 내용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놀라운 치료 경험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도 늘 불만인 것은, 그 치료 과정의 구체적인 경과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적인 판단과 치료를 하기는 했지만,그것은 한의사들의 용어이고 그것을 현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마땅한 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의사들끼리도 서로 설명이나 이해가 다를 경우마저도 있습니다.
고민과 갈등
저 역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고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으로서,‘예’ 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오’ 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나면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나 역시 한의학의 이런 곤란한 문제에 대해 참으로 고민이 많은 사람이기에.
제가 군에 갔다와서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한의과대학에 가지마라.”
이 말을 하던 것이 거의 10년 되어 갑니다.
지난 봄에는, 저희 한의원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한 어머니께서 자기 아들이 의대를 갈까 한의대를 갈까 고민하다 한의대 갔다며 제게 자랑하는 것을 보고 “내 조카라면 빨리 휴학시키고 내년에 의대 보내겠다.” 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마저도 이런 말을 하는 것에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지만,그렇다고 해서 한의학이라는 게 이렇듯 홀대받을 그런 류는 결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16개 전문직종에 대한 미국의 개방 수락에 대해한의사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에게 맞설 우리나라 정부도 아니라 생각되므로 한의사들은, 늘 그래왔듯 또 투쟁에 나설 것입니다.
위기냐 기회냐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첨단 과학 세상인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한의사의 고민과 갈등을 충분히 이해하며 한의학의 나아갈 방향은 현대의학의 기초위에 새롭고 튼튼하게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는 바이다.
여러 환자를 보다보면 들리는 이야기가 많다. 침술치료사 자격도 없이 불법적으로 대침, 장침을 마구찌르는 경우도 보며 때로는 치료한답시고 벌침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는 대단히 유명한 한의사 행세하며 무면허 진료하고 비싼값 받고 한약을 경동시장에서 주문하여 배달시키는 가당치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정통의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국에서는 먼저 침술치료사로서 할수있는 일과 해서는 않되는것을 구분하여야 한다. 그리고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때 치료하는자나 치료받는자가 공히 이해할수 있는 객관적인 설명을 할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현대 의학적 지식을 기본으로 하여야 하는것이다.
모르고서는 되는일이 아니다.
대안의학
한의학의 특성상 객관적인 증거를 보여줄수 없는것이 문제이지만 환자분들에게는 지금까지 서양 의학적으로 확인된 진단과 치료의 모든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서양의학적인 치료방법 외에 한방적인 치료법을 대안으로 제시하여야 하는것이 한방의 옳은 길이다.
그것이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얻는길이며 상호자격 인정을 받기 위한 시작이 되는것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침술치료사나 한의사 호칭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환자 치료하는 능력을 함양토록 할것이다.

어느 송년사(CLOSING MENT)

이년(年)이 가고 저년(年)이 오고
이제 이달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저년이 옵니다.
오는년을 맞이함에있어 새년과 함께 보낼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와함께 가는년을 고맙게 여기고 깨끗이 정리해야 할 마음의 준비도 또한 중요합니다.
새년이 오면 더 잘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짐합니다.
지난 년들은 돌이켜 보면 여러가지 종류의 년들이 있었습니다.
꿈과 기대에 미친년도 있었고, 어떤년은 몹시 실망스러웠고, 또 어떤년은 그럭저럭 감당할 만 했지만..
뜻밖에도 어떤년은 무척 재미있고 아기자기 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지난 년들이라고 모두 나쁘기만 했겠습니까?
나름대로 각자 뜻깊고 기쁨을 안겨준 년들이었지요.
자, 이달이 지나면 앞으로 찾아들 새년 !
그년은 과연 어떤년일지 자못 호기심과 기대가 큽니다.
사실 헌년이든 새년이든 모두 이세상이 주는 선물입니다.
몸과 마음을 단장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년을 맞아 기쁘고 즐겁게 살아보렵니다.
보내는 아쉬움
다같은 하루 24시간이고 일년 365일 이지만 매년 12월은 늘 새로운 감회에 젖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한해이고 한달이고 한날이지만 12월인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는것은 지난 시간의 아쉬움들이 많이 남게 되는 것이다.
수없이 묻어나는 세월의 삶이 회한으로 남으며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돌이켜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일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그때를 떠올리게 할때마다 가벼운 탄식의 아쉬움이 배어나는 한(恨)스러움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금 돌이킬수가 없는 일이기에 두고두고 미련으로 남기 때문이다.
아무리 후회를 한들 이제는 어쩔수 없는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아쉬움이 남는 일이라 하여도 이미 흘러가버린 옛시간의 흔적이 되었으므로 지나가는것 잡을수없고 다가오는것 막을수가 없는 것이다.
가는년잡지말고 오는년막지말자
어느 유행가 가사에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속에 우리도 변했구려’라는 구절이 있다.
인생사 생(生),사(死),화(禍),복(福)의 모든것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마음가짐에 따라 노(怒),희(喜),사(思),우(憂),비(悲),공(恐),경(驚)의 칠정(七情)으로 들쑥날쑥 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우리몸의 병으로 나타나게 된다.
건강함과 병듦속에서 새끼줄 꼬아나가듯 엮어져 가는 인생은 대자연과 더불어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이라는 오행(五行) 순환의 섭리 가운데 놓이게 된다.
즉 자연과 인간의 삶 자체가 철학이요 종교가 되는것으로 과학 뿐아니라 의학도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한 부류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수없이 많은 일상들 속에서 지지고 볶이는 것이다.
길 / 진리/ 생명
넓고 넓은 세상속에 수없이 놓여진 길들 가운데 어느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역정이 달라지며 인생의 여정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옳은길과 진리의 길을 찾아야 할것이며 제대로 골라야 할것이다.
건강한 삶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순간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
언제나 12월 마지막 달에는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며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감회에 젖게 된다.
즉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臧) 오행(五行)의 흐름 가운데 다음해의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면서 이제는 한해의 갈무리를 해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듀
돌아보면 그모든것이 웃어넘길수 있었던 일이건만 그때는 왜 그리도 서로를 힘들게 했던것인지 모를 일이다.
떠나가는 해를 아쉬워하지 말고 새로 맞이하는 새해를 위한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 한해한해의 시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연속으로 이어져 나가게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이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보람된 한해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것이다.
2007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나의 인생가운데 “2007년이야말로 참으로 좋았더라”고 기억되는 한해로 마무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언젠가 2007년을 회상하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배어나고 눈가에 잔잔한 기쁨이 넘쳐나는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그리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는해를 보내며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자.

어느 환자의 치료(THERAPY FOR PATIENT)

이곳에서 환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경우 양방과 한방을 늘 비교하면서 치료하는데 치료의 우선 순위와 제대로 알고 치료를 하는 의학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한방은 정통의학이 아니다.
따라서 대안 의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통사고
2년전 교통 사고를 당하신 작은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시다.
좌회전을 할 때 달려오는 차에 받혀 에어백이 터지면서 우측 어깨와 안면부를 심하게 다치셨다.
차는 폐차 했다고 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하여 어느 곳에서 한방 치료를 받았는데 첫날 흉내 내듯 침(針) 한번만 놓고는 계속 마사지와 카이로프락틱 치료만 해 주었다고 하였다.
환자는 어깨 통증이 계속되었고 어깨 사용이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내다 일년이 넘은 후 필자의 한방병원을 찾게 되었다.
처음 진찰시 어깨를 돌릴 때 ‘우두득’ 소리가 나며 매우 고통을 호소 하였다.
사고를 당했으니 치료를 받았어도 이만큼 아픈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신 순박하신 사모님이었기에 고통을 참고 견디며 지내신 것이었다.
즉 ‘장애인’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억울한 장애인
침 한방에 효과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환자의 손상 상태에 관한 의학적 지식이 모자라 치료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의 어깨 통증과 견관절의 운동이 어려운 것은 척수 신경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척추 교정으로 나아지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뇌신경과 척수신경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다.
말단까지 이르는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영향으로 사지 관절을 움직이며 온몸의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척추 뼈와 척수 신경의 이상에 의한 어깨 통증인 경우 반드시 척추 신경의사에 의한 근본적인 치료를 하여야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에어백이 터져 그 폭발력에 의하여 어깨를 다친 사모님의 경우는 아무리 척추를 교정해도 어깨의 국소적인 통증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수도 꼭지가 고장 났는데 아무리 보일러를 탓하고 보일러를 교환하더라도 문제가 해결 되지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지의 소치
어리석은 침술사는 이러한 환자를 첫날 흉내 내듯 침 한번만 찔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방 치료는 안하고 계속 마사지와 카이로 프락틱 치료만 시켰다고 하였다.
무지한 침술사 탓으로 애매한 환자만 억울하게 오랫동안 고생을 하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한의학이 대안의학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한방의 능력을 입증해 주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침술사들에게 있다.
그냥 얼버무려 침을 놓는다거나 교통사고 환자들에게 침으로 치료를 하야야 함에도불구하고 환자분들이 침을 맞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여 마사지를 권하며 환자를 유치하려는 의식을 가지고서는 한의학의 장래를 보장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환자의 불편한 고통을 치료하는 한방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침에 찔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도 침 치료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침으로 효과를 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보고 느끼 듯 흉내 내듯이 침 치료를 하는 침술사는 불신의 대상이 된다.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치료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교통 사고를 당했던 환자는 필자에게 침 치료를 받으며 어깨의 통증이 사라짐과 함께 그 외에 손 발이 따뜻해 지는 부수적인 치료의 효과도 있었다.
어깨의 고통을 안고 제대로 어깨를 쓰지 못하며 영원히 장애인으로 살아 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치유가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의사 잘 못 만나 죽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의사를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광고의 허와 실
의사에게는 환자 치료가 우선이다.
환자의 고통과 아픔은 결코 흥정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질병의 치료에 거짓이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에어백의 폭발력에 어깨를 다친 환자를 침 한번 찔러 흉내 내고 마사지와 카이로플락틱을 시키는 한방 침술사의 무지함과 영특함(?)에 놀랄 따름이다.
진정으로 환자의 치료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방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간다.
마사지 치료가 좋을 때가 있고 척추 신경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침에 찔리는 고통이 있지만 침을 찌르는 것이 환자에게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올바른 치료로 효과를 보도록 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일이며 금전적 손실을 막아주는 일이 된다.
절반의 성공
종종 연재되는 한방 칼럼을 보면 남의 것 그대로 베껴다 놓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맞는다.
모르면서 나서기에 불신의 화살을 맞는 것이다.
한방에는 무한한 능력의 잠재력이 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끊임없이 놀라는 치유의 효과이다.
과연 어디까지 낳을는지 측량 못 할 일이다.
교통 사고 후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안고 살아가도록 만든 것은 통증의 유발 원인을 모르고 치료의 과정을 모르는 의학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환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노력 없이 대충 몇 번 치료하고 넘기는 교통 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 치료는 불신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한방 자체의 효험이 문제가 아니라 한방을 하는 침술사들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 우선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는 순리가 있으며 한방에서는 이러한 순리를 매우 중요시 한다.
오른 쪽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왼 쪽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알아야 할 것이다.
오른 쪽 왼 쪽을 잘 못 선택하여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思母(BELOVED MOTHER)

저의 모친되신 안혜순권사님께서 금일 새벽 4시(한국시간 지난 밤 12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으셨기에 속히 가시게 되기를 원하셨지만 가시는 길이 쉽지만은 않으셨습니다
"천국가는 길이 이렇게 힘이 든 구나" 하시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틀을 고통 가운데 보내셨지만 그래도 마지막을 평온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천국에서 만나게 될것을 믿으며 보내드렸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더구나 63년을 해로하시며 마지막 병 수발을 드시며 두분이 살아온 한 평생을 돌아보시던 아버님께서 어머니를 먼저 보내게 된것에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기뻐해야 된다고 하시면서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신다고 많은 눈물을 보이 십니다.
어머니께서 영혼은 하나님 나라로 가시며 남기신 육신의 몸이 다 식으 실 때까지 7 시간 넘도록 병실에서 어루만지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십자가를 붙드신 손이 돌아가신 후 펴지지가 않으셨는데 나와 아내가 잠시 병원을 다녀 올 동안 사후 경직으로 굳어져 가는 몸이었는데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시며 손톱을 다 딱아드리시고 손가락과 손목 그리고 팔꿈치를 부드럽게 펴 드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버님이 어머니의 남겨진 육신을 바라 보며 마음 속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덮은 하얀 시트가 안개의 흔들림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에어콘이나 히터도 없고 창문이 없는 방인데 아지랭이 같은 잔잔한 흔들림을 감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찬송과 기도 말씀으로 예배를 드려 주었고 전화도 많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몸이 식은 후 병실에 어머니를 남기고 차마 떨어 뜨리기 힘든 발걸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돌아서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아침을 걸으셨기에 점심을 드시고 집에 모셔다 드렸 습니다 병원에 돌아와 정리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밖에서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려니 내 마음인 양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것 같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환자를 보지만 웬지 허전하기만 합니다
어머니가 계시던 절반이 비었지만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도 빈 공간은 절반이 넘는것 같습니다
장례 일정은 이곳 시간 토요일 오전 9시30분에 정했기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모자란 아들이 어머니를 행한 애끓는 마음으로 열흘 밤 병실을 지켜드렸지만 지치고 힘듬 보다는 아쉬움과 회한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병으로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에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해 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기쁘고 즐거워 하시는 어머니를 그려 봅니다
이땅에서 많은 육체의 고난을 당하신 어머니셨기에 하늘 나라에서 갑절의 위로와 상급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이땅을 떠나가신지 열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지고 어머니의 음성이 듣고 싶어 집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어머니를 뵈올 수 있는 날을 믿으며 기도로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만남을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어머니를 바라다 보며 (Oh My Mam)

사람이 태어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 했지만
편안한 가운데 가는것이 바램이리라
고통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 보면서 아들로서 느끼는 괴로움이 있다
세상의 의학을 배운 아들로서 아무것도 해 드릴 수없다는 자괴감이 있는 것이다
몰핀에 의지하여 통증을 완하시키고 있지만 중간 중간 닥치는 고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가 마지막 고비 인것 같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덧입고 이겨 나가기를 기도 드린다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 중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를 소원하며 고통을 견디어 내길 바라는 것이다
"왜 이리도 천국 가는 길이 힘드나" 하시는 어머니의 절규는 너무도 마음이 아픈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돌리려고 했었던 죄를 회개 한다
그토록 천국을 그리며 좋다고 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으시길 바래어 붙들고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불순종의 죄악된 모습인 것 같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 아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품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기쁨과 찬송으로 어머니를 돌려 보내드리기를 원 합니다
언제가 될런지 모르나 고통의 길을 속히 벗어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천국을 그려 봅니다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어머니께서 고통의 멍에를 벗게 되기를 기도 합니다
평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며(RETURN TO ROUTINE)

학교 다닐때 교양과목 영어 시간에 배운 글이 생각납니다
<Show must go on> 입니다
이세상을 살다가 떠나가도 이세상은 계속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어찌보면 인생 자체가 아름답고도 슬픈 쇼인것 같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 추모 영상을 보면서 인생이 다큐멘터리이지만 生老病死의 역사와 노(怒), 희(喜), 사(思), 우(憂), 비(悲), 공(恐), 경(驚)의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라 여겨 집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극본 각색 감독 제작하에 이루어 진것임을 깨달으며 감격과 감사를 드릴 따름 입니다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떠나가셨기에 아침이면 일어나 출근하는 일상의 일과로 돌아 왔습니다.
새벽에 한국에 전화를 드렸지만 아침시간에 쫓기다 보면 전화를 드릴 수가 없겠지요
오늘 아침에는 눈이 약간 내렸습니다
덕분에 여유 시간이 있어 친구 동생과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은 친구의 여동생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위로와 권면과 소망을 함께 했읍니다
옛글에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 는 구절처럼 부모님이 다니시던 길이었는데 다니시던 분들은 계시지가 않는군요
더구나 하얀 눈이 내린 모습을 보니 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내일 장례식이 또 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이곳에 처음에 왔을때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며 밤도 줍고 하셨던 권사님이십니다시애틀 다운타운과 근처 파크에 자주 갔던 이야기를 두고 두고 하셨던 것을 볼때 그때가 즐거우셨던것 같습니다
권사님 아들인 김장로님 내외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든것이 Show Must Go On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들 집착이 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하셨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日常이 그런가 봅니다
"낮에 해처럼 밤에 달처럼 그렇게 살수 없을까?"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 납니다
이제 부터는 좀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려 노력해야 겠습니다
진정한 그날의 소망을 가지고 소망을 전하며 살아 가고 싶습니다

어느 죽음(DEATH)

모든 사람은 이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 가는데 주어진 생명의 길고 짧은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살아있는것이 미운 사람’도 있고‘돌아가는것이 안타까운 사람’도 있음을 본다.

필자가 의과대학에 다닐때 전국의 의대, 치대, 한의대 기독 학생모임이 만들어졌다.
당시 70년대 말에는 전국 의(醫), 치(齒), 한(韓) 연합 수련회에 60여명 정도가 참석을 하였는데 약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삼천명이 모이는 대형집회가 되었다.
한의사 문충모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 의료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대학에서는 교수들이고 병원장들로서 사회적으로 맡은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운데 언제나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으니 그이름 석자가 문충모이다.
당시 한의과 대학생으로 기타치며 찬양을 인도하였는데 복음성가도 작곡했던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어찌보면 문충모와의 만남과 관계가 오늘날 필자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연배가 필자보다 서너살 아래이기에 개인적으로는 필자를 형으로 불러주었지만 몸이 아픈 가운데도 바쁜 한의사 생활을 하면서 장신대 신학 공부를 마치고 안수를 받으신 목사님이었다.

가장 영향력있는 기독의료단체인 한국 누가회를 이끈 이시대의 지도자로서 한때는 한의과 대학의 교수로 후진양성에 이바지하였고 한의원의 원장으로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하며 이땅에 기독 의료 문화가 올바로 서기를 바라며 헌신하던 리더였다.

이시대 기독 의료인들이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도록 도전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모범을 보이셨으나 간경화와 간암으로 인한 상부위장관 출혈 뿐아니라 뇌출혈로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아들의 간을 부분이식 받으면서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애석하게도 지난 3월 마지막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늘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존재였으나 제대로 어려움을 나누지 못하고 함께 울어주지도 못한것이 매우 한스럽다.
형제의 한의원이 필자가 살았던 목동아파트와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몇번 찾아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필자가 미국으로 들어오기전 기러기 아빠의 마지막 어려움을 겪을때 자신의 집에서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필자를 불러주어 교제를 나눈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에도 몸이 않좋아 얼굴은 검었고 눈은 휑하니 들어가 있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였던 것이다.
문충모 목사
2002년도 필자가 떠나오기 직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동네 두부 전문 음식점에서 축하모임을 가졌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에 도착하여 몇차례 이메일 왕래가 있었으나 바쁜 가운데 두절이 되었다.
얼마전 이곳에서 발행되는‘좋은신문’에 편집 자문위원으로 문충모 이름 석자가 있음을 보고 얼마나 반갑고 기뻣는지 모른다.
언젠가 문충모 목사가‘형님도 간병으로 돌아가신것’을 이야기 해준 기억이 난다.
우리들이 죽는다는것은 정한 이치로 누구도 피해갈수가 없는 일이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있기에 문목사의 얼굴에서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두아들과 아내를 향한 작은 바램을 느낄수가 있었으나 그가운데서도 능히 사망권세를 이겨내는 감사와 찬양이 늘 함께하는 부활의 가정임에 분명했다.

필자가 지금도 찬양을 인도하던 문충모 학생을 기억해내는것은 당시 카메라 사진을 찍었던 관계로 기타를 열심히 치며 머리숱이 많지는 않았지만 찰랑대던 머리카락의 문충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랜세월 병으로 고통을 받은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의 편안한 안식이 더나은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해온일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해주어야 할일이 많음을 볼때 너무나도 아쉽고 안타까움을 금할수가 없는것이다.
더구나 남겨진 사랑스런 아내와 두아들을 비롯한 이땅의 수많은 누가들 그리고 교회와 병원을 생각할때 이모든것을 남겨두고 떠난다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손가락이 깨물려도 안스러운 아들이 배를 가르고 간을 잘라 아버지께 주었다는데 그아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살아 아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부자의 정을 나누며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아끼지않은 아들에게 육신의 생명뿐아니라 자손 대대로의 영적 축복을 해주어야 할터인데 이리도 빨리 돌아가다니 너무도 슬픈일이 되고 말았다.
한국 누가회 회장 문충모
그리고 지천명의 나이에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주님의 종으로 새롭게 쓰임을 받아야 하며 기독 의료인들을 보듬고 진정한 의사 누가들로 양육시켜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다니 한국 기독의료계의 커다란 슬픔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부터 필자와 한의학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며 새로운 현대 한의학을 재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일찍 가버린것이 애석할 뿐이다.

슬하의 두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으니 필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시절의 문충모와 한세대가 흐른것이 엊그제 같다.
지난해 후배 선교사부인이 암으로 죽어갈때 병상에서 온몸으로 통곡을 하였다고 했다.
아마도 문충모목사의 기도와 찬양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누가회에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갔다고 하니 육신은 이땅에서 수없이 고통을 당했으나 천국으로 입성하는 영혼은 기쁨과 영광스런 찬양의 행진이었을 것이다.

이땅의 누가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돌아보면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고(故) 문충모 목사를 그려본다.

어느 만남(A MEETING)

세상살이는 수없이 많은 만남들로 이어져 간다.
사람 인(人) 자(字)가 붙거나 기대어 있는 것은 홀로 서는 것 보다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이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의 만남에 의하여 시작이 되는 것이며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부모(父母)와 자식(子息)의 관계가 형성되고 형제(兄第), 자매(姉妹)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
성장해 가면서 사회 생활을 해나갈 때 온갖 집단들과의 연결이 종횡(縱橫)으로 엮어지게 된다.
이러한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보람과 기쁨을 맛보는 아름답고도 소중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간혹 잘못된 만남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동안 평생 고통과 슬픔의 삶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八字)가 달라진다고 한다.
부모 자식으로 태어나는 숙명적인 관계도 그렇고 남녀 사이의 결혼의 경우에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예정과 섭리
지난주 이곳 작은 개척교회인 선한목자 교회에서 집회가 있었다.
강사되신 목사님은 공군 사관학교를 나오시고 신학을 공부하여 공군 군종감을 지내신 장영출 목사님 이셨다.
필자는 지금부터 꼭 삼십년전 어느 집회에서 목사님을 뵌적이 있었다.
공군 장교복을 입으시고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며 특히 몸동작을 크게 하시던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이곳 저곳 수없이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오신 목사님께로서는 삼십년 전의 ‘어느 청년’을 기억하실 리 만무하다.
필자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이영무목사와의 관계로 체육인교회에 출석을 하였다.
당시 축구선수였던 차범근감독이 예수를 믿기 시작 했던 시기로 차범근 선수가 공군팀에 소속되어 공군 군종감이셨던 장영출목사님과 연결이 된 것 같았다.
한세대를 넘어서
장목사님을 만나면서 지나온 30년을 회상해 보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여 당시 추진중인 할렐루야 축구단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곳 저곳 복음 전도하러 많이 다닌 기억이 난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바쁜 가운데 이영무, 박민재, 황정연 등 몇몇 선수들과 개인적인 관계 만을 가지게 되었다.
종종 선수들 부인들 치료하면서 몇몇 아이를 받아 주었을 뿐이다.
30년이 지나 한의학을 공부하여 몇해전 할렐루야 축구단이 LA에 와서 시합 할 때 선수들 침치료를 하였으니 세월의 흐름이 돌고 도는 것 같다.
더구나 이영무목사님의 큰딸이 결혼하여 산부인과와 한방의 궁금한점을 국제전화로 물어 올때는 삼십년 한세대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삼십년전 장영출목사님 집회에 참석하였던 시절의 청년 아들이 내곁에 있으니 이또한 한세대의 흐름인 것이다.
인생유전
미국 생활의 차이점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의외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연치 않게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에 놀랄 때가 있다.
지난해에는 옛 주일학교 학생이 농아목사님 사모가 되어 딸들을 데리고 필자를 찾아왔었다.
대전에서 농아목회에 충성을 다하는 훌륭한 목사님 사모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도 삼십년이 넘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필자의 산부인과 병원 근처에 살던 환자들도 우연치 않게 많이 만난다.
부모님께서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 동네 우편배달부로 계셨던 분을 만나신 적이 있었다.
참으로 좁은 세상이고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죄짓고 벗어 날수가 없는 일이며 속이고 살아 갈수가 없는 세상이다.
오직 믿음
이번 집회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새롭게 체험하였다.
말씀을 전해주신 장목사님께 감사하며 이러한 집회를 마련하신 이목사님께 감사하고 더구나 미국 생활 가운데 갈(渴)한 나의 영혼에 복음의 생수를 부어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다시금 나 같은 자를 서양의학 의사(醫師)를 만드시고 또한 한의학까지 공부하게 하시며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는 어쩌다 이루어지는 우연한 일은 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믿음’과 ‘사랑’의 문제인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만남으로써 그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다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의사 잘 만나는 것도 복이고 환자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오직 예수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 진정한 우리의 복(福)인 것이다.

2009년 5월 1일 금요일

양귀비 수술(PERINEOPLASTY)

미인의 기준이 세월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천하 절색 미인의 대명사이다.
특히 양귀비의 아름다운 미모는 시아버지인 당나라 현종으로 하여금 며느리를 빼앗는 패륜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양귀비는 아름다운 자태 뿐아니라 섹스에도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에 섹스의 화신으로 여겨 아직도 뭇 남성들로 하여금 입이 벌어지고 침을 흘리게 만드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귀비는 사촌오빠인 양국충을 통하여 섹스에 입문 한 후 첫남편인 수왕에게 실습하고 시아버지인 현종을 만나 기교의 절정을 이루었다.
양귀비와 이쁜이
근년에 처녀막 재생수술과 함께 재혼 여성들의 혼수 필수품(?)이라고 불리는 ‘양귀비수술’이 유행하고 있음을 본다.
흔히‘이쁜이 수술’과 ‘양귀비수술’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쁜이 수술’은 ‘질 축소술’인 반면 ‘양귀비 수술’은 ‘지스팟 성형술’이라 부른다.
이쁜이 수술은 자궁이나 질의 탈증 및 요실금과 같은 증상의 치료 목적이나 자궁적출시 부차적으로 질의 전벽과 후벽을 절개하고 봉합해 주는 수술 방식인데 앞뒤 질벽의 축소와 함께 회음부의 여러 괄약근의 수축력을 복원시켜 준다.
따라서 수술후 증상의 호전과 함께 이완된 질벽의 수축력이 강화됨에 따라 성관계 시 질내 압박감이나 마찰력의 증가로 부부 사이 성적 만족도의 회복을 부수적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 양귀비 수술은 오직 여성의 성적 극치감을 목적으로 하는 시술 방법이다.
창조의 신비
해부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여성의 질(膣)은 외음부에 해당하는 대음순, 소음순에 의하여 둘러쌓여 있으며 내부 생식기로 들어가는 동굴의 입구와 같다.
대개 7-8cm 정도 깊이의 주름잡힌 근육층이며 질의 입구는 흔히 ‘처녀막’이라 지칭하는 조직이 커튼처럼 위치하고 있다.
질(膣)은 생명의 시작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매우 신비스런 구조와 기능을 갖는다.
성관계시 남성의 정자를 넣어주는 곳이며 출산시 아기가 나오는 산도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흔히 처녀막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성관계 유무 및 과소에 의하여 질의 모양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
‘膣’이란 글자는‘새살 돋을 질’로 필자의 소견으로는 벨벳보다 더 보들보들 하면서 나일론보다 더 질긴 것으로 생각되기에 그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에 감탄 할 따름이다.
오늘날은 외모를 중요시하는 세상이므로 무엇이든 뜯어고치기를 좋아하며 성(性) 개방 풍조와 함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면서 섹스에 관한 관심이 많음을 본다.
물론 출산 여부에 따라 여성의 질과 회음부위가 손상을 받게 되지만 대체적으로 경산부들의 경우 성감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질성형 수술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원초적 본능을 찾아서
양귀비 수술이란 질내 방광요도 이행부 근처에 위치하는 발기조직인 지스팟을 자가진피나 지방 또는 소프트 실리콘이나 필러를 이용하여 도드라지게 해줌으로써 성관계시 성기 사이의 접촉이 집중되도록 하여 여성이 느끼는 성적자극의 강도를 더해주려는 개념으로 시도되는 수술의 방법이다.
아직 지스팟에 대한 이론의 여지가 많으나 필자는 여성의 지스팟과 에피센터를 특정 조직으로 간주하지 않고 남성의 귀두부위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성교시 삽입에 의한 질내 귀두의 접촉 자극 부위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인체의 들어가고 나온 모든 해부학적 구조는 나름대로의 생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쁜이 수술을 원하는 여성들 가운데 남편의 물건을 묘사하면서 맞춤수술을 원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섹스란 성기 사이의 교접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주문대로 재단 되는 맞춤 물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신비와 조화
성(性)은 생명을 담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별된 선물이다.
전신을 흐르는 전류는 남자와 여자라는 음과 양이 만날 때 구석구석의 불을 밝히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온몸이 성감대이므로 온몸으로 느끼고 감사하며 즐겨야 하는 음양의 조화 인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생명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환희의 기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음양 합일이며 오르가즘이다.
잘못된 오르가름의 추구는 과욕에 불과한 것이며 과욕은 죄악으로 연결 된다.
수많은 여성의 질을 보아오면서 성적 특성의 다양성과 그 오묘한 창조의 조화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질(膣) 속에 담긴 자신만의 보배로운 삶의 궤적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꼭 양귀비의 것만이 최고가 아니다.
당대 최고의 소문난 명기(?)를 지녔던 양귀비는 나이 삼십의 피난길에 객사하여 파란만장 했던 삶의 질고를 마감 하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삶의 의미를 돌아본다(MEANING OF LIFE)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하나하나 돌아보고 떠오르는것 마다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가지며 각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때로는 너무나도 안타까움에 애끓는 신음 소리를 토하게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며 기뻐하고 계실 모습을 생각하면서 감사 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연로하신 분을 보면서 좀더 사셔서 함께 지냈으면 좋았을것이란 생각이 간절해 지는것은 어쩔수가 없는 가 보다
어제는 병원 전화기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신 분이 있었다
매우 힘들어 하시는 목소리의 어느 할머니 음성이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몸이 많이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런지 몰라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처음 대하는 분이셨지만 환자의 상태가 그려지는것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자세히 말씀드려 주었다
힘들어 하시면서도 몇번이나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에 오히려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어머니께 다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것과어떻게든 더 해드리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것을 보면서 내가 해드릴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했던 최귀동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에게는 실로 많은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는 것이 힘이든 세상이기에
너무도 힘든 것이 많이 있지만

삶의 의미를 돌이켜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리라 생각하며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남긴 뜻을 새기는 것이 되리라 여긴다

경훈이는 방학을 맞아 LA에 갔고
경민이는 잠시 교회 친구들과 캐나다 국경 근처로 캠핑을 갔다

어제는 아내와 둘이 잠시 마켙에 들렀다가 서점에서 몇권의 책을 샀다
새로운 다짐으로 Renewal하기로 했다

호사다마라 할까
오늘 내원한 거구의 백인 환자인 커클랜드 대학 총장이 화장실 가려다 겹질리면서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병원 자체의 보험이 커버를 하지만 웬지 찜찜하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을 계속 할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시작 할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는 많은것이 남아 있고 요긴하게 쓰여 질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부쩍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 진다
돌아가신지 한달 밖에 안되었는데 어머니의 음성이 듣고 싶으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아내가 "살아 계실때 좀 더 잘해드리지" 하던데
잘 못했던 일만 떠오르니 더욱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어찌하다 어머니의 영상 비디오하나 제대로 못만들어 놓은것이 후회가 된다
바쁘게 살다보니 그랬다고 하지만 정성이 모자란 탓이었던 것 같다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탓이다

몹쓸 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셨고
그런 병으로 오래 사시는것은 더욱 힘이 드시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일찍 천국으로 부르셨다고 생각되지만
남아있는 아들의 못다 한 아쉬움은 크다 하겠다

서울로 가신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면
받으실 때마다 늘 울고 계시는가 보다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대화하고 기도하신다 하시는데
얼마나 마음에 애통함이 남아 있을까 그 심정을 헤아릴 만 하다

서로 오손도손하며 이 세상의 한평생을 살아도 보자른것 같은데
부모 부부 자녀 사이에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는지 아쉬움이 많이 있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본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가 않은 삶이다

나에게 있는것으로 베푸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보리라 다짐한다

이다음 하늘 나라에서 모두 함께 만날때를 기대하면서........

부활절(HAPPY EASTER)

요즘 꽃집에 가면 백합 꽃이 많습니다

돌아오는 주일이 부활 주일이며
백합 꽃이 부활 주일을 의미하는 꽃이기 때문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꽃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윽한 백합 꽃향기는 좋아합니다
예전 어렸을때 집마당에 심겨져 해마다 흰 꽃과 향내를 풍기던 백합이 생각 납니다
특별히 꽃과 나무를 좋아하셨던 아버님 덕에 마당늠 잔디로 되어있고
자연석으로 둘러진 화단에는 나무들과 꽃이 많았습니다
당시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있었는데
커다란 벚꽃 나무가 마당에 있어 벚꽃 놀이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시 때때로 진달래 개나리 철쭉 동백 나리 목련 백합 튜우립 장미 난초 국화를 비롯하여 봉숭아 채송아 맨드라미 해바라기 등 많은 꽃들이 있었지요
기억으로는 양귀비 꽃도 구석에 몇그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꽃을 좋아하시고 잘가꾸시는 아버님 덕에 커클랜드집 마당에 개나리 철쭉 동백 장미나무를 많이 심었고 튜립 백합을 많이 심었습니다
해마다 돋아나 꽃 피우는 아름다운 화초들을 보는것이 부모님들의 낙이었습니다
커클랜드집을 전세 준지 일년이 되었는데 벌써 정원이 황폐해 진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나무들이 죽고 잔디에 잡초가 무성해졌음을 봅니다
더구나 정원을 가꾸시며 소일하시던 부모님들께서 모두 떠나시고나니 더욱 황량해지며 슬퍼지는 마음 금 할 길이 없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튜우립과 백합들이 돋아나 꽃을 피우는 모습이 아름답고 부활 주일이 끝나면 팔고 남은 백합 화분들을 싸게 팔기 때문에 잔뜩 사다가 여기저기 심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 만으로도 좋았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시고 덩그러니 황폐해진 집 마당 모습을 보게되니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 달로 전세를 나가겠다고 하니 남겨진 집의 모습은 을씨년 스럽기만 합니다
이런한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난해 커클랜드 집에 계실때만 해도 건강하셨고 1-2 마일 한시간씩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너무도 보고싶어 집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더욱 크기만 합니다
매주 주일 예배 후 집에 오는 길에 어머니 묘소에 들립니다
묘비는 아직 안되었지만 어머니께서 묻히신 묘택을 바라볼때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낍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고 보고싶어도 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는 백합꽃을 사가지고 묘소에 가고자 합니다
부활절 상징의 꽃이 백합 꽃인 관계로 어머니를 다시 뵈올수 있게되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어머니 묘소에 백합꽃을 꽂아 두고 싶습니다
함께 커클랜드 집마당을 가꾸시며 기뻐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
하얀 백합 꽃을 어머니께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