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어느 마켓에서 “엄마””엄마”를 부르는 두살 정도되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씩씩하고 우렁차게 부르는 소리가 대장부 같았으며 장을 보고 있는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자식이란 무엇인가
마침 필자가 하나 한방병원 원장임을 알아본 아기의 엄마는 아들로 하여금 필자에게 인사를 시켰는데 꾸벅 절을 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사연인즉 불임으로 필자의 병원에 내원하여 침과 한약으로 치료를 받고 수월하게 임신되어 출산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두살박이가 복잡한 사연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개구쟁이 아들을 필자에게 인사시키는 엄마의 감사함과 흐뭇한 기쁨이 느껴졌다.
필자 역시 고마워하는 엄마와 “안녕하세요” 하는 꼬마의 절을 받으면서 의사로서의 보람과 좋은 결과가 있었음에 감사 할 따름이었다.
지금은 건강하게 뛰노는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함과 함께 지극한 모성애(母性愛)가 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불임의 여러가지 사연들
잠시 아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필자에게 왔을때를 생각해 보았다.
바쁜 생활 중에도 에버렛에서 일과 끝내고 트래픽이 심해도 열심히 내원하였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필자의 지시를 잘 따라주어 첫번째 생리 주기로 임신에 성공하여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지금은 두살박이 아들로 자라 마켓을 누비는 개구쟁이가 되어 때로는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지난 세월에 대한 엄마의 기쁨과 자랑이 되었다.
엄마의 얼굴과 음성에서 모자(母子)간에 삶의 보람과 흐뭇함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임신의 기쁨과 축복
임신이란 여자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뽑기처럼 그중에 하나 찍어서 맞아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새벽마다 정한수 떠다 놓고 기도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임신은 조물주의 섭리이지만 임신을 성사시키기 위한 배란의 원리는 과학이요 첨단 의학인 것이다.
생리 주기에 따른 자궁과 난소 그리고 뇌하수체 시상하부에 이르는 생리학적 호르몬의 조절 매카니즘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여성의 질과 자궁 그리고 난소 뿐아니라 골반내 해부학적 구조를 알고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으로 불임을 치료하겠다고 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임신의 비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무조건 약(藥) 몇 재 먹는다고 아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불임부부들의 의학적 소견을 매우 중요시 한다.
먼저 생리주기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기초 체온을 측정하고 산모의 자궁 경부에서 분비되는 점액의 변화에 따라 배란을 예측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몇시경에 어떻게 잠자리를 가지도록 알려준다.
배란이 되어야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어 아기가 자라 출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데나 아무때나 아무렇게 뿌려댄다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성관계를 가질 때가 있고 가져서는 안될 때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산부인과적으로는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여 난소내 난포의 크기와 자궁내막의 두께 그리고 자궁 경부 점액의 성상으로 배란을 예측 할 수가 있고 배란진단 시약을 통하여 배란을 측정 할 수가 있다.
섭리와 과학
그러나 의학이란 미묘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배란에 맞춰 자궁문 입구에다 정액을 쏟아 부어 놓는다 하여도 모두가 수정되고 착상되어 임신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온다.
세상의 이치가 같은 것이다.
시절을 쫓아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제대로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의학적 지식 위에 자연의 이치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배란과 수정 그리고 착상에 따른 임신의 진행과정을 현미경으로 무수히 보아 왔지만 세상의 이치에 관한 한의학적 관점인 음양의 조화를 터득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믿음과 기다림
아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창조주를 향한 신실한 믿음과 인내로써 축복이 임하기까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임신이란 때가 있는 것이며 때를 분별하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해박한 의학지식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계와 시간표처럼 소중하다.
무지와 무식함은 버스 지나간 후 손드는 것처럼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다.
어린 아들의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과 아들의 부름에 대답하는 엄마의 음성에서 믿음과 기다림의 선물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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