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의원에 가면 기(氣)가 어떻고 혈(血)이 어떻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한의학의 원리가 음양(陰陽)의 이론이며 기(氣)와 혈(血)이 음(陰)과 양(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아도 음과 양, 기와 혈이요 저렇게 이야기 해도 음양이고 기혈이다.
한의학의 보편적 특성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이곳에 와서 하나 한방 병원을 열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믿을 수 없었다” 는 이야기 였다.
필자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깨닫는 한의학의 매력은 대단히 놀라운 힘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한의학의 놀라운 효과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잘 모르는 사람이 찔러도 나을 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비한 능력이 한의학에 있기에 어느 날 갑자기 흰 가운 걸치고 흉내를 내더라도 효험을 본 환자들로 부터 ‘용한 의사’ 소리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침(針)을 마구 찌르다가 사고 내고 야반 도주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일수록 겁 없이 여기저기 침을 마구 찔러대므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무조건 환자를 보면서 기(氣)가 약하고 혈(血)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다 통했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서도 써 먹을 수가 있었고 잘 몰라도 찌르다 보면 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빈혈(貧血)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피(血)가 부족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침술사를 많이 본다.
환자 분들이 좀 어지럽다든지 기운이 없다고 하면 무조건 기혈(氣血)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면서 보약(補藥)을 먹으라고 한다.
침술사의 소리를 못 믿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한 후 빈혈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엉터리’, ‘사기꾼’, ‘장사꾼’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빈혈’이 무엇인지, 헤모글로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한 탓 때문이다.
빈혈이란 적혈구내의 헤모글로빈 농도가 모자라 인체 조직의 대사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게 되어 조직들의 저산소증을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남성의 경우 혈색소 농도가 13g/dl, 여성은 12g/dl 미만 일 경우 빈혈이라 하는데혈액내의 헤모글로빈, 적혈구, 헤마토크리트 그리고 철분의 수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빈혈을 감별 진단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피가 부족한 빈혈이므로 ‘보약’ 한재 먹으라는 무지한 이야기는 무식한 약(藥) 장사꾼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
한의학에는 ‘빈혈’이라는 질병명이 없다.
음양이론에 근거하여 허혈(虛血) 또는 혈허(血虛)라 표현을 할 따름이다.
그것도 혈허(血虛)하기 쉬운 장부인 간(肝), 심(心), 비(脾)의 장부 변증에 따라 간(肝)의 장혈(藏血), 심(心)의 행혈(行血) 그리고 비(脾)의 통혈(統血)의 개념에서 환자의 혈(血)을 보고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의학에서 보는 관(觀)으로 서양의학에서 보는 빈혈(貧血)과 다르기 때문이다.
근래 하혈(下血) 때문에 필자에게 치료를 받으시는 분 가운데 혈색소가 6g/dl인 환자가 있다.
아마도 정상 사람을 6g/dl으로 뚝 떨어지게 했다면 ‘허혈성 쇼크’로 사망(死亡)하게 될 것이다.
필자와 상담 할 때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를 즉시 받으라고 했다.
필자의 짐작과 같았는데 결과는 자궁내막에 근종이 있고 빈혈이 심하여 병원에서 쇼크에 빠질 수 있으므로 즉시 수혈 받고 수술 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현재 환자는 한약을 복용하면서 필자에게 침(針)치료 받으러 혼자 운전하고 다니며 교회 성가대 반주도 열심히 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에 관한 서양의학적 검사 결과를 알고 한의학적 치료에 따른 접근 방식을 알 때 환자는 수혈과 수술에 따른 불안과 공포 그리고 위험에서 해방 될 수가 있었다.
일의 순서
언젠가 배꼽까지 크게 만져지는 혹을 가지고 필자의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즉시 초음파를 찍으라 명했다.
환자의 상태가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의원에 전화하니 어느 침술사가 자궁의 혹이니 한약 먹으면 없어 진다고 했단다.
참으로 무지하기 그지없는 침술사로 무식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여자의 뱃속을 들여다 본적도 없으니 자궁과 난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떠드는 소리는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필자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관계로 진찰 받으러 내원 했지만 산부인과에서먼저 초음파 찍고 설명을 들은 후 찾아오라고 했다.
일의 순서를 알아야 모든 것이 매끄럽게 진행이 되며 잘못된 선택이나 후회 그리고 불행을 미연에 방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혈액학에 관한 서양의학적 지식이 없으면서 무조건 혈(血)이 부족하다며 ‘빈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무지한 것이 된다.
빈혈의 원인은 여러 가지 출혈의 소인 뿐 아니라 철분과 비타민B12 그리고 엽산 등의 결핍 및 골수와 위장, 간장, 신장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하여 유발 될 수가 있으므로 이들을 제대로 감별 진단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구나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종양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범발성 빈혈과 그리고 암(癌)보다 무섭다고 할 재생 불량성 악성 빈혈에 관한 서양 의학적 소견을 알고 난 후 한방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서양 의학적 관점의 빈혈(貧血)과 한의학적 관점의 허혈(虛血)이나 혈허(血虛)에 대한 의학적 지식과 개념에 대한 검사 결과와 그에 따른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두리뭉실 범벅을 만드는 것은 환자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이 땅에서 한의학이 싹이 나서 꽃 피울 생화(生花)가 될 것인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죽어 있는 조화(造花)가 될 것인지 침술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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