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일 월요일

몇가지 생각하며....

워싱턴주에서 유일하게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땅에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식시키고 워싱턴주 한인들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수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건강과 장수 입니다.
즉 오래살되 건강하게 오래 살게되기를 바라는 것 입니다.
오늘날 웰빙의 거센 바람이 그것인데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양생(養生)이라 합니다.
최근 인간의 평균수명이 90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60세 환갑의 나이는 연세 축에도 끼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안락한 삶을 누리며 오래 살게는 되었지만 수없이 많은 질병과 증상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과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의료 장비가 개발 되었지만 제대로 진단하지 못할 뿐아니라 뾰족한 치료의 방법이 없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원시 시대이후로 오랜세월 동안 질병을 보는 관점이나 주술적치료 방법은 별로 다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서양의학의 놀라운 발전은 동양의학으로 대변되는 한의학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구분짓는 관점들이 많이 있으나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서양의학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규명해 나가는 학문이라 한다면 한의학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봅니다.
즉 하나의 증상을 보고 서양의학은 원인을 찾아 이것이냐 저것이냐 ‘DECISION MAKING’을 해나갑니다.
열이 심할때 발병 원인이 감염증이라면 감염균의 종류를 찾아내기 위하여 균배양 검사와 항균제에 관한 감수성 검사를 실시하여 박테리아인지 곰팡이인지 바이러스인지 찾아내고 그균에 가장 잘듣는 항생제나 항균제를 선택하는 진단과 치료의 방법을 찾아 갑니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를 우선시 하므로 열이 있다고 하여도 겉으로 풀것이냐 속으로 없앨것이냐 그리고 불을 끌것이냐(瀉火), 피를 식힐것이냐(凉血), 습을 말릴것이냐(燥濕), 독을 없앨것이냐(解毒) 또는 음을 보충할것이냐(補陰)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과정을 중요시하며 과학적 지식을 배운 현대인들에게는 원인과 결과를 매우 중요시 하므로 나름의 변증논치를 한다고하는 한의학의 경우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문제는 수천년전의 이론적 근거를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지식에 결부시키다 보니 믿을수 없는 정도의 의학적 지식의 차이가 나는것 입니다.
달나라의 계수나무아래 있는 토끼를 생각했던 시대와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달나라를 건너집 드나들 듯하는 세상과는 다르지요.
문제는 보잘것 없었던 지식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의 지혜를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인간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도닥이는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장육부는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적 기능이 똑같습니다.
지식의 부족으로 세부적인 구조와 기능을 알지 못하면서도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옛선조들의 우주관, 인간관, 질병관 그리고 인생관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영(靈)적이라 할까 심오한 이치를 께달았던 옛 조상의 눈에 인체의 경맥과 락맥 그리고 경락들이 보였고 기(氣)와 혈(血)의 순환이 보였는지 모릅니다.
한의학적 치료가 이러한 논거를 근거로 침을 찌르고 뜸을 뜨고 약재를 이용하는 것이지요.
마치 성서(聖書)적인 신앙관과 유사하다고 볼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믿으며 순종하냐의 문제입니다.
다만 의학(醫學)인고로 오늘날 최신의 현대 의학적 지식을 익히고 난후 옛 선조들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방법이 옳은것 이지요.
서양의학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그리고 병리학을 비롯한 기초 의학 지식과 이를 토대로한 내과 외과등의 임상지식이 없이는 한의학을 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몸의 오장육부 가운데 비(脾)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는 중앙 토(土)이며 주운화(主運化)로 청양지기를 상승시키며 주통혈(主統血)하는 공능이 있는데 비(脾)장은 영어로 SPLEEN 입니다.
SPLEEN(비장)은 서양의학적으로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임파기관 입니다.
그러나 비장(SPLEEN)은 한의학에서는 위(胃 STOMACH)와 더불어 소화기계에 속한다고 보지요.
근래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비(脾)와 위(胃)의 표리 관계를 언급하면서 비(脾)가 SPLEEN이 아니고 PANCREAS(췌장)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의학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역시 신(腎)이라고 하는 신장(콩팥)도 영어로는 KIDNEY(신장)이나 실은 ADRENAL GLAND(부신)을 빼놓고 신(腎)을 KIDNEY로 설명해서는 인체의 해부생리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자가 되고 맙니다.
서양의학적인 해부 생리에 관한 지식없이 함부로 SPLEEN(비장), KIDNEY(신장)가 어떻다고 해서는 불신만 가중시키게 됩니다.

다만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의 오장과 표리가 되는 육부의 상호 연관성 및 오장 육부를 칠정(七情) - 노(怒), 희(喜), 사(思), 우(憂), 비(悲), 공(恐), 경(驚) - 이라는 심리적인 요인과 결부시킨 선조들의 안목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는 세포가 무엇이고 효소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지요.
즉 서양의학에서는 간(肝)이 나쁘다고 할때 두근 정도 나가는 간덩어리를 보는것이 아니라 간을 이루는 수천억개의 간세포를 보고 간세포내의 생리기능과 분비되는 효소들을 분석하여 비정상적인 소견을 파악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노여움(怒)이라는 요소는 개입이 되지가 않습니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간(肝)의 소설공능을 보면서 분노의 감정을 연관시켜서 인체를 보았습니다.

한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대로 부터 인간은 병이 나면 그것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약초가 발견되어 왔습니다.
수천년전 신농이라는 분이 하루에도 70가지의 독초를 맛볼정도로 여러가지의 풀을 맛보아 약초를 발견했다는 일화가 있지요
이와 같이 수천년 동안 구전으로 내려온 경험이 누적된 천연 약물을 본초라 말하며 본초는 한방적 사고에 의하여 약효를 설명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약물의 성분을 분석하여 어떠한 약리작용을 하는지 찾아내서 증상의 치료에 사용합니다.
오늘날 복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약제들은 약효를 지닌 성분을 추출해 내었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이지요
이곳 미국에서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물 중 하나가 아스피린입니다.
히포크라테스시대부터 버드나무 껍질을 해열과 진통의 목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버드나무 껍질내에 함유된 아세틸 살리실산이 즉 아스피린 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武科)시험을 보던중 말에서 떨어져 다쳤을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묶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도는 없으나 연관성이 있지 않았을 까 생각됩니다.
본래 아스피린은 요통 치통 생리통등 해열 진통제로 사용이 되었지만 1967년 아스피린에 혈소판이 서로 엉겨 붙어 위험한 응혈이 형성되는 것을 예방하는 '항혈소판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1996년부터 미국 FDA가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아스피린 처방을 인정하여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많이 복용하고 있지요.

옛 선조들은 한약재의 기(氣) 미(味) 형(形) 색(色)에 따라 약의 성상을 나누어 이용하였습니다.
온갖 가지 줄기 잎 뿌리 열매 꽃의 느낌이나 생김새 그리고 맛과 색깔에 따라 어느 장부에 효과가 있을런지 미루어 치료에 이용한 것입니다.
즉 황기처럼 곧고 기다란 뿌리들은 뻗어오르는 기상과 연관 시켰고 뾰족한 모양은 찌르고 터뜨리고 하는 기능과 연상 시켰으며 약의 뜨거운 성질과 차가운 성질을 구분하였지요.
다섯가지의 맛(신맛,쓴맛,단맛,매운맛,짠맛)과 색(푸른색,붉은샛,누런색,흰색,검은색)도 오행(五行)에 귀속시켜 설명을 하였습니다.
예를들면 백도라지의 흰색을 폐(肺)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거담 기침에 이용하였으며 그 매운맛 또한 폐의 기운과 연관시킨것 입니다.
흔히 시중에서 ‘용각산’이라는 백색 분말가루약도 길경(도라지)이 들어가 있지요

그러나 한의학의 기본원리가 공식처럼 음양오행이나 모든것이 구분대로 나누어지고 모든것이 분류대로 효과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한의학에서는 ‘태과불급(太過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는다’는 뜻이지요.
백색(白色)이 폐(肺)에 좋다고하여 백색식품을 폐병치료에 쓴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백색식품을 많이 먹는다면 오히려 폐(肺)를 안좋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의학은 음(陰)과 양(陽) 사이 중용의 조화를 치료의 목표로 삼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것이 치료의 과정입니다.
음식 섭생도 편식하거나 과식하지 말고 골고루 섭취하여 조화를 이루는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며 자연의 순리대로 제철에 나는 식물을 신선하게 드시는것이 양생의 법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방에는 누구나 만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수치적으로 정해진 합격선이 없습니다.
백점짜리는 백점짜리 대로 오십점짜리는 오십점짜리 대로 나름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좋은것이며 만족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족(自足)할 줄알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요 삶의 철학입니다.
즉 건강이지요.
한의학은 의철학(醫哲學)이요 서양의학을 의과학(醫科學)이라고 하는것을 깨달을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의과학적인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한의학을 바라본다면 그런 엉터리도 있을수가 없는것 이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는것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고 절대로 환자 치료를 맡길수가 없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위한 교육을 받아온 현대인들에게 A가 B이고 B가 C이면 A는 C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의학에서의 상생상극 원리를 살펴보면 간(肝)은 심(心)을 도와주고(生), 심(心)은 비(脾)를 도와주는데 간(肝)은 비(脾)를 극(克)한다 즉 억제한다고 합니다.
삼단논법상으로는 A는 B를 돕고 B는 C를 돕는다면 고로 A는 C를 돕는다가 되지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비(脾)를 설명할때 SPLEEN(비장)으로 이야기하거나 신(腎)을 이야기 할때 KIDNEY(신장)로 설명하면서 ADRENAL GLAND(부신)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은 무식함의 극치가 됩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고개를 끄덕일것 이지만 서양의학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돌릴것입니다.
더이상 떠들어봐야 ‘쥐뿔도 모르면서 되게 잘난체하는 못봐줄 일’입니다.
먼저 해부 생리에 관한 서양의학적 최신 의료 지식을 갖추고 난후 오랜 역사 동안 조상들이 깨우친 한의학적 우주관 인체관에 대한 지혜를 깨우쳐야 합니다.
한의학 원리를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지식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난도질을 한다면 남아나는게 거의 없습니다.
아직 현대 의학적으로도 규명이 안된것이기에 잠시 유보시켜 놓을수는 있어도 예리한 칼날에 살아남기는 힘들지요.

현대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한방의 도(道)를 깨우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한방의 매력은 치료의 능력입니다.
서양의학의 놀라운 발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인을 찾지 못하여 진단이 안되고 진단명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와 진단은 되더라도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지요.
서양의학의 한계입니다.
이처럼 어찌할 방도가 없는 답답한 경우에 해법의 단초를 제공 할수있는것이 한의학으로 대체의학 또는 대안의학이라 말합니다.
얼마전 의사선생님으로부터 “NOTHING I CAN DO”라는 말을 듣고 오신 백인 환자가 있었습니다.
대퇴방사통증을 호소 했는데 아마도 FEMORAL NERVE의 문제로 보였는데 한방치료를 받으며 매우 흡족해 하였습니다.
한방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한방을 찾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서양의학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별다른 증상의 호전이 없어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인데 무엇보다도 이때 서양의학적으로 어느정도 이해와 설명이 가능해야하며 그후에 치료의 대안으로 한방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합니다.
환자들이 그동안 병원에 다니며 듣고 본 바를 설명할때 의학적인 지식이 모자라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해서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Rapport가 형성되지가 않습니다.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설령 증상의 호전이 있다고 할찌라도 신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한방의 효험을 확신 시켜주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적인 지식을 익히고 있어야 합니다.
가짜 학위보다는 진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 환자의 증상 치료가 서양의학적으로 효과를 볼것인가 한방적으로 효과를 볼것인가 감별 할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들면 정신을 잃는 혼궐(魂蹶 SHOCK)환자를 볼때 한의학적으로는 독맥을 중요시하여 인중혈과 십선이라고 손가락 끝을 따주고 백회라는 머리 정수리에 침을 놓으라고 나와 있고 우황청심환을 먹아던가 또느 독삼탕(獨蔘湯)이라고 인삼을 진하게 다려 먹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쇽이 발생했을때에는 응급처치의 ABC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氣道)의 확보가 가장 우선입니다.
그리고 쇽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치료의 방법이 다르며 한방적으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고 반드시 서양의학적인 수술의 방법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출혈성 쇽의 경우 출혈부위의 지혈과 혈액의 보충 없이는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십선을 따겠다고 하거나 인삼을 먹여야 한다고 약을 대린다면 환자는 죽고 맙니다.
그리고 정신 잃은 사람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이려 한다면 기도를 막아 질식해 죽게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의학적 감별의 중요성입니다.
우선 순위를 알아야하고 한의학으로 되는일과 안되는일을 분별할줄아는 의료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의학에는‘동의보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400여년전 발간된 책으로 당시 중국의 의서 83권과 조선의 의서 3권을 참고하여 민간에 내려오는 요법을 모아 편찬한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나 출판 여건상 방대한 작업이었기에 의서(醫書)의 집대성이라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지요.
그러나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동의보감의 내용을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하고 시대에 맞게 개역하고 영어로 번역한것 밖에는 달라진것이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이므로 한의학의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내용이 많고 미신적이 내용도 있어‘이불밑에 도끼를 넣고 잠자리를 가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등 허구스런 구절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기념비적인 역사적 가치와 당시의 의료상황을 살필수있는 학술적 가치는 훌륭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한의학을 현대화 시키지 못한점은 애석한 노릇입니다.
반면 400여년전 동의보감이 발간된 즈음 서양에서는 현미경이 발명되고 현미경을 통하여 세포(CELL)를 관찰하게 되었으며 이후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전자 현미경까지 발명하여 세포 뿐아니라 세포속의 핵(核)과 핵속의 염색체 그리고 염색체속의 DNA를 통하여 유전자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꿈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 입니다.

언젠가 클린턴 전대통령이 미국의 의료보험은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 뿐아니라 미국인들의 의식주(衣食住) 생활 습관방식이 심각한 질병의 발생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점에서 한의학의 역활이 필요한 때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한방 시술을 하고 있는 필자의 관점에서는 체질적으로 친숙하지 못하며 침자리인 경혈을 1, 2, 3 숫자놀음으로 익히는 것을 볼때 서구인들에게는 배움의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한의학은 의미와 느낌에 따라 치료의 효과가 다르며 감(感)을 느낄줄아는 도(道)를 터득해야 하는것입니다.
서양의학은 자르고 베고 묶고 꿰메어 주는것에 별로 큰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의학은 같은자리에 침을 놓는다 하여도 감(感)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한약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를들어 비빔밥의 재료를 가지고 한데 어울러 비벼먹는 비빔밥의 맛과 비비기가 번거롭다고 밥 한숫가락에 반찬 하나씩 먹고 고추장을 떠 먹는것이 같은 맛은 아니지요.
한방은 우리의 사는 주변의 온갖 여러가지 요소들의 조화속에 독특한 맛(味)과 느낌(感)의 도(道)를 찾는것 입니다.
음양의 상대적인 속성상 모든것이 음(陰)이라 할수도 잇고 양(陽)이라 할수도 있습니다.
음이라해도 틀리지가 않고 양이라해도 틀리지 않는것이 음양의 이론 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중국산이냐 한국산이냐에 관심이 많은것을 봅니다.
한약의 복용에는 환자의 한의학적 진단이 필요한것 이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간(肝)기능이나 신장기능의 검사수치를 아는 서양의학적 지식이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환자를 살리겠다고 주는 한약이 환자들의 간과 콩팥을 망가뜨리게 될수도 있습니다.
침또한 아는지 모르는지 찌르다보면 나을수도 있는것이 침술치료 입니다.
그러나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죽일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문명의 중심인 미국땅에서 한의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인 침술사들이 적다는 점과
둘째 강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중국계와 백인들로 한인들은 거의 없으며
셋째 한인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한의학의 본질적인 문제 보다는 유난히 교통사고와 살빼고 키크게 해주는 비즈니스에 열심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경우 의사와 의사가 아닌 침술치료사의 역활구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일본의 경우는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 가운데 한방을 전공하며 중국의 경우에는 양방과 한방의 기본적 학문을 익히므로 상호 신뢰하에 서로 협진이 가능한것을 봅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양방과 한방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이 있지요.
파이 조각 나누는 문제 뿐아니라 서로간의 불신의 골이 깊음을 볼수 있습니다.
한의학의 경우에도 원조 논쟁으로 중국이냐 한국이냐를 따져 한(漢)의학에서 한(韓)의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매우 소모적인 논쟁이며 국수적인 아집이지요.
필자의 생각으로는 역사적으로나 규모면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통용되는 CTM(중국전통의학)이라는 관례적 용어의 사용면에서 중국의 역활을 인정합니다.
다만 중요한것은 한방적인 치료의 능력을 입증해 내는것이라 봄니다.
무엇보다 본질에 충실해야 할것입니다.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교통사고와 같은 비즈니스광고 보다는 불치 난치 질환 치료의 대안이 되는 한의학의 효험을 알려야 할것입니다.
더구나 제대로 알지못하면서 여기저기 써대는 칼럼들을 보면서 한의학의 능력을 코미디로 만들어 조롱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환자분들 가운데 특히 교통사고 나신분들의 경우 ‘보약이나 한재 지어달라’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환자들의 무지함을 탓하기 앞서 한의학적 치료의 자부심을 잃지 않아야 할것입니다.
한방은 어떠한 질환이든 모든것을 치료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는 아무것도 치료해 줄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 모르면 치료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땅에서 한의학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침술치료사들의 경우 배우고 익히는 확실한 일에 매진하여 한의학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 주류 사회를 위해서나 한인 이민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후학들의 미래를 위한 침술 치료사들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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