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일 수요일

신토불이(身土不二)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혼자서는 살수 없는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자연적 환경 못지않게 사회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집안 가문을 중요시하고 학벌이라는 교육 환경을 중요시하며 친구를 중요시 하는것이 그것이다.
태평양 건너 이곳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얼핏 들었던 "미국은 천국과 같은 지옥이고, 한국은 지옥과 같은 천국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필자의 경우에도 아이들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3년 넘게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이 벨뷰크리스챤스쿨에서 5,6년간의 좋은 학창시절을 보내었으니 후회가 있을수 없다.
간혹 아이들 학교에 가보면서 '이런환경에서 한번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필자는 중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시험 때문에 국민학교때 부터 과외공부를 하였으며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복작거리는 서울의 생활에 익숙하였으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순서와 규칙속에 때로는 단조로움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행히 어디에서나 잘 적응하는 탓에 불편함없이 지내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면서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많이 접하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미국이 자본주의 나라이기에 어쩔수 없는 '경제의 힘'에 '부담'을 가지게 되는것을 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신토불이'에 따른 이민자들의 숙명적인 삶이 있는것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수입 자유화에 살아남기 위하여 한국 농산물을 지키려는 어느 농업 협동 조합에서 일하던 사람이 제창 한것이다.
한의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과거 교류가 별로 없던 시절이므로 치료의 개념에 '신토불이'가 적용 될수가 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지역적인 영향을 받아 유사한 질병에 이환되기 때문이다.
신토불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곳 미국에서의 한의학은 도전이며 '동부개척'의 과정인지 모른다.
가끔 한인 2세나 어릴때와서 거의 미국화가 되어버린 환자들을 진료할때 한의학이 신토불이임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장벽이 있음을 보게 된다.
미국에서의 한의학은 정통의학이 아니기에 아무리 흰가운 걸치고 자칭 박사라고 해봐야 통하지 않는것이다.
카이로프락하는 척추신경의사는 Dr.임에 분명하나 한의사는 Dr.가 아니고 침구사이기에 힘이 없는 것이다.
"메디케어가 되느냐?"고 많은 문의가 온다.
카이로플락틱은 되나 한방은 되지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고 한의학의 위치이다.
어찌보면 메디케어가 있는 노인분들의 경우 카이로플락틱보다 한방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침구사의 위치가 메디케어를 다룰 위치에 오르지 못한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얼마전 시어머니와 함께 오신 2세같은 'Ovarian Failure" 환자가 있었다.
한국의 유명 산부인과 병원에서 필자의 후배되는 의사에게서 종합검사를 받았던 분이다.
필자가 양방적인 관점과 한방적인 관점에서 비교 설명을 해주었다.
질병의 희소성도 희소성이거니와 산부인과의 내분비에 대하여 자신하는 필자로서는 충분히 치료를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NO 였다.
이것이 한의학의 현주소이며 미래인 것이다.
아무리 한의학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하여도 확실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이는 납득시키기가 어려운 일이다.
소위 자칭 박사이고 수십년의 경력이 있다 떠들어도 소귀에 경읽기(牛耳讀經)이다.
우선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두루 섭렵해야하고 영어와 의학용어에 능통해야 할일이다.
매우 낮은 한의학의 실제적 위상
'身土不二'
참으로 요긴한 한의학이지만 2세의 장벽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한의학의 입지는 설자리를 잃는 것이다.
시상하부 - 뇌하수체 - 난소 - 자궁에 이르는 일련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받아 들이지 않는것은 그만큼 한의학에 대한 인식의 문제 인것이다.
눈높이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처럼 침구사의 진료권을 제한하게 된다면 한의학의 앞날은 끝이 나는 것이다.
간혹 머리좋은 사람들은 돈버는 방법을 찾아내겠지만 그것은 이미 한의학이 아니다.
혹자는 서양의학이 30% 밖에 치료하지 못한다고 떠들어 댄다.
그렇다고 나머지 70%를 한의학이 고치는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30%라고 이야기 할 주제가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고혈압의 원인과 치료에 대하여 어느 한의사와 의사들 간에 법정 다툼이 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공부한 필자가 보기에는 그한의사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것 같다.
오늘날의 현대의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이 떠들일이 아니다.
수학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알아야 할일이다.
하나를 알았다고 다아는것처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큰 호수라 하여도 호수는 호수이지 바다가 아니다.
이곳의 2세들의 경우 한국인의 몰골이라 하여도 먹고 마시고 숨쉬는것이 Made in USA 이다.
신토불이의 개념이 달라질수 있다는 말이다.
한의학이 2세들의 장벽을 넘어야만 세계속으로 발돋음 할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환자들이 신뢰 할수 있으며 의사들이 공감하는 한의학이 되어야 한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 한것이다.
메디케어 환자를 돌볼수 없는것이 정통의학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것임을 의미한다.
작금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제기되는 침구사들의 진료권 제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할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방 병원에서도 여러 검사들을 함으로써 객관적인 근거에 준하여 진단과 치료를 할수가 있는데 이곳 미국의 경우에는 오직 망(望), 문(聞), 문(問), 절(切)의 사진(四珍)법으로만 진단을 해야 하므로 한국이나 중국의 한의학에 비하여 제한이 많이있다.
즉 현대 과학의 도움을 받는 의료기기의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내 한의학의 위상이다.
아마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가도 못따라 갈 노릇이다.
신토불이만 외치고 저 잘낫다고 자칭 박사라고 떠들어봐야 우물안 개구리(井底之蛙)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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