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일 수요일

억울한 누명(FALSE CHARGE)

예나 지금이나 속고 속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정아로 시작된 일련의 가짜박사 사태는 줄줄이 계속되고 있으며 어디가 끝이 될런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태평양을 건너고 여러 주(州) 경계를 넘은 이곳에서는 더욱 정도가 심한것 같다.
세상에는 남을 속이고 피해를주는 나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것을 보게 된다.
서울 외곽도로에는 과속 단속카메라가 있어 벌칙금 고지서와 함께 자동차의 과속주행 위반 사진이 날라오게 된다.
한동안 외도하는 남녀들이 과속하다가 조수석에 앉아있는 불륜 상대가 찍힌 사진이 집으로 배달되어 가정 파탄을 일으키는 사회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즉 변명치 못할 불륜 현장의 물증을 통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외도를 저지르는 불륜커플이 아니고 업무상 동행하는 동반자 관계인 경우도 있을수 있으므로 민원 해결의 차원에서 촬영된 사진의 조수석 부분을 지우고 발송하는것으로 바뀌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필자가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할때 외식하는 경우가 많을수 밖에 없었는데 한번은 경기도 고양에서 목회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친구 목사내외와 점심식사를 위하여 행주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필자가 살던곳에서 경기도 북쪽을 가려면 행주대교를 지나는것이 편리하여 구행주대교때부터 신행주대교에 이르기까지 수도없이 오고가고 했던 곳이다.
하루는 부모님께서 필자앞으로 과속 벌칙금 스티커가 발부되었다고 알려주시며 집으로 오라는 전화가 있었다.
당시는 혼자사는 기러기 아빠였기에 주민등록을 부모님 주소로 옮겨 놓았었다.
점심약속으로 신행주대교를 건너가면서 과속위반하고 또다시 돌아오면서 과속위반하여 같은 날 2장의 벌칙금 고지서와 함께 사진도 2장 동봉되었다.
건너가면서 찍힌 한장에는 아무런 표시없이 혼자 운전하는 모습의 사진이었으며 두시간 정도 경과하여 돌아올때 찍힌 사진에는 조수석을 네모로 지운 사진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친구목사와 점심 먹으러 갈때의 사진이었고 점심 식사후 신행주대교를 건너 돌아올때의 사진이 틀림없었다.
필자 혼자의 나들이었고 시간과 장소도 정확하여 제삼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한장의 사진은 조수석에는 동승한 사람이 없는 운전자인 필자만 보이고 다른한장은 조수석을 보이지않게 지우고 운전자만을 보여주고 았으므로 분명 누군가 조수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지우고 보낸것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하였다.
설명을 하자면 불이나게 행주대교를 건너가서 누군가와 만나 한두시간 잘놀은 후 차에 태우고 신바람나게 오고가다 과속 위반 감시카메라에 찍혔던것이며 동승한 사람이 없는 경우는 별문제가 없으므로 그대로 보내주었고 조수석에 동승한 인물이 찍힌 사진은 그대로 공개할수가 없어 조수석을 지우고 보낸것이라는 심증(?)을 확인시켜주는 물증(?)이 되었다.
빼도 박도못할 불륜행각(?)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억울함의 극치
부모님께 공연한 근심거리(?)를 만들어 준것이 되었지만 만일 처갓집으로 같은 사진이 두장 날라가서 장모님께서 보셨다면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필자의 병원 관내모임에서 알고지내던 관할 파출소 소장에게 화풀이를 하는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사람을 골탕 먹이는 방법도 가지가지 이다.
물론 사진의 원본을 확인하면 간단한 일이 되겠지만 그 확인하는 과정동안의 불신과 천대의 죄인 취급은 면치 못할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일이 상호 신뢰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잠시나마 서로간의 불신의 가능성을 확인 시키는 계기가 되어 장차 큰 화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고의적이던 아니건 한장은 그대로 보내고 한장은 가리고 보내줌으로써 불륜 현장의 물증임을 암시해주는 누군가의 장난이 재앙의 단초가 될수도 있음을 안다면 모든일에 원칙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신뢰의 회복
오늘날의 과학 세상에는 증거를 매우 중요시 한다.
범죄 수사에도 심증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반드시 물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명백한 물증이 있더라도 판결이 뒤짚어 질수도있는것이 미국의 재판인것 같다.
서양 의학의 경우에도 진단을 위하여 여러가지 검사들을 시행하게 되며 그결과들을 종합하여 확진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주관적인 감(感)을 위주로하는 한의학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수가 없으므로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믿을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의 개념과 이론상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 논리가 부족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논리적인 한의학을 제대로 전달못하는 침술치료사들의 현대의학적인 지식의 부족이 더욱 큰 문제이다.
먼저 서양의학에서 보는 관점을 이야기하고난후 동양의학적인 관점과 치료법을 설명해줌으로써 저들의 이해를 구하는것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동문서답을 해서야 불신밖에 남는것이 없다.
지혜로운 한의학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무식한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환자는 물론 의사들도 믿고 맡겨볼 수있는 한의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짜에게는 억울함이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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