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일 화요일

궁(宮)이야기

구중궁궐(九重宮闕)
궁(宮)이라는 곳은 역사(歷史)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곳이기 때문에 비밀스러움이 많이 담겨 있다.
역사는 언제나 강자들의 편이므로 정치적 권력 쟁탈을 위한 온갖 음모와 술수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권모 술수에는 언제나 그 중심에 계집(女)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본다.
궁(宮) 안의 궁(宮)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사(野史)에는 궁(宮)과 성(性)에 얽힌 남녀의 야(夜)한 이야기가 난무하게 된다.
왕궁(王宮)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세력 간의 모략과 다툼, 그리고 수없이 많은 궁중(宮中) 여인들의 육체를 매개로 한 성(性)적 향응과 권세의 놀음이 모두 여성들의 자궁(子宮)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인천하(女人天下)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며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낮의 정치가 남자들의 머리에 의하여 결정 되는 것이라 한다면 밤의 정치는 여자들의 육체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남자들 사이의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권모 술수에 의한 것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육체의 성(性)을 매개로 하여 권세의 세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 때문에 자궁(子宮)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모두가 ‘끈’을 붙잡기 위한 경쟁의 과정이다.
왕궁의 중심에 닿을 수 있는 연줄과 여자의 뱃속 자궁에 착상되어 있는 태반의 탯 줄이 권력 쟁탈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왕궁(王宮)의 비밀이 여자의 치마 속 자궁(宮)에 달려 있으므로 여인천하(女人天下)라 일컫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의 인간 세상 위 아래를 모두 한마디의 말로 호령하는 자를 왕(王)이라 칭 한다.
때로는 스스로 하늘의 황제라 칭하기를 원한다 할 찌라도 역시 여자의 자궁(子宮)에서 나온 핏덩어리인 고로 치마 폭의 범주를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하 왕궁(王宮)의 모든 권세가 자궁(子宮)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권모와 술수로 씨앗이 뿌리어 졌다고 할 찌라도 결국 자궁을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궁(子宮)에 관하여
필자는 산부인과 전문의사로서 그 동안 많은 여성들의 자궁(子宮)을 다루어 왔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여자의 뱃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자궁(子宮)은 주먹 크기에 지나지 않는 근육(筋肉) 덩어리에 불과하다.
육질(肉質)로 따지면 아마도 매우 질기고 씹기 어려운 고기 덩어리이나 조물주께서 부여한 잉태(孕胎)의 보고(寶庫)로서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궁으로 진입하는 길은 음문(陰門)인 질(膣)을 거쳐야 출입이 가능한 천혜의 요새이다.
내분비 생리학적으로는 난소의 호르몬 분비에 의한 변화를 수용하며 여성의 모든 삶의 궤적을 담아내는 기관으로 모성(母性)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인의 질고를 담당하는데 매달 반복되는 달거리인 월경 대사를 책임지며 수태에서부터 열 달 동안 아기를 키우는 곳이다.
서양 의학적 관점에서는 자궁이란 것이 가임 기간 동안의 임신과 출산을 위한 한시적인 ‘아기집’ 역할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소임을 마친 경우에는 의학적 상황에 따라 쉽게 용도 폐기의 목적으로 잘라서 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자궁 적출술이라 한다.
자궁은 사춘기 이후 갱년기가 끝날 때까지 매달 월경을 하게 되지만 때로는 비정상적인 자궁 출혈로 인하여 매우 성가시게 만들 뿐 아니라 때로는 근종과 암을 유발시키는 장기이기 때문이다.
흔히 주변에서 30대 후반이나 40대 여성들 가운데 이런 저런 이유로 자궁을 떼어낸 ‘빈궁마마’가 많은 것을 보게 된다.
한방의 개념
한의학에서는 자궁이란 것이 형태적으로는 부(腑)와 유사하며 기능적으로는 장(臟)과 유사하지만 장(臟)도 아니고 부(腑)도 아닌 기항지부(奇恒之府)로 여자포(女子胞)라 일컫는다.
여자 나이 14세가 되면 천계(天癸)에 이르고 임맥이 통한다고 했는데 임맥은 음모(陰毛)의 언저리에서 시작되어 뱃속으로 들어 간다.
혹자는 임맥과 충맥 그리고 독맥이 자궁에서 시작 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기경맥이 경맥과 낙맥을 연결하여 자궁의 정상적인 생리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로서 느끼는 바는 해부학이나 생리학 그리고 병리학의 현대 의학을 모르고는 결코 ‘자궁이 어떻다’ 논 할 가치가 없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자궁보다 더욱 중요한 난소(卵巢)의 해부학적 구조와 내분비학적 생식 생리 기능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은 시상하부, 뇌하수체, 난소에 이르는 호르몬 분비 조절에 의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자궁의 변화를 통하여 여성(女性)의 내분비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의학에서는 여자(女子)의 역할을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어미(母)의 역할을 강조하여 자궁(子宮)을 중요시 한다.
아울러 자궁을 신(腎), 간(肝), 비(脾)를 비롯한 오장과 연관시켜 여인(女人)의 중심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궁에 담긴 뜻
여성의 자궁(子宮)을 왕의 궁(王宮)으로 인식하는 것이 한의학이다.
서양의학인 산부인과에서 뱃속을 열고 자궁을 보며 자궁을 절개하고 적출해 내는 외과적 수술의 대상으로 보는 여성의 해부 생리학적 자궁과 관(觀)점이 다르다.
임맥과 독맥이 기시하는 생명의 역사가 창조되는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歷史)가 시작되는 곳이며 인생의 비밀이 담겨있는 곳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수없이 많은 자궁을 떼어 내는 전자궁 적출술과 자궁을 째고 아기를 끄집어내는 제왕(帝王) 절개 수술을 하였던 필자로서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자궁에 대한 관(觀)을 새롭게 정리하게 된다.
뱃속을 열고 보았던 자궁들과 내진을 하면서 질(膣)을 통하여 만졌던 자궁들의 감(感)을 반추하면서 생명과 역사의 기원인 왕궁(王宮)을 깨닫는 것이다.
한의학은 의철학(醫哲學)이며 서양의학은 의과학(醫科學)이다.
하혈하는 여자의 자궁(子宮)과 질(膣)에 침(針)을 찔렀다는 무식한 침술사가 있음을 볼 때 의학(醫學) 뿐 아니라 역사(歷史)도 모르며 침(針)통 들고 설치는 일이 걱정 되는 것이다.
자궁(子宮)에서 왕궁(王宮)을 보며 역사(歷史)의 흐름 가운데 인생(人生)을 깨닫는 것이 한의학이기 때문이다.
자궁에 관한 서양 의학적 지식(知識) 뿐 아니라 자궁에 담긴 뜻을 아는 지혜(智慧)가 있어야 비로소 여인(女人)을 치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궁(宮)에 담긴 한의학의 비밀이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삶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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