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5일 목요일

적반하장

요즘 배아줄기세포에 이용되었던 난자에 대한 윤리적 문제로 시끄러운것을 본다.
불임 치료를 위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왔던 필자로서도 그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짐작이 간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듯이 잘나가다 복병을 만난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인생의 항로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것이다.
미련한 자는 여러문제에 부딪히겠으나 지혜로운자에게는 곳곳에 놓여진 장애물을 피해가는 마음과 자세가 유익이 되기도 한다.
'의사를 잘만나는것이 복이라'고 침구사 잘못 만나 목숨을 잃을뻔 했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를 기술한 필자의 지난주 칼럼에 대하여 뒷말이 무성한것 같다.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듯이 자신의 위치를 아는것 -주제파악- 이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얼마전 악어를 삼키다 배가 터져 죽은 구렁이 사진이 뉴스에 나온적이 있다.
'먹을수 있는것'인지 't삼킬수 없는것'인지 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최초에 한약재에 관한 신농 본초책을 기록한 신농씨도 360여가지의 한약재의 맛을보고 우리몸에 어떻게 좋고 어디가 나쁘기에 이러한데에 이렇게 써야 한다고 기술해 놓았다.
수천년전에 먹어서 죽을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먹어보고 효능과 부작용을 알아낸 업적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를 신(神)과 같다하여 신농(神農)씨라 부르는 것이다.
의사들의 경우에도 환자를 진료할때 내가 치료할수 있는 환자인지 전문의사에게 의뢰를 보내야 할 환자인지를 잘 구분하는것이 훌륭한 치료자 인것이다.
이것을 '의료 전달체계'라 하는 것이다.
조금전에 침구사 잘못만나 돌아가실뻔 했던 목사님께서 전화가 오셨다.
이름도 밝히지 않으면서 목사님의 상태를 잘아는 어느 침구사가 전화를 해서 필자의 칼럼에 대하여 이렇쿵 저렇쿵 험담을 하면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한다.
필자가 칼럼에 목사님의 성함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전후 사정을 잘아는자는 누구인지 뻔한것인데 극구 숨기려 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자로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다.
목사님께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치료한답시던 이곳 워싱톤주 4곳의 한의원의 이름을 재차 필자에게 밝혀 주었다.
또한 변호사를 통하여 4곳의 한의원 침구사에게 편지를 보내었다고 말씀하셨다.
진실은 알고 있다
모르는것은 부끄러운일도 아니고 못난일도 아니다.
잘모르면 전문가에게 의뢰를 할일이지 모르면서도 아는척 몇달씩 치료합네 하면서 붙들어 놓아 시간만 지체케하고 "허로풍"이네 "말기중풍"이네 하면서 살사람을 죽는다 한것이 잘못된 일인것이다.
수술받고 회복되어 살아나신 목사님은 침구사 잘못만나 죽도록 고생하였던 것이니 죽었다 살아나것이다.
치료가 안되고 잘모르겠으면 전문가에게 의뢰하여야 할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실수를 할수가 있는것이다.
실수를 해서는 않되지만 실수를 하였을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술수를 부려서는 않된다.
필자의 칼럼을 빌미삼아 목사님을 잘안다고 전화해댄 '자칭 한의사'는 분명 목사님을 치료한 침구사중 한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밝힐수 없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빌기는 커녕 칼럼을 쓴 필자를 모함하는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한의학은 음과 양의 조화속에서 양생하도록 하는것이다.
자신을 알아 스스로 균형을 이루어 치료가 되도록 돕는 의학이다.
시기와 질투로 남을 끌어 내려서 하향 평준화하려 해서는 않된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물어보아 알아야 하는것이다.
시기, 분노, 모함, 질투를 가지고 환자를 진료 할수없는것이 한의학이다.
서양의학과 다른점이다.
성경에 모르드게의 목을 매려 하만이 올무를 만들었으나 오히려 그올무에 하만의 목이 걸린 내용이 있다.
한의학은 지혜를 구하는 의학이다.
깨달음을 통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해코지하려는 생각이 들거나 남 잘되는것을 보고 배가 아파 온다면 침통들고 치료할수가 없는것이다.
먼저 자기를 찔러야 할일이다.
내달에 무료 의료 봉사가 있다는 광고를 듣고 여기저기 전화해대며 시비거는 자세로는 침구사가 되어서는 안되는것이다.
살기어린 분노는 산사람을 죽이며, 살수 있는 사람도 죽는다 하고, 살겠다는 사람조차 죽으라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울일이다.
한의학은 둥글게 돌아가는것이니 태극이 둥글고 음과 양이 둥근것이다.
한의사라면 음과 양속에 있는 점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남이 앞서 간다고하여 모함과 시기로 딴죽을 걸면서 훼방을 하는것은 한의학을 하는 자세가 아니다.
뒤쳐지더라도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균형을 이루려 애쓰려는 자세가 필요한것이다.
한의학은 눈가리고 아옹대는것이 아니다.
분명 목사님을 치료했던 침구사 가운데 하나인자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번호까지 비밀로 해가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선처를 구하기 커녕 모함하여 이간질 시키려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노릇이다.
화해와 용서는 잘못의 시인과 뉘우침에서 시작이 된다.
4곳의 한의원 가운데 한곳은 문을 닫았고 두곳은 지금도 열심히 광고 해대며 앞장서서 선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숙해야 마땅하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함 때문이다.
의학의 길은 환자 치료를 위한 일에 혼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바쳐 신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수 있는것이니 노병일, 황우석 박사의 눈물이 그것이다.
불임 관계의 일로 두분을 알고 있는 필자는 그눈물의 의미를 안다.
무지함으로 인하여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침구사들은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오히려 쌍심지를 돋우며 술수를 부리는것은 있을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일로 필자의 칼럼을 시비를 걸기위해서든 아니든 꼼꼼히 읽는 침구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많은 광고들이 있음을 본다.
사람을 한번 속일수는 있어도 두번 속일수는 없다.
한번은 속아넘어가 준다하여도 두번 속아 주지는 않는다.
오직 부단한 학문에의 정진을 통하여 성심 성의껏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일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안다면 자숙해야 할일이나 뒤짚어 떠들어 대는일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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