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한의학의 독창성

환자를 보다보면 여러 상황을 접하게 된다.
참으로 한방의 우수성에 놀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한방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앞서 한의학에 대한 불신을 거두어야 할것이다.
침술치료사 자격도 없이 한의원에서 일하는 사람 아무나 침을 들고 찔러서는 않될일이다.
많은 환자들로 부터 한의원에서 일도와주는 사람에게서 침을 맞았다느니, 한의원 원장 부인한테 침을 맞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그외에도 무료로 침을 놓아주는데를 단체로 다녀오신분들도 있다.
대체로 무료로 침을 맞았다는 분들의 경우 침을 놓은 부위가 하복부나 회음부근처가 포함된것을 많이 보게된다.
물론 환자분이 요실금이나 치질과 변비, 월경이상의 증상이 있었던 경우라면 몰라도 굳이 여성의 속옷을 내리면서까지 장침을 놓는 의도를 이해 할수가 없다.
하물며 미국 땅에서 침술치료사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일은 상상도 못할일이다.
조용팔/너훈아
한의학에는 모든것이 가능하므로 안되는 일이 없는것이다.
제대로 몰라도“기(氣)와 혈(血)이 어떻다”하기만 하면 된다.
말만 잘하면 누구나 침을 찔러댈수가 있고 한약을 팔수가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한의학의 원리는 상대적인 음양론이다.
‘조용필’도 되고 ‘조용팔’도 되며 ‘나훈아’도 되고 ‘너훈아’도 된다.
나름대로의 뜻과 길이 있는것이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것을 믿으며 나가면 되는것이다.
굳이‘조용필’흉내내려고‘조용팔’이 될 필요도 없고‘나훈아’가 부럽다고‘너훈아’가 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한의학은 모창가수를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모창가수를 내세워 모창곡을 부르게 하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나쁜 장사꾼의 짓이요 사기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술수로 한의학을 한다면 그것은 치료행위가 아니고 살인행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노래를 못하는 음치라 하여도 최선을 다하여 부르면 된다.
잘모르더라도 정성을 다하여 침을 놓으려는 마음이 있을때 낫기를 바라는 환자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의학의본질 한의학에도 그이론을 설명하는‘학설’들이 많지만 아직 구체적인 물증으로 확증된것이 없다.
‘기(氣)’가 어떻고‘혈(血)’이 어떻다 하지만‘기(氣)’와‘혈(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정확한 설명이 되지않고 있다.
“혈(血)은 기(氣)의 어머니요 기는 혈을 인도하는 장수이다”라고 기록되었는데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하는 이야기와 같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한의학적인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일수는 없다.
골라서 받아들여 발전 시켜야 하고 잘못된 이야기는 버려야 하는것이다.
수천년전의 생각과 이야기를 오늘날에도 옳다고 믿는다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흔히 오장육부라 하는것은 실은 육장육부인데 육장인 간(肝),심(心),비(脾),폐(肺),신(腎),그리고 심포(心包)와 육부인 담(膽),소장,위,대장,방광 그리고 삼초가 그것이다.
옛사람과 오늘날의 사람 속내장의 인체 해부학적 구조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광학 현미경도 없던 시절과 전자 현미경으로 보는 해부생리학적 관점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것이다.
즉 오장육부에 관하여 옳은 이야기도 있지만 틀린것이 많은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모르는 내용이 있는 의학의 분야이지만 확실히 입증된 내용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문제는‘왜 옛 조상들은 그렇게 생각했을까’하는 조상들의 관점을 이해할일이다.
아직 우리는 모르지만 옛사람들의 지혜로움이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의학
한의학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보고 느끼는것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수가 있다.
문제는 보이는것과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며 표현이 다르게 된다.
초등학생만큼 알고 있으면 그수준밖에 안되는 것이고 전문가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 전문가답게 풀이를 할수가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세상에 아는 만큼 정보를 이용할수가 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특히 짝퉁의 천국이란 오명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가짜 박사가 넘쳐난다.
한의학은 가짜 지식으로 되는 분야가 아니다.
오직 보고 느끼고 깨닫는 지혜로움이 근간이 된다.
거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각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것이다.
발전을 위한 독창성
조용팔로 조용필을 대신하게 하거나 너훈아로 나훈아처럼 속이려하는짓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나씨가 아닌 너씨로 족하며 용필이가 아니라 용팔이라도 좋은 것이다.
굳이 속일 필요가 없다.
거짓을 속이려고 하면 할수록 고달프기만 할뿐이다.
없는것 지어내고 있지도 않은것 갖다붙여 대단하게 포장할일이 아니다.
모자랄수록 겉치레가 요란한 것이다.
나는 나요 내가 느끼고 깨달은것을 내 나름대로 표현하는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독창성이 있어야 발전을 가능케 하는것이다.
한의학에는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모르는 문자쓰면서 없는 감투만들어 과대 포장시킬수록 한의학을 우스겟거리로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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